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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北 | 선군시대 상징이 된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의 216봉우리> 2013년 2월호

박계리의 스케치北 14 | 선군시대 상징이 된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의 216봉우리>

백두산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무엇일까? 필자 머릿속엔 ‘화산’, ‘폭발’, ‘재앙’ 등의 단어가 있다. 그러나 ‘백두산’과 ‘폭발’이라는 단어가 연관된 것은 최근 일련의 기사 속에서 급부상된 일이며, 백두산 관광이 가능했던 2000년대 초에는 ‘백두산’을 보면 ‘관광’이 떠올랐고, 1980년대에는 ‘백두에서 한라까지’라는 구호와 더불어 ‘통일’이라는 단어가 쉽게 연상되었다. 어떠한 이미지를 보면 연상되는 표상은 항상 일정한 것은 아니며 시대에 따라, 또는 같은 시대라도 지역과 문화권에 따라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여름편 119개 봉우리 … 겨울편 97개 봉우리

, 조선화, 200×1500, 2004년

<백두산 천지의 216봉우리 – 여름판>, 조선화, 200×1500, 2004년

백두산은 20세기 들어 우리 국토의 북쪽 경계부분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과 ‘백두대간’이라는 용어에서 드러나듯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라는 지정학적 위치가 부각되면서 적극적으로 미술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북한은 ‘민족사의 발상지’, ‘조종의 산’ 더 나아가 ‘조선의 심장’, ‘혁명의 성상’으로 표상되면서 문화정책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이미지를 생산해내고 있다.

주체미술에서 자연묘사의 본질은 인민대중의 미적 견해와 태도에 의하여 정서적으로 체험한 자연을 반영한다는 데 있다. 아름다운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현상이지만 사람의 주관적 정서를 통해서만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견해와 태도는 자연을 보는 인간의 세계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인간의 미적 견해와 태도를 반영하고 있는 자연묘사는 철저히 계급적 성격을 띤다는 것이 주체문예 이론이다.

자연에 대한 예술적 반영은 단순히 현실에 대한 기계적인 반영이 아니라 미술가의 사상미학적 견해에 의하여 창조되는 예술작품이라는 것이 김정일의 「미술론」에서 언급하고 있는 풍경화론의 핵심이다. 자연을 형상한 그림에는 예외 없이 이를 창작한 미술가의 세계관, 사회정치적 견해와 입장, 미학적 이상이 반영되는데 이것은 자연을 반영한 그림이 뜻을 가지게 되는 요인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주체문예 이론에 입각해 현재 북한에서 국보적 명작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작품이 바로 <백두산 천지의 216봉우리> 다. 1998년 3월 3일자 <로동신문>에는 김정일이 백두산을 형상한 미술작품을 지도하기 위해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하였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날 김정일은 백두의 기상이 반영된 미술작품을 더 많이 창작하여 ‘주체혈통의 대를 이어가는데 적극 기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일성 사후에 백두산 재현문제가 ‘김일성’ 상징에서 ‘김정일’ 상징으로 적극적으로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는 사건이다. 특히 <백두산 천지의 216봉우리>에서는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이라는 숫자가 등장함으로써 이러한 의도가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조선화, 200×1500, 2004년

<백두산 천지의 216봉우리 – 겨울판>, 조선화, 200×1500, 2004년

이 작품은 크게 ‘여름편’과 ‘겨울편’의 두 화폭으로 나누어 구성되었다. 높이 각각 2m, 길이 15m로 <여름편>에는 119개의 봉우리, <겨울편>에는 97개의 봉우리가 표현되어 두 병풍을 합치면 216개의 봉우리들이 비반복적으로 묘사되어 백두산 천지의 웅건하고 장중한 전경을 드러내고 있다. 백두산 천지 종합탐험대원들이 백두산 천지 일대의 측량조사 과정에서 상대 높이 20m 이상이 되는 봉우리가 216개가 된다는 것을 확증하고 그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원도를 그렸으며, 이에 기초하여 만수대창작사 조선화가들이 여러 차례 현지답사를 진행하여 대형 병풍식 조선화 <백두산 천지의 216봉우리>를 창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216은 김정일 생일 2월 16일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북한에서는 이 작품을 선군시대의 또 하나의 기념비, 국보적 명작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작품 안에 백두산 3대 장군인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을 상징하는 장군봉, 향도봉, 해발봉을 묘사함으로써 백두산 3대 장군의 업적과 풍모를 재현하였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선군시대 만들어진 백두산 3대 장군이 강조된 이 작품을 통해 백두산이 선군시대를 재현하는 새로운 상징을 부여받고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하겠다.

이처럼 북한은 ‘민족의 명산’, ‘조종의 산’이라는 백두산의 상징성을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정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앞서 논한 바와 같이, 주체미술에서 아름다운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현상이지만 사람의 주관적 정서를 통해서만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백두산이라는 물성은 인간이 지닌 세계관과 철학을 통해서만 그 아름다움을 논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북한 사회에서 이러한 논의는 주체사상이라는 테두리를 더 명확히 하는 토대로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백두산 작품이 북한을 떠나 다른 지역, 다른 사상을 지닌 곳으로 이동하여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것이 재현해내는 의미망은 여전히 동일한 파장을 낼 것인가? 어떠한 물건과 물질이 인간이 지닌 세계관과 미학을 통해 ‘아름다움’으로 발견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면 당연히 또 다른 시선의 역학이 작동될 것이다. 상징의 해석만큼 ‘상징의 역동성’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박계리 / 이화여대박물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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