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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분쟁 25시 | 해적으로 내몰린 어부들 소말리아 내전 2014년 9월호

세계분쟁 25시 5 | 해적으로 내몰린 어부들 소말리아 내전

알 카에다와 연계된 소말리아 강경 이슬람 무 장단체 알 샤바브가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퇴각하고 난 2011년 8월 7일의 모습

알 카에다와 연계된 소말리아 강경 이슬람 무장단체 알 샤바브가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퇴각하고 난 2011년 8월 7일의 모습

해적 출몰 지역으로 잘 알려진 ‘아프리카의 뿔’ 소말리아. 소말리아 해안가에서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은 앞바다까지 몰려든 산업쓰레기로 더 이상 그물질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소말리아의 해적을 우려하면서도 소말리아 해안가에 불법으로 투기되는 쓰레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생존이 걸린 어부들은 더 이상 어업을 할 수 없어 돈이 되는 해적질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소말리아는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단일민족 국가로서 소말리족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면적은 63만㎢, 인구는 약 1,042만명이다. 소말리아를 하나로 통합해 주는 요인은 단일민족 대부분이 그러하듯 소말리어라는 같은 말을 사용하고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것이다.

민족 대동단결 ‘대소말리아’운동, 내전으로 번져

19세기 말 유럽제국의 아프리카대륙 분할에 있어서 소말리반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가 소말리반도를 분할했다. 그런데 유럽열강의 소말리반도 분할은 그 지역에서 왕국의 지위를 유지하던 에티오피아의 세력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에티오피아는 1908년까지 영국령 소말리아 및 이탈리아령 소말리아와의 국경을 확정했는데 이 때 다수의 소말리족이 거주하던 오가덴 지방이 에티오피아 영토로 편입되었다.

열강의 소말리반도 분할과정에서 소말리족은 현재의 소말리아 말고도 인접한 에티오피아, 케냐, 지부티 등 넓은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다. 1960년 소말리반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소말리족을 대동단결시켜 하나의 국가로 만들자는 ‘대소말리아(Great Somalia)’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 운동은 인접한 국가들과 갈등을 빚었고 결국에는 내전으로 발전하게 된다.

얼굴에 두건을 두르고 무장한 소말리아 해적이 2012년 9월 23일 소말리아 중남부의 해적 근거지인 호비아 연안에서 녹슨 대만 어선 앞에 서 있는 모습. 이곳 해적들은 2010년 12월 인근 해역에서 이 대만 국적 어선을 공격해 탑승하고 있던 선원을 납치했으며, 해당 정부로부터 거액의 몸값을 받아내고 인질 전원을 풀어줬다.

얼굴에 두건을 두르고 무장한 소말리아 해적이 2012년 9월 23일 소말리아 중남부의 해적 근거지인 호비아 연안에서 녹슨 대만 어선 앞에 서 있는 모습. 이곳 해적들은 2010년 12월 인근 해역에서 이 대만 국적 어선을 공격해 탑승하고 있던 선원을 납치했으며, 해당 정부로부터 거액의 몸값을 받아내고 인질 전원을 풀어줬다.

대소말리아주의에 기초한 영토귀속 분쟁 중 최대의 사건은 오가덴 분쟁이었다. 1960년 초 오가덴 지방의 소말리족은 서소말리아 해방전선(WSLF)을 결성하고 에티오피아로부터 분리 독립할 것을 목표로 하여 에티오피아 정부군과 전투를 시작했다. 한편 영국과 이탈리아로부터 독립한 소말리아에서는 소부족 단위를 기반으로 한 여러 정당이 난립하여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러던 중 1969년 바레(Barre)가 주도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독재체제가 구축되었다. 바레정권은 소련과 우호협력조약을 맺는 등 친소노선을 추구하는 한편, 대소말리아주의를 내세워 에티오피아와 잦은 마찰과 갈등을 일으켰다.

1977년 소말리아군은 오가덴 지방의 WSLF와 소말리아 민주구국전선(SDSF)를 지원한다는 명목 하에 에티오피아를 공격하여 일시적으로 전술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1978년 소련과 쿠바의 군사 원조를 받은 에티오피아가 반격을 가하여 소말리아군은 패배했다. 소말리족을 하나로 굳게 단결시켰던 대소말리아주의에 입각한 오가덴 해방이라는 목표가 좌절되자, 잠재해 있던 부족 간의 세력 다툼이 표면화되어 내전으로 발전했다.

1991년 무함마드 파라 아이디드가 이끄는 ‘통일 소말리아회의(USC)’를 주축으로 ‘소말리아 민족운동(SNM)’, ‘소말리아 국민전선(SNF)’ 등의 여러 반정부 게릴라 단체가 연합하여 바레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후 15개에 이르는 무장군벌들의 횡포로 소말리아 내전은 극에 달했다. 내전으로 소말리아의 상황이 악화되자 1992년 4월 유엔은 ‘국제연합 소말리아 평화유지군(UNOSOM)’ 파견을 결의하고 유엔 평화유지군을 파견했다. 유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말리아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1993년 모가디슈 시가전에서 미군 18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유엔은 평화유지군의 단계적인 철수를 결정했다.

8년째 지속되는 내전 … 악순환 어떻게 끊나?

1995년 5월 아이디드가 일방적으로 대통령에 취임하여 신정부 수립을 선포하면서 소말리아의 양대 군벌 간의 무력투쟁이 재발했고, 1996년 그 아들이 대통령으로 추대되면서 내전은 계속됐다. 내전은 거대 군벌과 다수의 소수 군벌 간의 투쟁으로 변모되었다. 2006년 이후 소말리아 내전은 기존 군벌 간의 충돌에 더해 이슬람 반군단체 알 샤바브와 연방정부 간에 국가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 수준으로 계속되고 있다. 2011년 한 해만 해도 7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고, 4,500여 명이 내전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부상당했으며, 61만6천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2013년 내전이 잠시 소강상태를 유지하기는 했으나 2014년 4월에도 알 샤바브 세력에 의한 폭탄테러가 발생해 15명이 숨지는 등 내전은 8년째 지속되고 있다.

소말리아 연방 정부는 이미 오래 전 국가로서의 통제력을 상실했다. 내전으로 피폐해진 국가상황은 국민들을 해적질로 내몰고 있다. 수많은 군벌들과 알 샤바브를 비롯한 이슬람원리주의 세력들은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와 같은 악순환이 계속되어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도 참여하고 있는 EU 주도의 연합함대 작전은 그나마 소말리아 사태 해결의 유일한 희망이 되고 있다. EU는 내전으로 황폐해진 소말리아 재건을 위해서 해적 단속과 치안 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판단으로 군사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소말리아 내전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미래 안정에 대한 믿음은 곳곳에서 보여지고 있다. 국제환경단체는 소말리아 앞바다에 버려지는 산업쓰레기 투기 감시활동에 나섰고, EU는 해적 단속 군사활동을 2016년까지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2014년 6월 4일 미국 정부는 20여 년 만에 소말리아 주재 대사를 임명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EU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소말리아 안정을 위한 노력에 기대를 걸어본다.

소말리아 내전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미래 안정에 대한 믿음은 곳곳에서 보여지고 있다. 국제환경단체는 소말리아 앞바다에 버려지는 산업쓰레기 투기 감시활동에 나섰고, EU는 해적 단속 군사활동을 2016년가지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조상현 / 군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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