자세히보기 2014년 6월 1일

통통 인터뷰 | “휴전선 너머 핍박받는 이들 모습 무대에 올려야” 2014년 6월호

통통 인터뷰 | 김동철 / 극단 ‘기적’ 단장
“휴전선 너머 핍박받는 이들 모습 무대에 올려야”

ITV_201406_60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8호 정치범수용소. 이곳 지도원 리기풍은 오늘도 어버이 수령께 충성을 다짐한다. 수용소에서는 고문 받던 이들이 죽어가지만, 조국을 배신한 이들에게 내려지는 당연한 결과이다. 그렇게 리기풍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일상을 맞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교회 기독교인들을 체포하러 간 곳에서 어머니를 발견한다. 평생토록 몰래 기독교 신앙을 지키며 자신을 속여 온 어머니를 향한 배신감과 사랑 가운데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자신 역시 기독교인으로 의심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잡히면 지도원이 아닌 수감자의 신분으로 18호 수용소에 돌아가야 한다. 종교를 지켜야 하는 어머니와 이런 어머니를 포기할 수 없는 기풍. 과연 리기풍에게는 어떠한 앞날이 기다리고 있을까?

김동철 단장(38)은 북한의 인권과 지하교회를 다룬 연극 <멎은 땅에도 바람은 분다>를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배우를 시작으로 극단 생활을 한 지 20년이 된 그는 그저 무대에 서는 것을 즐기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젊은 시절 방황하던 그를 잡아준 것도 연극이었고, 인생의 위안을 선사해준 것도 연극이었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던 그에게 연극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 돌파구였다. 그는 “연극은 라이브 예술이에요.”라고 설명한다. 연극은 배우의 컨디션이나 표정, 관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다른 장르보다 실감나는 에너지를 발산하고, 살아있는 전달력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남북한, 교집합을 통해 점차 영역을 확대해가길 바라요”

배우를 시작으로 지금은 무대의 연출을 맡고 있는 그가 이야기의 소재로 선택하는 것은 우리사회의 소외계층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관심이에요.” 방황하는 청소년, 왕따, 노숙자, 노인문제 등 발언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을 무대를 통해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그러던 그가 이번 작품의 소재로 북한 수용소 및 교인에 시선을 돌렸다.

 中

<멎은 땅에도 바람은 분다> 中

요즘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 역시 북한을 생소한 곳으로만 여겼다. 정말 딱 남들만큼만 북한을 알고 있었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북한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하루가 멀다하게 인권 유린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핵실험과 군사훈련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북한은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외부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현듯 그는 북한을 선택했다. 휴전선 너머 핍박받는 이들의 모습을 무대에 올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전문가가 아니기에 철저한 준비과정이 필요했다. “북한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작은 것만 보고 왜곡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러웠어요.”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소재를 정한 순간부터 관련 자료들을 스크랩하고, 중국을 오가는 선교사, 북한 연구자들, 다수의 탈북자들을 수시로 만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시나리오를 기획해갔다. 잘못된 내용이 없는지 여러 차례 검수 받았다. 뜻이 커질수록 의지가 모아졌다. 한 평양 출신 인사는 자발적으로 나서 배우들의 발음을 교정해주며 극의 생동감을 살려주었다. 탈북자들의 조언을 통해 북한 군복의 정교함을 더하며, 자잘한 소품과 세부 사항을 조정해 나갔다. 그는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만전을 기했다. 이 작품은 김 단장 혼자만의 성과가 아니었다.

이렇게 준비한 작품은 작년 10월 비로소 첫 선을 보일 수 있었다.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대부분의 좌석이 채워지며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땅, 북한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했다. 작품을 보고 난 후, 여과 없이 드러난 북한의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충격적이다”라며 말을 잇지 못하는 관객부터 “북한을 향한 움직임이 있어야 함을 느꼈다” 등등의 반응이 나타났다. 무엇보다젊은 친구들의 가슴이 뜨거워짐을 알 수 있었다. 다가오는 공연을 통해서도 많은 이들이 북한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는 김동철 단장은 공연 후 관객들에게 단순한 감동을 전하는 것 이상의 실천으로 드러나는 인식의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형제, 동포가 죽어 가는데 각자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사람이 죽는 것을 너무 많이 봤던 거죠”

 中

<멎은 땅에도 바람은 분다> 中

그는 어려운 것을 바라지 않았다. 공연을 보고 ‘북한 노래는 저렇구나.’, ‘북한 사람들은 저렇게 살아가는구나.’, ‘그들도 즐거울 땐 저렇게 표현하는구나.’ 등 일상을 알게 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 “분명 다른 부분이 많겠죠.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을 거에요. 하지만 우리에겐 분명 교집합이 존재합니다. 이 부분부터 차근차근 알아가 점차 그 영역을 확대하길 바라요.” <멎은 땅에도 바람은 분다>는 복잡한 작품은 아니지만, 작품을 본 관객에게 던지는 실천의 메시지는 다소 무게감 있게 다가가길 원한다. 불편한 북한의 진실을 대하며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이 모아진다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더 의미 있는 것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탈북청년 때문이다. 김 단장은 연극을 하고 싶어 찾아온 이 청년에게 뜻 깊은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아직 발성, 동선, 표현 방법 등 부족한 게 많았지만 무대에 함께 서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었다.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들도 있었다. 가령 사람이 옆에서 죽어가는 장면에서

이 청년은 덤덤한 표정을 지을 뿐, 마음 속 깊은 감정을 끌어내지 못했다. “사람이 죽는 것을 너무 많이 봤던 거죠. 생과 사를 넘나들며 우리와는 살아온 과정이 너무 달랐어요.” 이 청년의 모습에 김 단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새로 정착한 이곳에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감정들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김동철 단장은 차기 작품으로 통일을 설정한 <감자마을>을 구상 중이다. 앞으로도 통일·북한을 소재로 한 작품을 기획하고 싶다는 그는 문화예술의 장점이 통일 과정에서 빛을 발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대한 확신이 있다. 어려운 정치나 미사여구보다 문화가 전달하는 가슴의 울림은 그 어떤 것보다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이 있다는 것이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문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교감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사실 저도 아직 배워가는 과정이죠. 하지만 통일은 사람과 사람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화예술이 그 가교가 될 수 있겠죠. 일반 사람들도 편하게 느낄 수 있는 이야기로 통일을 꺼내고 싶어요.” 편안하고 발칙하기까지 한 작품들을 구상하며 요즘 젊은 세대들이 거부감 없이 인식을 변화시키고, 통일미래를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작품의 저변에는 종교적 믿음이 배어있다.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이 신앙을 가지는 과정, 온갖 시련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모습 속에서 ‘진정한 믿음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하지만 종교를 떠나 정치범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북한의 인권문제는 종교의 시각을 떠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오늘도 수많은 리기풍이 살아가고 있을 척박한 그 곳, 과연 그 땅에도 기적의 바람이 불 것인가.

선수현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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