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맛지도 | 담백 · 고소한 맛 삼계탕보단 역시 ‘닭곰’ 2014년 7월호
북한 맛지도 23 | 담백 · 고소한 맛 삼계탕보단 역시 ‘닭곰’
예로부터 무더운 여름을 거뜬히 나기 위해 먹던 삼계탕은 이제 사시사철 즐겨 먹는 보양식이 되었다. 땀을 많이 흘려 기운이 없을 때나 면역력이 떨어지기 쉬운 환절기, 그리고 병후 몸이 쇠약해졌을 때도 계절에 맞는 보양 재료를 더해 삼계탕을 끓여 먹으면 기운을 보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북한사람들은 삼계탕을 모른다. 북한에서는 닭곰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닭곰은 식당에서 파는 음식이 아닌 집에서 환자를 위해 아내나 어머니, 할머니가 특별히 정성을 담아 만들어 주는 음식이다.
북한에서는 ‘◯◯곰’하면 몸보신 음식이라는 의미이다. 가장 많이 먹는 보신음식은 닭곰과 토끼곰이고 이외에 강아지로 만든 개곰도 있고 새끼곰도 있다. 작은 단지에 넣어 푹 고아 만든다고 해서 ‘단지곰’이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만든 곰들은 그야말로 푹 삶아 만들기 때문에 뼈까지 흐물흐물해져서 버리는 것 없이 거의 다 먹게 된다. 이렇게 귀한 음식은 엄청난 보약을 먹는 것과 같아 재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일생에 한두 번 먹을 수 있을 뿐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구경도 못한다고 봐야 한다.
닭곰은 닭고기 뱃속에 인삼이나 황기, 찹쌀, 밤을 넣고 단지에 넣거나 큰 대접에 담아 솥에 물을 붓고 중탕으로 끓이는 음식으로 닭뼈까지 고아 낸 음식이다. 삼계탕과 다른 점은 물에 넣어 삶지 않고 중탕으로 끓이기 때문에 닭고기 자체 수분으로 익혀서 고기 맛이 더 달고 고소하다. 특히 삼계탕은 물에서 끓여 내기 때문에 닭가슴살이 퍽퍽한 느낌이 있지만 중탕으로 만든 닭곰은 닭가슴살이 부드러우면서 쫄깃쫄깃하고 담백한 듯 고소하기 때문에 아주 맛이 좋다.
닭고기 자체 수분으로 익혀 더 달고 고소해
더욱이 북한 닭공장에서는 사료가 없어 닭고기를 많이 생산해 내지 못하기 때문에 공장에서 생산되는 적은 양의 닭은 간부들 밥상에만 오르고 일반 주민들은 시장에서 파는 토종닭들을 비싼 가격으로 사다 닭곰을 만들기 때문에 더욱 더 맛있는 것 같다.
닭곰에 쓰이는 닭들은 대체로 중닭 이상 큰 닭이다. 남한은 닭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니까 병아리를 벗어난 영계로 삼계탕을 만들지만 북한에선 집집마다 닭을 길러 시장에 내다 팔기 때문에 대체로 중닭 이상이나 묵은 닭이다. 여기에 정말 귀한 손님이 오면 대접하는 것이 씨암탉이다. 그러니 북한에서 닭고기는 엄청난 뇌물이기도 하다.
1996년 겨울 ‘고난의 행군’이 한창일 때였다. 당시에 북한에서는 식량휴가제가 도입되었는데 식량휴가제란 식량을 구하기 위해 휴가를 받는 것이다. 휴가기간 동안 직장에 출근하지 않는 대신 직장에 돈을 가져다 내야 하는데 10일 정도 휴가에 400원의 돈을 내야 했다. 당시 대부분 서민들의 월급이 150원 미만인 것을 감안한다면 400원은 큰돈이었고, 이 돈을 내고 북한주민들은 식량구입을 위한 장삿길에 나서곤 했다.
필자도 친척이 살고 있는 개천으로 가려고 직장에 400원을 내고 10일간의 휴가를 받았다. 그리고 중국에서 장사 차 건너온 조선족들에게 중국 물건을 3만원 어치 샀다. 이것을 철도국에서 일하는 지인을 통해 수화물로 부치고 일부는 손짐으로 싸서 가지고 떠났다. 3만원어치 물건을 가져다 판다고 해도 남는 돈은 6천~7천원 정도, 경비가 만만치 않아 최종 손에 쥔 수익은 2천원 정도가 고작이다. 하지만 이것도 단속을 당하지 않고 잘 되었을 때 일이고, 단속을 당하면 수익은 고사하고 본전도 건지지 못해 빚더미에 앉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개천에 가려면 안주에서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데 기차를 갈아타려고 안주에 내리는 순간에 문제가 생겼다. 손짐을 들고 승강장으로 가는데 철도 안전원에게 불심검문을 당했고, 결국 모든 짐을 압수당한 채 남동생과 함께 안주역 분주소에 인계되어 버렸다. 그 물건을 모두 빼앗기면 길거리에 나앉아야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에 역전 분주소장에게 매달려 부탁을 했지만 물건을 찾을 길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만 들었다.
북한에서 닭고기는 최고의 뇌물?
역전에 멍하니 서 있는데 마침 한 남자가 동생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동생과 함께 군대에 있었던 사람을 그 곳에서 만난 것이다. 군대 사관장이었는데 제대해 고향인 안주에서 산다고 했다. 우리는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우리의 사정을 듣더니 그 사람은 자기가 아는 사람이 안주시 안전부 감찰과장과 친구인데 줄을 놓아 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엇을 뇌물로 줄까 생각을 하다가 시장에서 닭을 사서 가져다주기로 했다. 남한에서야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코웃음이 쳐지지 않을까 싶지만 당시에는 최고의 뇌물이 바로 닭이었다.
우리는 안주시장에 가서 닭 세 마리를 천원을 주고 샀다. 한 마리는 우리를 위해 나서 주는 사람을 위해 주고, 두 마리는 감찰과장 집에 가져다주었다. 어쨌든 닭 두 마리와 천오백원 상당의 중국담배 3막대기(30갑)를 뇌물로 바친 후에 우리는 짐을 찾을 수 있었다.
많이 남는 장사도 아니었지만, 뇌물을 바치는데 너무 많은 돈을 쓰고 또 도와준 사람들에게도 돈을 쓰다 보니 그때 장사는 남기는커녕 적자뿐이었다. 그래도 3만원의 큰 비용을 허공에 날릴 뻔했던 것을 생각하면 감지덕지할 뿐이었다. 그때 안주시장에서 산 닭 세 마리는 당시 우리에겐 그 어떤 것보다도 큰 보양식이었던 것 같다.
이애란 /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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