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4년 7월 1일 0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북한 혜산맥주 한 잔 마셔보면… 2014년 7월호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60 | 북한 혜산맥주 한 잔 마셔보면…

TB_201407_44 맥주를 무척 좋아한다. 무더운 여름밤 동네 호프집에서 시원한 저녁바람을 맞으며 생맥주를 단숨에 반 컵쯤 들이키면 피곤이 일시에 사라지는 짜릿한 느낌, 정말 맥주가 없으면 어떻게 살까 싶다. 여름철뿐 아니다. 겨울에도 따뜻한 방안에서 맥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실 때도 있지만 뒤끝에 맥주를 마셔야 속이 후련하다. 맥주를 이렇게 좋아하다보니 지인들은 북한에서 남한 맥주를 몽땅 먹어치우려 왔냐고 농담을 한다.

북한에 있을 땐 이렇게 좋은 맥주를 마음껏 마시지 못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북한에는 맥주가 귀하다. 그것도 병맥주나 캔맥주, 생맥주는 사치에 가깝다. 양동이나 물통에 받아다 퍼마시는 맥주가 일반적이다. 개인이 가내수공업으로 병맥주를 만들어 파는 것도 있다. 맥주도 식량사정이 좋아야 많이 생산할 수 있을 텐데 그럴 수 없으니 맥주가 귀하다.

맥주공장은 곳곳에 있다. 평양에 큰 맥주공장이 있고, 지방에도 많다. 그러나 보리, 설탕 등 주원료가 부족해 생산량이 아주 적다. 지방 공장들은 보리를 확보하지 못해 옥수수를 사용한다. 옥수수로 만든 맥주는 고유의 맥주맛과 거리가 있다.

혜산맥주, 아사히맥주와 비슷 … 뒤끝 없이 개운한 맛

양강도 혜산에 살던 시절, 혜산맥주공장은 일본에 사는 조총련계 인사가 아사히맥주 계열에 속했던 공장을 통째로 기부한 것이다. 평양에 있는 맥주공장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았다. 단, 원자재 문제로 평양의 대동강맥주공장보다 질이 떨어졌다. 혜산맥주공장에서 제대로 생산된 것은 ‘아사히맥주’와 맛이 비슷하다.

혜산맥주의 특징은 맥주생산에 필수 원료인 호프꽃가루가 많이 들어간 것이다. 호프꽃가루를 러시아말로 “누뿌링”이라 불렀다. 혜산지역에는 대규모 국영 혜산호프농장이 있어 엄청난 양의 호프꽃이 생산된다. 이것을 한때 구소련과 동유럽에 대량 수출했는데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후 판로가 막혀 생산을 많이 줄였다.

이상한 것은 호프꽃이 혜산지역밖엔 심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씨앗을 다른 고장에 옮겨 심으면 살지 못하고, 산다 해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 북한 과학자들도 원인을 정확히 해명하지 못했다. 혜산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중국 길림성 창바이현 소재지에 약간 심는 것 말고는 아시아 어디서도 재배할 수 없다고 했다. 아무튼 혜산이 호프꽃 산지여서 혜산맥주엔 호프꽃가루가 충분히 들어간다. 호프꽃가루가 많이 들어간 혜산맥주를 마시면 신진대사가 빨라 금방 배설된다. 그리고 남한 맥주보다 도수가 높지만 아무리 많이 마셔도 별로 취하지도 않고 소화가 잘된다. 혜산맥주공장에선 도수가 15도나 되는 특제품도 만드는데 많이 마셔도 뒤끝이 개운하다. 호프꽃가루는 소화 효능이 탁월하다. 혜산호프농장에선 소화기관이 좋지 않아 고생하는 사람이 있으면 호프꽃가루 건조장에서 일을 시키는데, 몇 달만 지나면 거짓말처럼 낫곤 했다. ‘평양맥주’, ‘대동강맥주’, ‘서산맥주’ 등 북한의 유명한 맥주들을 마시면 혜산맥주에 비해 얼른 배설이 되지 않았다. 호프꽃가루가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남한 맥주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다.

남쪽에 와서 맥주를 마셔보니 맛은 끝내주는데 배설이 늦었다. 금방 배가 불러 북한에서만큼 많이 마실 수 없었다. 필자의 판단엔 호프꽃가루가 적게 들어간 것 같다. 많이 들어간 맥주는 필자의 입을 속일 수 없다. 아마 호프꽃가루를 수입해 오다보니 그런 것 같다. 호프꽃가루는 비싸다. 그 비싼 것을 많이 넣자면 생산원가가 높아 수지가 맞지 않을 것이다.

남한에 와 처음에는 ‘호프’라고 쓴 간판이 맥주를 파는 집인 줄 몰랐다. 호프꽃가루를 파는 가게로 짐작했는데 너무 많은 것이 이상했다. 알고 보니 맥주를 팔고 있었고 생맥주를 호프라 부르고 있었다. 생맥주 만드는데 호프꽃가루가 많이 들어가 그렇게 부르는지는 모르겠다. 북한에선 ‘생맥주’라고 간판을 붙인 곳은 많았지만 ‘호프’라고 쓴 곳은 없었다. 그리고 맥주를 파는 식당은 대개 ‘청량음료’라는 간판을 붙였다.

맥주 안주엔 역시 치킨 … 북한에선 상상도 못해

맥주 안주도 남북이 차이가 있다. 북한에 있을 때 맥주 안주로 선호했던 것은 마른명태나 마른 조갯살이었다. 그러나 안주가 없으면 김치나 다른 반찬도 먹었고, 웬만하면 맥주는 안주 없이도 먹을 수 있었다. 남한에 살면서 치킨이 맥주 안주에 좋다는 것을 알았다. 하기야 북한에선 치킨이란 말도 몰랐다. 북한에서 닭 한 마리 먹자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닭고기가 보약으로 취급될 정도로 귀한데 맥주 안주라니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런데 남한에 살고 보니 흔하고 싼 것이 닭고기다. 그 귀하던 닭고기로 만든 치킨을 맥주에 곁들어 먹을 때면 북한 생각이 저절로 난다.

북한에서 살아온 40여 년간 필자는 닭을 10마리도 먹어본 것 같지 않다. 그런데 남한 생활 몇 년간 먹은 닭이 어림짐작으로 300마리 이상 될 것이다. 남북의 경제력 차이가 호프집, 치킨집에서조차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이 변화되지 않는 한 이런 차이는 날이 갈수록 커질 것이다. 북한주민들도 마음껏 치킨을 뜯으며 맥주를 들이킬 수 있는 날이 과연 언제일까 생각하면 맥주 맛이 저절로 쓰게 느껴진다.

도명학 / 망명북한작가펜(PEN)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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