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마지막 생명줄, 바이어가 쥐고 있어 2013년 6월호
기획 | 개성공단, 회생인가 폐쇄인가
마지막 생명줄, 바이어가 쥐고 있어
남과 북이 서로 정상화를 위한 진정성을 보이라며 공방을 하는 사이 사면초가에 처한 개성공단의 운명은 숨이 멎을 처지인데도 바이어와의 신뢰 때문에 생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개성공단 운명, 사면초가에 처해
개성공단 사태는 지난 4월 초 북한의 일방적인 통행차단 및 근로자 철수 명령으로 시작되었다. 우리 정부는 북한에 여러 차례 정상화를 위한 대화를 촉구하다 반응이 없자 국민의 신변보호를 위해 개성공단 잔류인원 전원을 철수시켰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5·24조치 및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남북경협이 모두 중단된 상황에서도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고 가동되었던 개성공단이 중단되자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개성공단 통행차단 이후 입주기업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언론, 국회, 정부 및 국민들에게 개성공단의 정상화를 간절히 호소했다. 호소를 접한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개성공단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며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이번 사건의 원인을 제공했던 일부 언론과 보수단체에서조차 폐쇄만은 막아야 한다며 개성공단의 필요성을 부각했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며 일부에선 개성공단의 폐쇄를 기정사실화하고 있고, 안타까움과 관심을 보이던 언론과 국민들도 점점 개성공단 문제를 잊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고사 위기에 직면한 개성공단의 마지막 생명줄은 바이어가 쥐고 있기에 입주기업인들은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개성공단 사태가 발생한 직후 대부분의 입주기업들은 주문 물량의 공급차질을 우려한 바이어들을 안심시키려고 동분서주했다. 급기야 일부 대기업에 납품하던 한 업체가 납품차질로 거래중단의 위기에 처하자 언론사에 하소연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입주기업들의 심각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부 대기업은 위기에 직면한 협력 중소기업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폐쇄 후 남북 경제협력 재개 불가
개성공단에서는 작은 통일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개성공단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었던 관리위원회는 남과 북의 직원들이 협력하여 이끌어 가던 조직이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서 남측에는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이라는 민간조직을 만들어 운영하였다. 각 기업마다 남측의 주재원들과 북측의 직원들이 합리적인 공장운영과 수익성 확보를 위하여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내던 곳이 바로 개성공단이다. 한솥밥을 먹는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실현되어 남과 북의 근로자와 기업가뿐 아니라, 세관, 검역 등 남북의 관련 관리자들 모두가 개성공단에 종사하고 있었다. 5만3천여 북한 근로자에 속한 20만 가량의 부양가족들과 123개 입주업체와 거래를 하고 있는 남측의 6천여 협력사, 그에 딸린 2만5천여 종사자들의 생계가 개성공단의 가동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마지막 주재원들이 철수할 때에 경비 직원들과 서로의 안부를 염려하며 눈시울을 붉히던 이별의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북한에 지속적으로 대화를 제의하고,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여 단계별로 시행하고 있다. 또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도 이번 문제가 남북 간 대화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개성공단 문제의 해법은 신뢰회복에 있다. 글로벌 위기 이후 기업들은 한계 경쟁력을 극복하기 위하여 벼랑 끝에서 곡예를 하고 있다. 개성공단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개성공단을 신뢰하던 바이어들의 마음은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떠나는 바이어들을 잡을 수도 원망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남북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변명하며 양치기 소년처럼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때를 놓치고 나면 개성공단이 정상화된다고 하더라도 바이어들이 주문을 주지 않아 공장을 가동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지고 만다.
이제 개성공단은 죽음의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만약 개성공단이 이번 사태로 폐쇄된다면 남북 간 경제협력은 쉽게 재개될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떤 투자자가 폐쇄의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 땅에 투자를 하겠는가? 또한 역사는 두고두고 그 폐쇄의 책임을 묻고 평가할 것이다.
그동안 남북은 칡과 등나무처럼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 적대시하며 분단 이후 끊임없이 충돌을 반복해 왔다. 한반도 분단은 우리 민족의 선택이 아니라 동북아에서 패권을 잡으려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비극이다. 하지만 분단의 원인을 패권 국가들에게만 전가하기에는 우리민족에게도 잘못이 많고 책임이 크다. 이번 개성공단 사태로 불거진 남북 간 극단의 대립은 패권 국가들에게는 기회가 되고 우리 한반도에는 큰 악재가 될 것이다. 남북이 반목하는 사이 우경화 망언을 연발하는 일본까지도 북한을 방문하여 대화의 물꼬를 트고 있으며, 중국, 러시아, 미국은 조용히 동북아에서의 입지를 굳힐 것이다.
100년 전, 한민족은 힘이 없어 지혜롭지 못한 잘못된 선택을 했고 그로 인해 국권을 잃고 분단을 겪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말았다. 이제 남북갈등 및 남남갈등을 화해와 상생의 마음으로 극복하여 향후 100년을 결정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힘없이 휘둘리는 백성들의 안타까운 삶의 질곡이 국가의 현명한 선택으로 해결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유창근 /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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