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분쟁 25시 | 중국 소수민족 동화정책의 역설, 신장위구르 2014년 10월호
세계분쟁 25시 6 | 중국 소수민족 동화정책의 역설, 신장위구르
중국은 13억이 넘는 인구 중에서 한족이 다수를 차지하고 그밖에 9천만명의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이다. 비록 소수민족의 인구 점유율이 낮다고는 하지만 영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서 중국의 국가안보에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소수민족은 각각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가지고 독특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중앙정부에는 불안요인으로도 꼽히고 있다.

지난 8월 8일부터 20일까지 열린 신장자치구 체육대회 기간에 맞춰 신장위구르자치구 커라마이 시는 이슬람 복장을 한 주민들의 버스 탑승을 금지했다. 테러방지를 위한 이와 같은 조치는 히잡이나 니캅, 부르카를 쓴 여성, 혹은 이슬람의 상징인 별과 초승달 표식이 있는 복장, 그리고 수염을 기른 남성 등을 지목해 잠재적 규제 대상이 위구르인이라는 반발을 샀다.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의 자결권, 분리권을 부정하고 있다. 1952년부터 1962년까지 소위 대약진기 이후에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움직임에 대해 중국 내에서는 민족융합론이 주장되어 한족이 소수민족 거주지에 대량으로 이주하는 한족으로의 동화정책이 추진되었다. 한족의 대량이주가 가장 많이 이루어진 지역은 신장위구르 자치구였다.
신장, 중국 에너지 자원 34% 보유
이런 와중에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는 중앙정부로부터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으로 분리·독립을 도모하는 소수민족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소수민족 지도자를 당에서 제명하고 공직에서 추방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제압했다. 이러한 운동이 일어난 원인은 한족의 대량진출에 대한 위구르족의 위기감과 한족에 의한 자원독점 및 불평등한 분배 그리고 한족 문화 유입에 따른 문화적 이질감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중국 중앙정부의 소수민족 정책은 여러 지역에서 소수민족의 불만을 일으켰고 지방 민족주의적 경향을 형성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소수민족 독립투쟁에 대해 강경책으로 처방하는 것은 정치적 이유에서 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유와도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대부분의 소수민족 거주지역 특히 신장지역에는 신장, 투하, 타림 등 3대유전이 발달되어 있으며 이 지역에 분포된 석유는 약 209.2억t, 천연가스는 10.4만억㎦, 석탄은 2.19억t으로 중국 에너지 자원의 34%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구르족은 터키계 민족으로 중국에서 인정되고 있는 55개 소수민족 중 다섯 번째로 많은 인구를 차지하고 있다. 인종으로는 지역에 따라 몽골 인종과의 혼혈도 있지만 위구르족 전체로는 코카서스 인종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언어적으로 현대 위구르어는 알타이어족에 속하고 우즈벡어와 비슷하다. 그러나 중국 중앙정부의 정책에 따라 중국에 거주하는 위구르족은 중국어를 일부 사용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이민족의 지배로 인해 인종적으로는 혼혈화, 종교적으로는 이슬람화가 진행됨과 동시에 언어와 문자도 아랍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1955년 우루무치를 수도로 하는 신장위구르자치구가 정식으로 발족하면서 이 지역의 자치가 인정되었다. 그러나 1990년 4월 신장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폭동이 일어나 수십명이 사망하는 사건을 시작으로 중앙정부와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1992년 12월에는 신장 독립세력이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의 자금 지원을 받아 이스탄불에서 ‘동투르키스탄 민족대표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서 ‘동투르키스탄국’을 국명으로 정하고 국가, 국기, 휘장의 디자인 등을 결정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계속된 방해와 탄압에 의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변방개발 가속화될수록 소수민족 불만 커져
1995년 4월에는 신장에서 위구르족과 카자흐족 5만여 명이 중국으로부터의 독립과 공산통치의 종식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 88명이 사망하고 3백여 명이 부상당했다. 1997년 2월에는 이슬람교계 1천여 명의 주민들이 한족을 공격하자 자치정부가 분리주의자들에 대해 무력으로 진압했다. 1999년 12월에 동투르키스탄 민족대표회의는 10년 내에 1만명 이상의 정규군을 창설하여 신장에서의 테러작전 이외에 게릴라전 내지 정규전을 통해 무력으로 건국한다는 노선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또한 2009년 7월 5일에는 자치구의 수도 우루무치에서 시위가 일어나 유혈시위로 인한 사망자가 150명, 부상자 800여 명이 발생했다고 중국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2012년에는 위구르족의 여객기 납치 미수사건이 발생했으며, 중국 공안 당국의 보복과 위구르족의 각종 테러 공격으로 인해 약 50여 명이 사망했다. 2013년에도 중국 정부와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 측의 충돌로 약 170여 명이 사망했다.
2014년 4월 시진핑 국가주석 방문지 부근 기차역 테러로 수십명이 죽었으며, 현재까지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최대 다민족국가인 중국은 현재 역사상 가장 부강했던 면모를 되찾고 있지만 변방 개발이 가속화될수록 소수민족 지역의 불만과 불안은 커지고 있다. 위구르의 고질적 불안은 중국의 부상이 못마땅한 외부의 편견에 더해져 중국이라는 국가 이미지 손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과 외부세계 모두 열린 역사 인식이 필요하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지역의 고질적 불안은 ‘분리·독립’이라는 외형적인 면보다는 급속한 개발과 한족의 대량이주에 따른 갈등과 정체성 불안에서 비롯된 내면적인 요인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위구르인의 비중이 2천만 인구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서 한족과의 차별 인식과 반발이 커져 조그만 기폭제나 자극에도 분쟁이 쉽게 촉발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에 비춰 무엇보다 중국은 문명사회의 기준을 근거로 소수민족 문제를 다뤄야만 지도적 국가의 면모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소수민족의 민족적 정체성을 존중하고 경제적 차별을 줄이는 적극적인 노력 없이는 신장의 불안 상황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이제 소수민족 정책을 근원에서부터 다시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조상현 / 군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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