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이산가족 상처 어루만지는 힐링 정부 돼야 2013년 1월호
기획 | 이산가족, 이제는 시간이 없다
이산가족 상처 어루만지는 힐링 정부 돼야
인도주의 앞에는 적이 없다. 전쟁 상황에서도 민간인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1949년 제네바협약의 정신이다. ‘전시에 있어서의 민간의 보호에 관한 제네바협약’ 제82조에 따르면 전시에도 가족은 동일한 장소에 유숙하도록 할 책임을 국가는 갖고 있다. 즉 전시에도 가족의 이산을 막기 위한 노력은 국가의 몫이었다.
1966년 한국도 제네바협약에 가입했다. 냉전시대 이 협약을 지키지 않았던 남북 정권에 의해 사실상 이산가족은 자신에게 가족과 함께 살 권리가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이산의 고통에 속앓이를 해야 했다. 1980년대 말 세계적인 탈냉전 시대가 와도 한반도의 냉전기류는 질척대고 남아 있었다.
2000년이 되어 분단 이래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이 있고 나서야 이산가족은 상봉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비록 단 한번만이기는 했으나,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의해 3,800여 명이 상봉했다. 어렵게 삽을 떴던 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가 2008년 완공되었으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지난 5년간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사를 달리했다. 2012년 10월, 대한적십자사의 자료에 따르면, 1988년 이후 이산가족신청자 12만8,747명 중 41%인 5만2,744명이 사망했다. 다시 말해 10명 중 4명이 사망한 셈이다. 이산가족의 고령화에 따라 머지않아 사망자가 생존자보다 더 많게 될 것이다. 2013년 새롭게 출발하는 정부는 인도적 정신을 발휘하여 북한 당국과의 적극적인 대화로써 이산가족의 상처와 고통을 어루만져 주는 힐링(healing) 정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상봉신청자 41%는 이미 사망
이명박 정부에서 이산가족 관련한 유일한 성과라고 한다면, 2009년에 제정된 「남북 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교류 촉진에 관한 법률」(제정 2009.3.25 법률 제9519호, 약칭 「이산가족법」)과 「남북 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교류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제정 2009.9.24 대통령령 제21745호, 「이산가족법시행령」)이다. 이산가족법의 제6조에 따라 2011년에는 전국 이산가족 실태 조사를 한 바 있다. 이 조사에는 등록된 이산가족의 12.5%에 해당하는 1만605명이 참여했다.
당시 조사에서 정부 이산가족정책에 대한 이산가족의 여러 가지 인식과 태도가 반영되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지적하면, 첫째, 이산가족들은 정부 당국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대해 대체로 만족한다는 의견(35.0%)이 불만족한다는 의견(25.6%)보다 조금 높은 편이었다.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민간교류단체를 통한 이산가족 교류보다 당국차원의 교류가 안전하고 비용면에서도 저렴하다는 이유를 들 수 있다.
둘째, 응답자의 대다수(85.9%)가 고령자부터 추첨에 의해 대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에 만족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고령자 이산가족 우선 교류 정책은 이산가족 대다수에게 합리적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이산가족의 교류 희망 방법으로는 ‘생사확인 확대(40.4%)’ > ‘대면상봉 확대(35.9%)’ > ‘서신교환 확대(10.0%)’ > ‘고향방문동숙(8.7%)’ > ‘화상상봉 확대(2.5%)’ 순으로 선호했다. 다시 말해 이산가족들이 가장 갈급해 하는 것은 이산가족의 생사여부인 것이다. 생사여부를 제대로 확인한 후에 대면 상봉을 바라는 것이지, 화상상봉 등은 교류 방법 우선순위에서 처짐을 알 수 있다.
‘남북이산가족교류협약’ 체결하자
다음으로 이산가족의 세대 갈등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80% 가까운 사람이 갈등이 낮다고 답을 했다.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세대 간 응답도가 달랐으나, 전반적으로는 세대에 무관하게 이산가족 상봉교류 사업은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이산가족은 교류가 활성화되어도 ‘친척’과 같은 거리를 두고, 지니고 있는 재산 상속 문제나 가족관계법 상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를 선호하고 있었다. 이러한 조사를 통해 이산가족들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과 정책적인 요구 사항을 짚어볼 수 있다.
2013년 새 정부는 많은 과제 중의 하나로서 남북관계의 엉킨 매듭을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중 가장 시급한 일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인도적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다. 식량난으로 궁핍과 영양결핍을 겪고 있는 북한의 노약자, 여성들을 지원하는 사업이 시급하다. 그에 못지않게 시급한 일이 바로 고령자 이산가족 생사확인과 상봉교류 사업을 확대하는 일이다.
생존해 있는 등록 이산가족 8만여 명이 생전에 생사확인과 상봉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남북 당국 간의 전향적 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산가족 교류 사업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남북이산가족교류협약(가안)’을 체결할 필요가 있다. 그 인도적 문제에서 정치적 논리를 배제하자는 취지를 담은 내용과 실현 방안이어야 한다.
다음으로 특수한 이산가족 교류 문제도 새 정부는 반드시 풀어야 할 것이다. 국군포로나 납북자 문제를 전격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전후 귀환납북자 지원금은 1~2억원이 소요 예상된다. 현재 추정하고 있는 미귀환 전후납북자는 적게 잡아 480명인데, 소요 비용만 해도 480~96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납북자의 북측 가족 이주비 역시 만만치 않다. 더 나아가 북한이탈주민의 북녘 가족 문제도 남아 있어서 이 역시 비용 문제나 남북 갈등 문제의 소지가 있다. 남북 대화로써 이 문제를 푼다면 제2, 제3의 이산가족을 만들지 않고도 통일 지향적으로 풀 길이 있다.
또한 해외이산가족 문제도 지난 5년간 악화되었다. 가장 심각한 해외이산가족 문제가 재일동포일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5년간 일본 조총련계의 고향방문뿐만 아니라, 민단계 중 북송 가족과의 교류가 다 막혀버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남북정부는 대화를 해야만 한다.
나아가 8만여 명의 이산가족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생사확인과 상봉교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산가족 관련 인력도 증가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금강산면회소에 이어서 개성면회소 건립 문제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은 인도적 정신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사람의 통일로 인도하는 길이다.
김귀옥 / 한성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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