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6월 1일

특집 |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구체적 액션 플랜 수립돼야 2013년 6월호

특집 | 한·미동맹 60년, 신뢰동맹으로 함께 전진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구체적 액션 플랜 수립돼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 밝은 표정으로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 밝은 표정으로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1948년 한국의 현대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의 괄목할만한 경제성장과 정치발전의 배경에는 한·미동맹을 통한 안보의 유지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이견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체결한 수십여 개의 동맹관계 중에서 한·미동맹은 가장 성공적인 동맹관계의 하나로 손꼽힌다. 과거 냉전기 한·미동맹은 상대적으로 군사중심적 성격을 가졌고, 탈냉전기 이후에도 북한이 야기하는 안보 위협으로 인해 나토동맹의 정체성 변화 및 미·일동맹의 역할 확대 등과는 달리, 한·미동맹의 경우 여전히 군사중심이라는 특징을 보여왔다. 하지만 한국의 국력이 지속적으로 신장하고 결과적으로 국제사회에서의 지위가 향상됨에 따라 동북아 지역이나 국제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한국이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고, 결과적으로 한·미동맹 역시 비군사 영역에서의 역할 확대라는 시대정신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날 박 대통령은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 무명용사탑에 헌화하고 워싱턴 만다린 오리엔탈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이날 박 대통령은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 무명용사탑에 헌화하고 워싱턴 만다린 오리엔탈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한·미동맹, 비군사영역 역할 확대 직면

한·미동맹 영역의 포괄적인 확대는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니다. 탈냉전기 이후 지금까지 ‘경제동맹’, ‘전략동맹’, ‘미래지향적 동맹’ 등의 표현들이 동원되면서 한·미동맹의 정체성 변화에 대한 많은 전략적 고민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한·미 FTA 및 양국 간 사회·문화적 교류 확대 등과 같은 구체적인 정책적 선택이 추진된 것이다.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에서 박근혜 행정부 역시 한·미동맹의 성공적인 운영을 전제로 이와 병행하여 동북아 지역의 안정성에 보다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역할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 것으로 이해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방문 시 공개적으로 선언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현 정부가 모색하고 있는 동북아 지역안보 협력의 구체적인 모습이며, 관련하여 동북아 국가 간 평화협력을 추진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을 ‘서울프로세스’로 명명한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동북아 역내 국가 간 비등하고 있는 불신과 갈등의 파도를 넘기 위해서 어떤 형태로든 구체적인 정책 비전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요구가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에 대한 나름대로의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박 대통령은 ‘아시아의 패러독스(Asian Paradox)’라는 표현을 강조하면서 동북아 국가들이 처한 모순적 상황을 지적한 바 있는데, 즉 경제관계에서는 상호의존성이 높아지고 또한 사회·문화적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되는데 이러한 관계 증진이 왜 정치·군사적 신뢰로 이어지지 않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로 이해된다. 특히 최근 수년간 점증하고 있는 역내 국가 간 갈등관계를 지켜보면서 정치 지도자는 물론 일반 국민들은 왜 동아시아(특히 동북아) 지역에서는 유럽 국가들이 경험하고 있는 것과 같은 수준의 정치·외교적 상호의존의 심화가 발생하지 않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확산된 것으로 판단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미국 방문에서 밝힌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과 관련한 구체적인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프로세스’, 실천 가능한 단계적 발전 강조

그런데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관련하여 중요하게 짚어봐야 할 사안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기후변화, 인간안보, 자연재해, 핵안보 등 비군사적인 영역에서의 협력을 선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한 마디로 대표적인 ‘기능주의적 접근’으로 볼 수 있는데, 동북아의 경우 역사적인 경험, 리더십을 행사할 국가의 부재, 정치제도 및 경제력의 차이 등과 같은 요인들로 인해 소위 ‘상위정치’ 영역으로 알려진 정치나 군사적인 문제들을 직접 다루기가 어려우므로, 대신 정치적 긴장성이 떨어지는 환경, 인간안보, 자연재해 등과 같은 이슈들을 우선적으로 다룸으로써, 이러한 영역에서 진행되는 평화협력의 경험이 궁극적으로 정치·군사적인 신뢰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이러한 기능주의적 접근 방식이 국제관계에서는 이미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고, 특히 유럽통합이 진행되던 초기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된 사례가 있는 전략이라는 차원에서 그다지 새로운 접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국가들의 국가이익과 외교관계의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된다.

둘째,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실천하는 방안으로 ‘서울프로세스’를 제시하고 있다. 통상 외교관계에서 프로세스는 특정 시간적 범위를 사전적으로 정하지 않는 과정 중심적인 접근을 의미한다. 또한 프로세스는 이전 단계의 성과가 단계적으로 또한 유기적으로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매 단계의 성과 간 제도적인 연계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서울프로세스’는 동북아의 평화와 협력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과도한 단계적 실천과제를 내세우지 않고, 대신 실천 가능한 단계적 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점 역시 동북아 협력구상의 실현 가능성을 높여주는 전략적인 고민으로 풀이된다. 동북아의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지금까지의 많은 노력들이 그러하듯, 일반적인 담론의 제안이나 추상적인 비전의 제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향후 실천 가능성을 고려한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고민이 담겨 있는 것이다. 물론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액션 플랜을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의 문제는 향후 과제로 남아 있는 상태다.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인 ‘니미츠호(9만7천t급)’가 지난 5월 13일 동해에서 진행되는 한·미 연합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 해군기지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인 ‘니미츠호(9만7천t급)’가 지난 5월 13일 동해에서 진행되는 한·미 연합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 해군기지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상호의존적인 신뢰프로세스와 서울프로세스

마지막으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과 서울프로세스 사이에는 서로 상호의존적인 측면이 존재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알려져 있는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추진을 위해서는 남북관계 중심적인 노력과 국제공조 중심적인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고, 이러한 차원에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국제사회를 통한 대북한 관여정책이라는 의미를 가지므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상호의존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아직 정확한 판단을 하기에는 정보의 제약이 있으나, 동북아 국가 간 비정치적 사안들을 둘러싼 협력이 북한의 관점에서 구체적인 이익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서울프로세스’ 사이에는 상호 추동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문제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라는 박근혜 행정부의 동북아 지역정책이 한·미동맹이라는 기존의 외교적 장치와 어떻게 연계되느냐의 문제다. 가장 바람직한 모습을 상정해 보자면, 한·미동맹이라는 우리의 핵심 외교자산이 한편으로는 북한으로부터 야기하는 군사위협을 확실하게 억지하고, 동시에 한국의 외교역량이 지역 및 글로벌 이슈로 확대되는 디딤돌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나아가 우리 정부가 새롭게 제안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최근 한·미 양국 정상이 합의한 ‘한·미동맹 60주년 공동선언문’은 군사동맹을 넘어선 글로벌 협력, 문화외교, 에너지협력 등과 같은 이슈들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비록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 아직은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지만, 한·미가 공감하고 있는 한·미동맹의 지역적 및 글로벌 역할 기여와 보다 효율적으로 결합하기 위해서 더욱 정교한 전략적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박인휘 /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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