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10월은 수탈의 달? 2014년 10월호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22 | 10월은 수탈의 달?
가을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따사로운 햇볕이 가시고 나니 실감이 난다. 활동하기 좋은 날씨인 만큼 여기저기 뛰어노는 아이들, 농구하는 학생들,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니 부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북한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무렵,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직도 이전처럼 단조로운 생활에 익숙해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건너 건너 알아보니 요즘도 큰 변화는 없다고 한다.
1인당 토끼 가죽 3장씩 … 토끼 가죽 가격 폭등
이쯤 되면 북한 아이들이 무엇을 할지, 부모들의 고충이 무엇일지 충분히 짐작된다. 남한 학생들의 10월은 가을소풍, 가을운동회 등 학교 행사로 들뜨고 바쁠 때이다. 북한 학생들의 10월도 바쁘다. 가을걷이가 한창이니 너나 할 것 없이 농촌지원에 동원되기 때문이다. 이맘 때 쯤이면 10~20일씩 집을 떠나 농촌에서 먹고 자며 가을걷이를 돕는다. 해보지 않던 농사일을 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더구나 한창 많이 먹을 나이에 고된 일거리가 주어져 최근에는 농장에서 보충미라고 조금씩 준다. 하지만 양이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은 각자 간식을 챙겨가야 한다. 북에서 별도의 음식을 준비한다는 것은 부담이다. 그렇게 구색을 맞추다 보면 차라리 담임에게 돈을 주고 집에서 노는 편이 낫다. 이러한 부모들의 이해타산에 의해 농촌동원에 빠지려는 아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북한 학교에서 10월의 또 다른 이름은 수집의 달이다. 좋게 말하면 수집이고, 나쁘게 말하면 수탈이다. 가을이면 토끼 가죽, 화목대(난방비)를 의무적으로 거두기 때문이다. 토끼 기르기는 어려서부터 집짐승 기르기를 많이 하라는 김일성의 교시에서 출발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 특히 짐승을 접하기 힘든 도시 아이들이 토끼에 대해서 알고 짐승을 기르며 근면성을 키우기 위한 목적이었다. 사실 초기에는 순수한 목적에서 진행됐다. 필자가 자랄 때만 해도 토끼를 기르는지 확인하고, 가죽을 많이 ‘바치는’ 학생들을 표창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부터 연간 과제량까지 정해주며 토끼 가죽을 무조건 바치라고 강요하기 시작했다. 가죽의 용도도 인민군대 털모자와 털조끼를 만드는 데 쓰인다고 노골적으로 독려했다. 과제는 1인당 3장씩 할당량이 주어졌다. 규격에 맞아야 하고 털이 빠지지 않는 일등품이어야 한다. 시장에서는 토끼 가죽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었다.
특히 도시에 사는 학생들이 더 힘이 들었다. 도시에서 토끼를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다 알 것이다. 더구나 민둥산이 늘어가며 산에는 풀마저 사라졌다. 시장에 토끼풀 장사꾼이 나타날 지경이었다. 토끼풀 가격이 점차 올라가자 토끼를 기르기보다 시장에서 사는 것이 더 나은 실정이 됐다. 새끼 토끼를 기르며 먹이 때문에 속 태울 일도 없고 토끼가 죽는 일이 발생하지도 않아 좋았다.
문제는 이렇게 학생들의 고혈을 짜내 거둔 토끼 가죽이 선전과 달리 쓰였다는 점이다. 인민군대 털모자와 털조끼를 만드는 데에 쓰인 양보다 외국에 수출한 양이 더 많았다. 청년동맹 산하 무역회사가 토끼 가죽을 중국에 전문적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부 청년동맹 일꾼들의 부정부패로 학생들에게서 거두어들인 토끼 가죽이 장마당에 다시 등장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학생들의 또 다른 큰 부담은 난방비다. 국가의 난방 공급이 끊기고 부모들이 난방비를 댄 지도 20여 년이 됐다. 교실부터 혁명사상학습실, 교원실, 경비실 등 온 학교의 난방을 학생들이 지원해야 하니 1인당 감당해야 할 돈이 어마어마하다. 한 겨울을 나는 데에는 화폐개혁 전 보통 1~2만원 정도가 필요했다. 이 돈이면 당시 웬만한 간부의 3~6개월치 월급이다.
착복이 예의? 당연한 현상?
이런 것은 현금으로 이뤄진다. 계좌이체가 일반화 되어 있는 남한과 달리 북한에서는 은행이 유명무실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현찰거래이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이 돈을 학교에 내지 않고 나쁜 목적으로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언젠가 한 아이가 날짜가 지나도록 난방비를 내지 않았다. 가정형편이 곤란한 집도 아니고 이상하다하여 부모를 직접 찾아가 보았더니 돈을 아이에게 준 지 벌써 오래전이라 했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큰 액수를 현금으로 제출하고 만지다보니 돈을 하찮게 여기거나 빼돌리는 일이 다반사다.
아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선생님들이 돈을 착복하는 일은 이제 부패도 아니다. 학급에서 난방비로 거둔 돈으로 장작이나 석탄을 사는데, 이때 값을 부풀리고 나머지 돈을 자기 주머니에 채우는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할 줄 아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학부모들도 남은 돈이 있으면 담임이 수고하는데 응당 써야한다는 인식이다. 그리고 이것이 곧 담임에 대한 예의이고 도덕이라고 생각하는 풍조가 요즘 북한사회다.
혹시라도 이에 대해 의견을 제기하는 학부모가 있으면 비정상적 취급을 하고 비난을 한다. 그렇기에 아직까지 이런 일로 신고가 제기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자기집 아궁이에 들어갈 장작은 없어도 학교에서 거두는 돈이면 울며 겨자먹기로라도 내는 것이 학부모들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이 돈마저 서로 빼앗을 수밖에 없는 북한의 이 가을을 생각할수록 안타깝기만 하다. 오늘날 북한사회를 이렇게 만든 요인이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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