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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선의 NK 애니공작소 | “땀은 땀 흘린 농민을 배반하지 않는다네” 2014년 9월호

전영선의 NK 애니공작소 18 | 〈기장나무〉
“땀은 땀 흘린 농민을 배반하지 않는다네”

리영춘이 각색하고, 손종권이 연출한 <기장나무>는 2002년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에서 제작한 20분짜리 만화영화이다. 옛날이야기 형식으로 ‘농사꾼의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력하지 않고 대가를 바라면 안 된다.’의 주제를 담고 있다. 하지만 제목과 달리 기장은 나무가 아니다. 기장은 쌀, 보리, 조, 콩과 함께 오곡의 하나로 여러 조건에 잘 적응하고 생장기간이 빠른 한해살이 풀이다.

메마른 땅에 잘 견디는 기장은 산간지형이 많은 북한에서 재배하기 적합하다. 5월에 씨를 뿌려 9월 말에서 10월 초에 수확한다. 밥이나 떡을 해먹기도 하고 사료로도 사용한다. 하지만 ‘열 사람이 농사지어 한 사람을 먹이는 곡식’으로 불릴 정도로 주식으로 적합하지 않아 재배지는 많지 않은 편이다.

‘봄에 하루를 쉬면 가을에 열흘을 굶는다.’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덕보라는 농사꾼이 있었다. 봄이 되자 덕보는 흥겨운 노래를 부르면서 기장씨를 뿌렸다. 바둑이와 닭들도 열심히 농사짓는 덕보를 거들었다. 열심히 밭을 일구던 덕보가 갑자기 병이 났다. 자리에 눕게 된 덕보는 병석에서도 기장밭이 걱정이었다. ‘봄에 하루를 쉬면 가을에 열흘을 굶는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농사를 걱정했지만 병이 쉽게 낫지 않았다.

덕보는 꼭 백일이 지나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덕보는 바로 기장밭으로 달려갔다. 백일 동안이나 돌보지 않은 기장밭은 잡초들이 무성하고, 기장은 다 말라 죽어 있었다. 낙담하고 있던 덕보의 눈에 살아 있는 기장 한 포기가 보였다. 하지만 한 포기 기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덕보가 눈물을 흘리면서 통곡하고 있을 때, 땅할아버지가 나타났다. 덕보는 땅할아버지에게 그간의 사연을 말했다. “병이 걸려서 앓다가 나와 보니 한 포기만 살아 남았는데, 저 한 포기를 갖고 어떻게 겨울을 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소연했다. 땅할아버지가 말했다. “한 포기 기장이라도 땀을 흘리고 열심히 가꾸면 나무처럼 크게 자라지 않겠는가. 땀은 땀 흘린 농민을 배반하지 않는다네.”라고 일러 주었다. 땅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덕보는 온갖 정성으로 기장을 키웠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는다.’는 주제의  中. 놀면서 수확을 기대했던 덕보는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이후 덕보는 농사꾼의 본분을 되새기고 땀 흘리며 농사지어 해마다 풍년을 맞이한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는다.’는 주제의 <기장나무> 中.
놀면서 수확을 기대했던 덕보는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이후 덕보는 농사꾼의 본분을 되새기고 땀 흘리며 농사지어 해마다 풍년을 맞이한다.

그러던 어느 날, 거센 폭풍우가 내려쳤다. 폭풍우에 기장이 쓰러질까 걱정이 된 덕보는 자기가 입고 있던 옷으로 기장을 덮고 끌어안아 밤새 기장을 지켜냈다. 폭풍우가 그치고 날이 맑게 개었다. 갑자기 기장이 쑥쑥 자라기 시작하더니 큰 나무가 되었다. 엄청나게 커진 기장나무에서는 기장이 눈처럼 떨어졌다.

기장나무 덕분에 배불리 겨울을 보낼 수 있게 된 덕보는 기장나무를 보면서, 기장나무가 살아 남아 내년에도 기장을 뿌려주기를 기원했다. 덕보의 기원 때문인지 겨울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기장은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 기장나무 때문에 배불리 겨울을 날 수 있었던 덕보는 봄이 되자 다시 기장을 심으러 기장밭으로 나갔다.

기장밭에는 기장나무가 있었고, 기장나무에서 움이 터 있었다. 기장나무에 움이 튼 것을 본 덕보는 기장나무가 살아 있는 것에 기뻐하면서 올해도 많은 기장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덕보는 일도 하지 않고, 움막에서 빈둥빈둥 낮잠을 자면서 여름을 보냈다. 덕보가 낮잠을 자면서 게으르게 여름을 보내는 동안 기장나무 주변에는 잡초들이 자랐고, 밭은 엉망이 되어 갔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다. 곡식이 익을 때가 되자 덕보는 기장밭에 나가 기장나무를 살폈다. 과연 기장나무에는 하나 가득 기장이 열려 있었다. 덕보가 기장나무를 털자 한 밭 가득 기장이 떨어졌다. 하지만 나무에서 떨어진 것은 기장이 아니라 모래였다. 화가 난 덕보는 기장나무를 쓰러 뜨렸다. 기장나무가 쓰러지고, 땅할아버지가 나타났다. 땅할아버지는 덕보에게 “땀을 흘리지 않았으니 줄 게 무엇이냐.”라고 했다. 땅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덕보는 그제서야 농사꾼의 본분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반성했다. 이 일이 있은 다음부터 덕보는 열심히 땀 흘리며 농사를 지었고, 해마다 풍년을 맞이했다.

옛날이야기, 인민들의 의식·불만 우회적 표현

<기장나무>에서는 기장이 자라 나무가 되고 엄청난 기장이 맺힌다. 기장은 나무도 아니고 여러 해 살이도 아니다. 기장 한 포기에서 겨울을 날 만큼 많은 기장이 열리지도 않는다. 설화에서나 있을 법한 내용이다. 일반 문학예술 창작에서는 주체사실주의를 원칙으로 하기에 일체의 환상적인 요소는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옛날이야기를 소재로 한 아동영화에서만 특별하게 환상이 허용된다.

CS_201409_73 옛이야기 속에 들어 있는 신비한 이야기나 환상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당대 인민들의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제약으로 인해 인민들이 사회에 대한 불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우회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설화로 표현되는 환상을 ‘중세적 환상’이라고 한다. 사람이 변하여 수탉이 된 <선녀와 나무꾼> 설화나 갑자기 물이 솟아 집이 잠기고 호수가 된 <애기바위전설(장자못전설)> 등이 이에 해당한다.

북한은 중세적 환상이 인간관계를 계급관계로 파악해야 하는데, 계급관계로 보지 못하고 권선징악의 선악관계로만 파악하였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설명한다. 중세적 환상은 인간을 중심에 두고 인간으로서 이루기 힘든 일을 도와주는 해결의 차원에서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세적 환상에는 인민의 간절한 염원이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일반 문학예술 창작에서는 주체사실주의를 원칙으로 하기에 일체의 환상적인 요소는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옛날이야기를 소재로 한 아동영화에서만 특별하게 환상이 허용된다.

전영선 /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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