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분쟁 25시 | 강대국의 늪 아프가니스탄 2014년 7월호
세계분쟁 25시 | 강대국의 늪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은 동서양 문명이 교차되는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부에 위치한 곳으로, 불교 및 이슬람교, 그리스 문화 등이 융합된 다채로운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고대부터 세력투쟁의 각축장이 되어 왔던 나라이기도 하다. ‘아프간족의 땅’을 의미하는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은 파미르 고원의 남서쪽에 해당하는 인도 대륙의 북서부에 위치한다. 동쪽은 중국, 남쪽과 남동부는 파키스탄, 서쪽은 이란, 북쪽은 쿠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등 6개의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전형적인 내륙국가이며 국경선 길이는 5,826㎞에 이른다.
아프가니스탄은 파슈툰족 38%, 타지크족 25%, 하자라족 19%, 우즈벡족 6% 등 12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부와 동부지역에는 주로 파슈툰족이 거주하는데 유목생활을 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착생활을 하며 농업에 종사한다. 파슈툰족은 1978년만 해도 전체 인구의 47%까지 차지했지만 소련의 침공 이후 인구가 크게 줄어들었다. 파키스탄과 이란 등지로 흩어진 난민 620만여 명 가운데 약 85%가 파슈툰족이며 대부분의 탈레반 역시 파슈툰족에 속한다. 한편 북부동맹의 중심세력인 타지크족은 헤라트의 북동부와 서부주변지역에 주로 거주한다. 수도 카불에 거주하고 있는 타지크족은 교육을 많이 받은 엘리트 집단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른 도시에 거주하는 타지크족도 중산층에 속한다.
중앙아시아 ‘그레이트 게임’ 각축지
아프가니스탄은 지르가(족장회의)를 통해 여러 부족의 의견을 종합하여 통일된 국정운영을 이어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하지만 일단의 부족 의견이 반영되지 않을 때는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도 자주 발생한다. 게다가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 하나의 민족적 관점에서 국가를 유지하기는 다소 어려운 상태다. 이로 말미암아 각 소수민족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분쟁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나 그들이 추구하는 세력균형적인 관점에서 증폭되었다. 19세기 중반에는 영국과 러시아가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라는 틀 속에서 아프가니스탄 및 중앙아시아 지역의 주도권을 놓고 양자 간의 세력균형적인 체제를 조성하여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다투었다.
영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세 차례의 전쟁을 치렀다. 제1차 영국-아프간 전쟁은 1839년에 발발하여 1842년 종료되었다. 이 전쟁은 ‘그레이트 게임’ 당시 가장 처음 벌어진 분쟁으로 19세기 영국과 러시아 사이 중앙아시아에서의 권력과 영향력 다툼의 일환이었다. 영국은 이 전쟁에 투입된 약 3만여 명 중 단 한명만 살아서 돌아오는 진기록을 남겨 커다란 좌절을 안겨준 전쟁으로 기억되고 있다. 두 번째 전쟁은 1878년부터 1880년까지 벌어졌다. 제3차 영국-아프간 전쟁은 1919년 5월 6일 발발하여 1919년 8월 8일 휴전으로 종결되었다. 이 전쟁으로 영국은 아프간 정규군을 격파하는 등 전술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결정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이 제2차 영국-아프간 전쟁으로 빼앗긴 외교권을 찾아옴으로써 명실상부한 독립국가의 지위를 획득하는 등 전략적인 승리는 아프가니스탄이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영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세 차례의 전쟁 이후 대영제국의 해체가 가속화되는 상황을 맞게 된다.
1980년부터 1989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은 소련과도 9년간 전쟁을 치렀다. 이 전쟁으로 수십만의 사람들이 사망하고 그보다 몇 배 많은 이들이 부상했다. 아프가니스탄을 사회주의화 하려는 소련의 의도는 결국 실패했다. 이는 종교적으로 철저히 이슬람화되어 있는 국가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어찌되었든 아프가니스탄 나지불라 정권은 제대로 된 전투 한번 해보지 못한 채 소멸되고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은 내전의 깊은 수렁 속으로 빠지게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전쟁에서 철수한 소련은 이후 쇠락을 거듭해 연방이 해체되는 수순을 밟게 되었다는 점이다.
英 “美, 아프가니스탄에서 얻은 교훈 참고해야”
2001년 9월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조직인 알카에다가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을 향한 항공기 공격으로 촉발된 9·11테러에 따라 시작된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간의 전쟁은 올해로 14년째를 맞고 있다. 전체 기간 동안 사망한 미군은 2,244명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프가니스탄 민간인은 2013년 한 해만 2,568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어 대조를 이룬다. 미국은 단기전으로 종결하고자 했던 전쟁을 아직 끝내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브라운 총리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19세기 영국이 그곳에서 경험했던 일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라고 언급하며 이전 자신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얻었던 교훈을 참고할 것을 충고했다.
2014년 5월 27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미군의 철수를 2016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올해 말 철수가 시작되더라도 당분간 약 9,800명의 미군이 계속 주둔하게 되고, 아프가니스탄 안보군 훈련 임무와 테러방지 임무 등을 맡기로 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는 데 들어간 비용은 수조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영향으로 국가부채가 늘어나면서 발생한 금융위기 때문에 미국은 대공황 이래 최악의 불경기를 겪어야만 했다. 중국이 G2라는 미국의 상대로 부상한 데에는 미국의 추락이 한 몫을 했다는 지적이다. 영국과 소련이 경험했던 강대국의 늪 아프가니스탄 교훈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조상현 / 군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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