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6월 1일

특집 | 대북, 신뢰프로세스 성공요건, 미·중과 지속적 신뢰구축 2013년 6월호

특집 | 한·미동맹 60년, 신뢰동맹으로 함께 전진

신뢰프로세스 성공요건, 미·중과 지속적 신뢰구축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8일(현지시간) 워싱턴 의회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날 오후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박 대통령은 아토니오 비야라이고사 로스앤젤레스 시장과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만나 환담했으며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 참석해 재미동포들을 격려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8일(현지시간) 워싱턴 의회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날 오후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박 대통령은 아토니오 비야라이고사 로스앤젤레스 시장과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만나 환담했으며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 참석해 재미동포들을 격려했다. Ⓒ연합뉴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주창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의 공감과 지지를 일단 이끌어냈다. 사실 미국 측은 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강조해온 이 구상의 정확한 취지와 내용을 알고 싶었다. 특히 한반도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한국의 새로운 정부가 뭔가 앞서가는 행보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같은 당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추구한 정책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버리고 도발을 중단하는 ‘올바른 선택’을 할 경우 대북지원과 나아가 경제공동체 건설 등의 화해정책을 적극 펼치겠다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내용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유엔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을 만나서도, 워싱턴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서도, 그리고 미국 의회에서도 자신의 ‘대표 브랜드’를 설파했다.

美, “박 대통령 이해하며 공감하겠다”

일단 미국의 반응은 동맹 60주년을 강조하는 박 대통령에 대해 “이해하며 공감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차별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확신하는 못하는 기색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개방·3000’ 구상도 비핵화를 할 경우 화해와 함께 대규모 경제지원을 하겠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박 대통령이 신뢰프로세스에 대해 “북한 스스로 변화하라는 요청이지만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북한이 변화하지 않을 수 없도록 여건과 환경의 변화를 만들어나가겠다.”는 대목에서 ‘뭔가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는 반응이 많았다.

박 대통령은 ‘신뢰프로세스’가 미국의 협력과 철저한 한·미 공조 속에서만 가능하며,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공조도 수반돼야 함도 역설했다. 북한이 변화하지 않을 경우 무조건 방치하는 대신에 국제사회가 손잡고 ‘억지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겠다는 전략적 구상이라는 공감대가 미국 내에 확산된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담은 공동선언에서 “한·미 양국은 동맹에 기초해 박 대통령이 주창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등을 통해 북한이 국제사회의 의무를 준수하도록 함과 동시에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증진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이 이를 반증한다.

사실 미국 내에서도 요즘 오바마 1기 행정부 시절 견지했던 ‘전략적 인내’ 정책에 대해 비판론이 무성한 상황이다. 북한의 진정한 비핵화 의지를 확인해야만 북한과 대화도 하고 보상도 하겠다는 이 정책은 결과적으로 북한을 방치하는 오류를 낳았다는 게 비판의 골자다. 북한이 지난해 말부터 장거리 로켓 발사에 성공하고 3차 핵실험을 강행한 뒤 미국 본토까지 ‘핵공격’ 범위에 포함시키자 미국 내에서는 ‘북한 위협론’이 회자됐다. 북한이 진정한 핵보유국이 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장착하는 그때까지 이를 방관할 것이냐는 비판에 직면한 오바마 2기 행정부는 ‘대화론자’로 유명한 존 케리 국무장관을 축으로 새로운 대북정책의 재검토에 들어갔다.

오바마 1기 전략적 인내 비판론 무성

박 대통령의 새로운 구상에 미국의 조야가 관심을 기울인 것은 이런 현지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위기를 만들고 보상받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며 “평양이 자신의 약속과 의무를 지키고, 특히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조치를 취하면 대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최근 개혁과 개방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평가되는 버마의 사례를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구상이나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에서 유사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비슷한 점은 북한의 ‘올바른 선택’을 강조한 것이고 굳이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조치’와 ‘비핵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남북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춘 신뢰프로세스와 북핵 제거와 비확산 체제 유지에 주력해야 하는 미국의 정책이 세부적으로 들어갈 경우 반드시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미국 정부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가 전임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무리하게 북한과 접촉할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아울러 일부 전문가들은 개성공단이 사실상 폐쇄되는 사태에서 보듯이 대화의 문이 열려있다고 하더라도 신뢰프로세스가 북한의 변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한계를 안고 있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를 이끌어낸 외교적 성과를 향후 정책 실현과정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가 과제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일단 박 대통령이 핵문제와 인도적 지원 문제를 분리해 대응하면서 모종의 기회를 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북한의 핵은 절대 용납할 수 없고,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영유아 등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상황과 관련 없이 해나가는 것”이라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그런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인도적 지원을 제의한 한국 정부를 외면할 경우 어떤 대안이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오히려 북한은 새로 출범한 박 대통령 정부를 향해 호전적이고 도전적인 언사를 이어가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를 둘러싸고 첨예한 신경전도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지지를 얻어내 ‘신뢰프로세스’를 가동하려 해도 그 직접 당사자가 ‘신뢰의 손짓’을 보내지 않을 공산이 큰 것이다. 자칫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다분히 선언적인 의미에 머물고 남북관계의 경색이 지속되면서 과거의 5년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한국 보수층들은 핵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대규모 지원이나 교류활성화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신의 지지층이 반대하는 대북정책을 박 대통령이 적극 추진하기 어려운 여건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을 찾아 2012년 12월 12일 발사한 장거리 로켓에 공헌한 과학자, 기술자들을 격려하고 있는 모습을 이 지난 1월 11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을 찾아 2012년 12월 12일 발사한 장거리 로켓에 공헌한 과학자, 기술자들을 격려하고 있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월 11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미국, 독자적 대북정책 추진 가능성도 있어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변수도 있다. 바로 중국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가동을 위해서는 중국이 한국과 공동보조를 취해야 하는데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포기할 수 없는 숙명을 안고 있다. 물론 최근 중국의 대형은행인 중국은행이 북한의 무역결제은행인 조선무역은행과의 금융거래를 중단하는 등 유엔 안보리 제재결의 이행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압박을 하곤 있지만 중국의 대북정책이 크게 바뀌었다고 생각해선 오산이다.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량살상무기(WMD) 조정관을 지낸 한반도 전문가인 게리 세이모어는 5월 17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한국의 동아시아연구원(EAI)이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서 “베이징과 평양 사이에 일부 긴장이 있다는 관측이 있지만 중국 외교정책의 근본적 변화가 있다고 보지 않으며 그런 일이 곧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했듯 북한의 핵위협이 미국의 직접적인 안보위협으로 대두할 경우 언제든 한국 정부의 입장과 상관없이 독자적 판단을 내릴 미국이다. 이 경우 자칫 한국은 미국과 북한이 진행하는 대화의 틀에서 소외될 가능성마저 있다. 결국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구체적인 정책으로 현실성을 갖기 위해서는 국내는 물론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과의 지속적인 ‘신뢰프로세스’를 구축해야만 하는 절박감을 안고 있다. 박 대통령과 한국의 전문외교관들이 이런 과제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수행해나갈 지에 따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가동은 물론 한국 외교의 나아갈 길도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우탁 / 〈연합뉴스〉 워싱턴 특파원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