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4월 1일 0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입학식 날, 6년의 운명 결정 돼 2013년 4월호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4 | 입학식 날, 6년의 운명 결정 돼

달력을 한 장 넘겼다. 4월임을 알리는 달력을 바라보니 북한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 이맘때쯤 학교 곳곳의 풍경이 떠오른다. 북한에서는 4월부터 새 학년이 시작된다. 4월 1일이면 전국의 학교에서는 개교식이 성대하게 치러진다. 이날은 학교의 등급과 인지도에 따라 노동당 및 행정기관의 간부들이 손님으로 초대된다. 도 제1고등중학교나 외국어학원, 예술학원과 같은 특수 교종, 또는 김일성·김정일이 시찰한 학교들에는 급이 높은 도급 간부들이 오고, 일반 중학교들에는 시급 간부들이 축하연설을 하는 것이 관례이다. 개교식은 학교장의 연설, 초대 간부의 인사말, 재학생 대표 토론, 신입생 대표 토론, 학부모 대표 토론 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담임 발표의 순간이다. 신입생들과 학부모들은 두 손 모아 초조하게 발표를 기다린다.

평양제1중학교의 입학식 모습. 신입생들이 재학생들의 축하를 받으며 행진하고 있다.

평양제1중학교의 입학식 모습. 신입생들이 재학생들의 축하를 받으며 행진하고 있다.

입학식 하이라이트는 담임 발표 순간

매년 담임 선생님이 바뀌는 남한과 달리 북한에서는 학급담임 고정제를 실시한다. 교사의 과오가 있거나 타 지역으로 시집가는 등의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1학년 초기 맡은 담임이 학생들의 졸업까지 책임진다. 그러니 새로 입학하는 1학년 담임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북한에서는 담임의 파워가 크다. 학생 서열의 기준인 열성자선거와 표창장 추천, 학업성적, 대학추천 등 많은 부분에 담임의 입김이 절대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비록 최근에는 국가의 공급이 중단되며 교사가 학부모들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구조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물론 고정 담임제에는 장단점이 있다. 오랜 기간 학생들을 관찰하기에 교사는 학생 개개인의 성적은 물론 성격과 취미까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하기에 교사의 편견에 의해 잘못된 학생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성장기인 학생의 인성형성에 상당한 지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또한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는 담임의 과목 또한 중요시되는데 수학, 영어, 물리 등 이공계 담당 교사를 만나는 것을 선호하며 북한식으로 ‘호떡을 만났다’고 표현한다. 따라서 일부 간부들은 자기 아이가 입학할 때쯤이면 학교장에게 은근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개교식에서는 학급장 임명도 이루어진다. 학급장은 남한의 ‘반장 선거’와 달리 담임이 학교장에게 추천하는 형식이다. 학급에는 학급장 외에도 정치조직인 소년단 조직부위원장이 있다. 소년단 조직부위원장은 선출로 뽑지만 학급장은 다르다. 하지만 소년단 조직부위원장이 학급장을 겸하고 있는 형태가 많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학급장을 선거로 뽑는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처럼 학교에서 담임의 권한이 크기 때문에 담임 발표는 입학식 학생들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영어와 러시아어 학급 비율 8 대 2

담임 배정 외에도 관심사가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외국어의 선택이다. 북한의 일반중등교육에서 필수 외국어는 영어와 노어가 있다. 60년대 후반까지는 노어의 인기가 높았지만 북한이 소련의 수정주의 노선에 반발하면서 노어의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평양제1중학교의 신입생들이 선생님 말을 경청하고 있다.

평양제1중학교의 신입생들이 선생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최근 영어 학급과 노어 학급의 비율은 8 대 2 정도 된다. 노어의 상대적 감소 외에도 영어의 판도가 넓어진 것은 영어를 알아야 컴퓨터를 다룰 수 있고,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었다는 점을 인지하면서이다. 즉 북한에서는 영어 학습이 신분 기준의 시금석이기도 하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는 외형상 사회적 흐름이고 내적 심리는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에 대한 환상이 가미되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외국어 선택의 문제는 누가 영어를 하고, 노어를 하는지 개학날 학교장에 의해 발표된다는 것이다. 학생이 스스로 외국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정해주는, 좋든 싫든 운명에 맡기는 풍경이 벌어진다.

물론 지역별로 학교별로 편차는 있겠지만 북한의 남녀공학의 학생 비율은 3 대 2로 남학생의 비율이 더 높다. 그래서 남녀 짝꿍 외에 남남 짝꿍의 모습도 종종 나타난다. 북에서도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자식을 많이 낳지 않는 풍토가 확산되고 있는데, 높은 영유아 사망률이 겹쳐 학급의 학생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보통 한 학급 인원은 30~35명이지만 일부 인기 교사가 맡은 학급에는 간부와 부자들의 자식들이 몰려 60~70명에 이르기도 하다. 마치 한국 학원가의 인기 강사에 줄 서듯 말이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의 공간이어야 할 학교에까지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는 실태라 할 수 있다.

과거 교육기자재와 교구비품 등은 모두 무상으로 지원됐었다. 하지만 계획경제가 와해된 후 교원들의 생계조차 학부모들에 의지하고 있는 마당에 교구라고 해서 별다른 묘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준비품이라고 해봤자 교과서와 학습장, 필기도구가 고작이지만 학생들의 수업 준비품 검열도 진행된다. 아이들이 가져온 준비품을 보고 있자면 빈부격차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학교에 교과서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해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일반적이나 오히려 시장에 가면 새 교과서를 구할 수 있어 유복한 아이들은 새 교과서를 지참해 온다. 시장에서 파는 교과서도 인기 있는 영어, 수학, 이공계 과목이 잘 팔린다고 하는데, 그만큼 이 과목들이 대학입시의 필수과목이고 대학진학이 신분상승과 출세의 지름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요즘, 북한의 학교에서는 새로운 학생들을 맞이하는 준비가 한창일 것이다. 새로운 교실에서 6년을 함께 할 담임 선생님과 짝꿍을 만난 아이들의 표정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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