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4월 1일

특집 | “아, 이 친구는 반드시 잘 되겠다” 2015년 4월호

메르켈 프로젝트, 통일한국 미래 연다!
멘토-멘티 간담회

“아, 이 친구는 반드시 잘 되겠다”

‘메르켈 프로젝트’ 멘토링 사업 참가자들이 지난 3월 20일 간담회 전 기념촬영을 가졌다. (왼쪽부터) 멘토 양승용 전 중앙일보문화사업 대표이사, 멘티 김여명 군, 정옥임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멘티 유현서 양, 멘토 이종헌 경기대 관광경영학과 겸임교수

‘메르켈 프로젝트’ 멘토링 사업 참가자들이 지난 3월 20일 간담회 전 기념촬영을 가졌다. (왼쪽부터) 멘토 양승용 전 중앙일보문화사업 대표이사, 멘티 김여명 군, 정옥임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멘티 유현서 양, 멘토 이종헌 경기대 관광경영학과 겸임교수

1954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목사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동독 브란덴부르크 주로 이사한다. 이 아이는 훗날 독일의 사회통합을 주도하고 유럽연합(EU)을 대표하는 글로벌 리더로 성장한다. 통일독일 첫 동독 출신 총리 앙겔라 메르켈, 그녀의 이야기다.

동독 출신, 여성이라는 사회적 핸디캡을 딛고 우뚝 선 메르켈 총리. 통일 25주년이 된 독일에 있어 그녀의 존재는 통합의 상징과도 같다. 한편으로 한국에 정착하는 북한이탈주민이 늘어가는 우리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땅에도 한국형 메르켈이 탄생할 수 있을까.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도 힘든 탈북민들에게 성공이란 이상은 요원하게 느껴진다.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꿈을 키워주고, 실현할 수 있는 사다리를 놓아주면 되지 않을까?

지난 3월 20일 서울 남북하나재단에서는 ‘메르켈 프로젝트’ 중 멘토링 사업에 참여했던 멘토와 멘티의 만남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30년 가량 나이차이가 나 보였지만 어색한 기류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 사이에 이미 끈끈한 무언가가 작용한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학교 선배의 권유로 멘토링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는 김여명 군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이미 다양한 기관에서 탈북청년을 위한 멘토링 사업이 진행 중이고, 여명 군 역시 참여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멘토링 사업에 참가한 그의 멘토는 대학생 형이었다. 학습지도를 해주며 서로 마음을 열고 교류했지만, 1년 뒤 사업이 끝나자 멘토와의 연락은 서서히 끊겨 버렸다.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단발성으로 끝나버리더라구요.” 그래서인지 그는 지금 지속되는 멘토들과의 인연을 더 소중히 여기는 듯 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또 다른 멘티 유현서 양도 ‘메르켈 프로젝트’ 멘토링 사업의 장점으로 지속성을 꼽았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현실적인 조언을 받았어요. 그러면서도 이제 끝이 아닐까 아쉬웠는데 계속 힘이 되어주셔서 감사하죠.” 양계사업에 뛰어든 지 갓 1년이 된 현서 양은 회계학을 전공한 학생이었다. 그녀도 토익, 해외연수, 자격증 등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으며 대학을 다녔다. 불현 듯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진로고민을 하면서 탈북청년 3명과 함께 양계사업에 뛰어들기로 했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모두 만류했다. “사업을 한다고? 그것도 양계사업을?” 사업 구상을 받아 본 멘토 이종헌 교수도 그랬다. 우려를 표하는 이 교수에게 현서 양은 도리어 “북에서 이런 것은 쉽습니다.”라며 웃음 지었다. 충격이었다.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이 쌓아온 스펙에 구애받지 않았다. 주변의 편견에 매몰되지 않고 굴레를 깨려했다. 이 교수는 ‘아, 이 친구는 반드시 잘 되겠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종헌 교수는 멘티들의 눈이 도전의식으로 빛나고 있음을 봤다. 성공하겠다는 의지도 뚜렷했다. 젊은 시절의 모습이 떠올라서였을까. 이들을 위해 적극 나서고 싶었다. 오랜 기간 호텔 경영에서 쌓은 경험을 전수하기로 했다. 기업 로고, 기업가 정신, 판로 개척 등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미 대기업이 잠식해 레드오션인 달걀시장이지만 그들의 열정이 선택받길 바랐다. 지인들에게 직접 달걀을 소개해주고, 전문가들로부터 여러 차례 피드백을 받아 공유했다. 어느새 현서 양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멘토들이 추가로 생기고, 함께 사업하는 청년들도 간접적인 멘티가 됐다. 그렇게 멘토와 멘티는 보이지 않게 확산되어 갔다.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이러한 성공 사례가 계속 나와야 정책도 더 적극적으로 전환되지 않겠습니까?” 이 교수는 멘토링 사업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

“나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현재 충남 아산의 (주)알푸드 양계장에서는 3천여 마리의 닭이 신선한 유정란을 공급하고 있다. 식물성 지방 사료만 먹고 자란 닭들은 계사에 갇혀 있지 않고 마음껏 뛰어 다닌다. 많은 이윤을 남기기보다 우리의 식탁에 친환경적이고 건강한 먹거리를 올리기 위해서다. 이 달걀은 생산부터 유통, 판매까지 4명의 탈북청년이 모두 도맡아 하고 있다. 멘토들의 역할도 컸다. 사업의 실질적인 조언을 하고, 유통구조를 확보하는 데에도 일조했다. 하지만 아직 한계도 있다. 가령 조류 인플루엔자(AI)가 발생할 경우 해당 지점에 피해가 없어도 발발지역 인근 3km의 닭은 모두 폐사처리 된다. 하지만 알푸드의 계사는 임대 형식이기에 이러한 피해가 발생하면 정부의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시스템이다. 양승용 대표이사는 “이러한 정책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의 멘토가 나서 지원받을 수 있게 도와줘야 합니다. 북한 출신 학생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해 이미 의외로 많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지원은 기초적인 수준에서 이뤄져 오히려 학생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죠. 맞춤형 지원으로 제대로 된 투입이 이뤄진다면 효과는 엄청날 겁니다.”라며 개선안을 내놓았다.

본 멘토링 프로그램은 2기 출범을 앞두고 있다. 1기 활동을 마무리하며 참가자들에게 지난 1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물어봤다. 이종헌 교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작년 추석연휴, 멘티 학생들을 집으로 초대했어요. 간단히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죠. 그런데 학생들이 뜻밖에 감동을 받은 것 같더라구요. 한국에 온 지 8년 만에 처음 집으로 초대받았다는 거예요. 참, 별 것 아닌 일인데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죠? 이 친구들을 마음으로 대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김여명 군은 영종도에 갔던 것을 떠올렸다. “누군가에게 제 얘길 잘 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때는 모두가 진심으로 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새벽까지 함께 했어요.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이들의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 같다.

통일한국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중요하다.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지원받은 이들이 성장하면 자연스레 통일한국의 인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대상자는 아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구체적인 계획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자만이 참여할 기회도 얻는다. 김여명 군은 “내가 가진 꿈과 구체적인 계획, 포부 등이 담긴 신청서를 적으며 나 자신에 대해, 내가 필요한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멘토링을 통해 평소 관심있던 애플리케이션 제작도 현실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재구상하는 계기가 됐구요.”라고 참여 소감을 말했다. 유현서 양은 “지금은 양계뿐이지만 앞으로 축산 전반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갈 거예요. 단기적으로는 우리가 성공모델이 되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싶어요. 잘 되면 경력이 단절된 중·장년 탈북민들도 함께하는 기업이 되지 않을까요? 장기적으로는 여기서 닦은 기술과 노하우를 북한에 전수하는 멘토가 되고 싶어요.”라며 수줍게 포부를 밝혔다.

 “양계에서 축산까지, 성공모델로 SR_201504_22

 귀감이 되고 싶어요”

한국형 메르켈의 탄생은 그들만의 노력으로는 어렵다. 그들에게 무작정 용기와 열정을 강요할 수만도 없다. 바르게 정착하기 위한 주변의 배려와 지지 가 필요하다. ‘메르켈 프로젝트’는 그들이 성장하기 위한 사다리다. 제도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를 놓아주고, 든든한 멘토를 통해 올라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양승용 대표이사는 말한다. “남북 출신지역 가릴 것 없이 한국의 젊은이들이 미래이자 경쟁력입니다. 그 선상에서 우리의 역할을 할 겁니다. 그들이 성장해 남북화합을 이루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에 그치지 않고 국제무대를 리드하는 글로벌 인재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통일한국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를 리드하는 한국형 메르켈이 탄생하는 그 날을 기대한다.

선수현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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