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 인터뷰 | 개성있는 개성 상인들의 도전 ‘시스브로’ 2014년 9월호
통통 인터뷰 | 이희건 | 개성공단공동브랜드 추진위원회 위원장
개성있는 개성 상인들의 도전 ‘시스브로’
승용차 한 가득 매달린 짐. 단 하나의 물건이라도 더 실어야 했다. 내부는 이미 공간이 없어 차량 상단이며 트렁크 윗부분까지 억지로 짐을 얹었다. 2013년 4월 3일, 개성의 공단 가동이 잠정 중단됐다. 눈물을 머금으며 땀 흘려 생산한 물건을 두고 개성을 떠나야 했다. 하루빨리 일할 수 있길 바라며 정부와 국민에게 호소했다. 5개월이 지난 9월 16일에서야 우리 기업인들은 개성의 일터를 되찾을 수 있었다. 10살 된 개성공단에 있어 가장 큰 시련이었다.
‘시스브로’, sister와 brother 합성어 … 남북은 형제자매
멈췄던 공장이 돌아가며 다시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재개는 쉽지 않다. 장기간의 중단으로 기계는 녹슬었고 방치되어 있던 재고 물품들은 잔뜩 쌓여 있었다. 설상가상 바이어들의 신뢰마저 잃은 상태였다. 물건을 주문했던 원청업체들은 재고를 받아주지 않았다. 이미 철 지난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 중 75% 이상이 섬유, 의류, 신발 분야에 종사하고 있어 그 피해는 상당했다.
정부가 나섰다. 개성공단이 유지되어야 하는 의미를 공감했기 때문이다. 기업인들의 손실액을 조금이나마 줄여주고자 대형마트에 판매대를 설치하기도 하고, 소비자와의 직거래 장터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아무리 유명 브랜드에 납품하는 좋은 품질의 물건이라도 상품의 성격을 나타내는 ‘브랜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희건 위원장은 당시 생각만 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재고는 재고대로 떠안은 상황에서 원청의 빗발치는 클레임에 매출은 전무했다. 이런 상황이 또 발생한다면 다시 일어날 자신이 없었다. 혁신이 필요했다.
이에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뭉쳐 직접 참여하는 공동브랜드 ‘시스브로’를 만들었다. 시스브로는 sister와 brother의 합성어로 남과 북은 한 민족, ‘형제자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개성공단의 다양한 생산 품목만큼 청바지, 언더웨어, 양말, 골프웨어, 등산화 등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 수 있었다. 공동브랜드에 참여했던 기업은 초기 4개사에서 현재 14개사로 확대되었다.
사실 지금까지 공동브랜드의 성공사례는 거의 없다. 브랜드를 하나 만드는 것도 쉽지 않지만 무임승차 업체, 주력 품목 격차 등 실패 요인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주기업인들은 알고 있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뭉치지 않으면 헤쳐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시스브로는 최선의 출구였다. 그렇기에 별도의 주관사에 브랜드 관리를 맡겨 철저한 관리를 다짐했다. 생산에만 주력했던 중소업체들의 약점일 수 있는 마케팅, 상품개발에 개별 기업이 아닌, 시스브로만을 위한 객관적인 조언이 이어졌다. 또한 참여를 원하는 기업이 언제든지 함께 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최소화했다.
“개성에서 미래의 희망을 봤다”
이제 갓 시작하는 시스브로에는 많은 이들의 기대와 염원이 한껏 담겼다. 지금까지는 원청 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에 기업활동에 난항이 많았다. 특히 개성공단이 지닌 특수성에 따라 북한 핵실험이나 남북관계의 경색, 국제사회의 북한 규탄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안정적인 납품을 할 수 없다는 우려로 바이어들의 이탈이 잦았다. 제조공장은 고정비용이 지출되기 때문에 100% 이상의 가동률을 보여야 탄탄한 운영이 담보된다. 따라서 정세에 흔들리지 않고 운영할 수 있는 자생력이야 말로 위기에 빠진 개성공단을 구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이 위원장은 시스브로가 역경 속에 탄생한 만큼 무엇보다 입주기업들의 자생력을 제고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해외시장을 비롯한 판로를 개척할 수 있다면 남북이 추진하고 있는 개성공단 국제화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시스브로 또한 주변의 기대에 보답하고자 사회공헌을 브랜드의 우선 가치로 삼고 있다. 그동안 입주기업들은 연평도에 물품을 지원하거나 수해시 밀가루를 전달하는 등 나눔을 실천했지만 단발성에 그쳤다. “지금까지 남북경협을 통해 얻은 경제적 가치를 더 많이 사회에 환원하려 합니다.” 크고 작은 사회환원 활동에 적극 나섬으로써 일반 대중들도 개성공단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얼마 전 시스브로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지난 5월 개성공단을 다녀온 염수정 추기경이 “남과 북이 화합하는 개성에서 미래의 희망을 봤다.”고 교황청에 전한 것을 계기로,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기간 중 진행요원들에게 시스브로의 단체복을 기증한 것이다. 색색의 셔츠에는 교황 캐릭터와 한반도 문양, ‘피스개성’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진행요원들은 시스브로를 입고 교황을 찾은 사람들에게 나눔의 정신을 전파했다.
또한 인천아시안게임 기간 북한 응원단에 단체복을 착용토록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남한의 자재로 북한의 근로자가 만든 합작물을 남한에 방문한 북한 응원단이 입는다면 상당한 의미가 있겠죠.” 북한 응원단의 시스브로 착용은 남북이 함께 보여줄 수 있는 평화의 모습이다. 비단 이 위원장뿐만 아니라 남북 모두가 희망하는 풍경일 것이다.
“시스브로, 순수 한류 상품이 되도록”
10월에는 국내 홈쇼핑을 통하여 셔츠, 언더웨어를 만나볼 수 있도록 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하루빨리 시스브로 상품을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를 주 대상으로 해외시장 판로를 개척하기 위한 단계에 있다. “시스브로가 순수 한류 상품이 될 수 있게 준비 중입니다.”
이 위원장이 개성공단에 진출한 것은 2008년. 국내 제조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하던 2000년대 초반 대다수의 기업들은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베트남 등지로 생산 발판을 옮겼다. 치솟는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낙담하고 있던 그때 개성공단은 한 줄기 빛이었다. 하지만 처음 입주하던 당시와 비교해 보면 개성공단의 기업환경도 변하고 있다. 매출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임금, 유지비, 세금, 근로복지 환경에 대한 욕구 등은 날로 수직 상승 중이다. “관리만 잘 되면 개성공단 만한 근로환경도 없죠. 이를 위해서는 우리 기업도, 정부도 같이 노력해야 되요.” 다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는 지금, 시스브로는 이 위원장이 새롭게 찾은 희망이다.
시스브로가 커간다는 것은 결국 개성공단의 안정적 기반을 마련하는 길이다. 개성공단의 가치에 대해서는 지난해 남북 모두 충분히 확인했다. 중단이 장기화될수록 분열은 단결로 변하며 모두가 개성공단의 재가동을 바랐다. 현재 정부, 기업, 학계, 유관단체 등 한 마음으로 시스브로의 성공을 기원하며 도움을 주고 있다.
개성있는 개성 상인들의 브랜드 시스브로. 시스브로가 민족브랜드로 자리잡는 것은 개성공단의 성공을 가져오고, 개성공단의 성공은 제2, 3의 공단으로 확대되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색색의 셔츠에는 교황 캐릭터와 한반도 문양, ‘피스개성’이란 글자가 새개져 있었다. 진행요원들은 시스브로를 입고 교황을 찾은 사람들에게 나눔의 정신을 전파했다.
치솟는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낙담하고 있던 그때 개성공단은 한 줄기 빛이었다. 하지만 처음 입주하던 당시와 비교해 보면 개성공단의 기업환경도 변하고 있다.
선수현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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