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훈의 취재수첩 | 북한에서 불어오는 스포츠 바람, 매섭다! 2014년 10월호
장용훈의 취재수첩 | 북한에서 불어오는 스포츠 바람, 매섭다!
스포츠는 비정치적 요소이지만 한 나라의 사회적 역동성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미래의 저력을 가늠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축구의 미래를 점쳐 볼 수 있는 16세 이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십에서 북한은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한국의 메시’라는 이승우 선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한국 축구팬을 설레게 했지만 정작 이 대회에서 마지막에 웃은 팀은 북한팀이었다.
결승전에서 한국의 수비수 최재영이 전반에 선제골을 터뜨렸으나 후반에 내리 두 골을 허용했다. 한국이 한 수 위로 평가됐으나 수비 후 역습 전략을 선택한 북한의 저항은 거셌고 한광성은 0-1로 뒤진 후반 4분 페널티 지역을 돌파해 동점골을 뽑아냈다. 이어 북한은 1-1로 맞선 후반 21분 최성혁이 역습 기회 때 페널티 지역 중앙에서 대포알 슈팅으로 역전골을 터뜨렸다. 공격은 매서웠지만 수비는 견고하고 터프했다. 북한은 이번 대회에서 경기마다 골을 터뜨린 한국의 간판 골잡이 이승우를 집중적으로 견제해 고립시키는 데 성공했고 결국 최후의 승리자가 됐다.
北, 엘리트부터 사회체육까지 전 분야 투자확대 중
국제적 고립을 면치 못하는 북한의 우승을 그 누구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북한의 승리에는 이유가 있었다. 북한 대표팀 선발 라인업에는 유럽에서 담금질한 선수가 6명이 포함돼 있었다. 한국전에서 골을 넣은 간판 골잡이 한광성과 미드필더 최성혁, 공격수 정창범은 스페인의 마르세 재단 출신이다. 마르세 재단은 클럽과 관계없이 세계 유망주들의 기술을 교육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축구 학교다. 또 미드필더 김예범, 수비수 김위성, 최진남은 이탈리아에서 교육을 받았다. 북한은 이탈리아 페루자에 있는 ‘이탈리아 사커 매니지먼트’라는 기관에 유소년 선수들을 보내고 있다. ‘빗장수비’의 대명사인 이탈리아에서 축구 유학을 한 선수들이 승리의 주역이 된 셈이다.
이들 두 교육기관에 유소년 선수들을 파견해 교육하는 데 드는 비용은 북한 정부가 부담하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 들어 ‘체육강국 건설’을 기치로 내걸고 평양국제축구학교를 건립하고 주민체육시설을 늘리는 등 엘리트 체육부터 사회 체육까지 전 분야에 걸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 체육에 대한 관심을 부각하며 ‘미래 꿈나무’ 육성에 공을 들이는 것은 유망주를 발굴하고 육성해 엘리트 체육의 저변을 확대하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청소년에게 희망을 주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북한 김정은 체제의 노력은 인천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도 빛을 내고 있다. 북한은 9월 29일 오전 현재 금메달 8개, 은메달 8개, 동메달 9개로 국가별 종합순위 5위를 기록 중이다. 북한이 세계적 기량을 뽐내는 역도가 대회 초반 메달 사냥을 주도했다. 엄윤철, 김은국, 리정화가 북한의 금메달 3개를 모두 따냈고, 은메달 2개와 동메달 1개도 수확했다. 또 여자 기계체조는 지난 9월 22일 단체전에서 은메달로 힘을 보탰고 유도, 사격,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에서도 메달이 나왔다. 여자 유도의 간판 설경이 은메달에 머물고 남자 역도의 김명혁이 몸무게 660g 차로 2위를 하는 등 아쉬운 순간도 있었지만 선전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관심은 북한이 대회 마지막까지 매서운 면모로 10위권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쏠린다. 4년 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말레이시아가 금메달 9개로 10위를 차지했다. 이번 대회의 총 금메달이 광저우 대회 476개(42개 종목)보다 37개 줄어든 439개(36개 종목)인 점을 감안하면 금메달이 9개보다 적어도 10위 안에 들 가능성이 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북한의 메달밭은 단연 역도 종목이다. 남자 56㎏급 엄윤철이 9월 20일 용상 부문에서 대회 첫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북한에 첫 금메달을 안겼고, 다음날인 9월 21일 62㎏급에서 김은국이 인상과 합계에서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팀에 두 번째 금메달을 선사했다. 북한 역도는 오랜 시간을 두고 꾸준히 성장해 온 데다 최근 집중투자를 더해 성장속도가 배가되면서 세계 역도계를 뒤흔들고 있다. 북한 역도는 예전부터 정치적으로 가까운 중국, 동유럽 국가와 함께 훈련하며 노하우를 쌓았고 최근에는 중국과 긴밀히 협조하며 더 성장했다는 것이 체육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제대회 메달리스트 극진 대접 … 아파트에 승용차까지
체육강국을 슬로건으로 내건 만큼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딴 북한 선수들은 극진한 대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아파트 등 물질적 보상이 뒤따를 것이다. 북한은 작년 10월 평양에 체육인들을 위한 전용 아파트를 지어 우수한 체육 선수들에게 선물했다. 고급 승용차가 금메달리스트에게 제공될 수도 있다. 북한은 199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정성옥에게 아파트와 함께 벤츠 승용차를 선물하는 등 승용차를 체육인에게 선물한 사례가 적지 않다. 또 북한 금메달리스트들은 인민체육인 등의 명예칭호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그동안 세계선수권,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입상한 선수들에게 노력영웅, 인민체육인, 공훈체육인 등의 각종 칭호를 수여해왔다.
체육분야에서 불고 있는 북풍은 일회성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후계기간이 짧았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입장에서는 민심을 묶어 내기 위한 도구가 필요하고 그 도구로 체육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육강국’ 건설이라는 북한의 정책은 당분간 지속적으로 이어질 전망이고 그 속에서 다양한 종목에서 북한의 선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장횽훈 / 〈연합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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