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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 스토리 | 혼자 쌀밥 먹는 욕심쟁이 모자놈? 2013년 6월호

윗동네 리얼 스토리 28 | 혼자 쌀밥 먹는 욕심쟁이 모자놈?
북한 남자들은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여자보다 항상 위다. 사회구조로부터 산생되는 현상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권위주의적 방식으로부터 특별우대를 받는 것을 응당한 것으로 여긴다. 가정에서 남자는 세대주고 여자는 남자의 부양으로 사는 집사람인 만큼 남편을 최대한 섬겨야 함을 미덕으로 여긴다. 이러한 예는 예로부터 굳혀진 전통이라 봐야 옳겠지만 현대에 와서 점차 그 방식이 허물어지고 있다.

필자가 살았던 북한은 배급제도의 영향으로 아직도 이런 가부장적 세태가 버젓이 성행하고 있다. 배급제도는 세대주의 직장에서 본인과 가족의 배급표가 나오기에 결국은 남자가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모양새다. 남편이 있는 한 아내가 직장을 다녀도 가족 배급표를 받아 올 수는 없다. 남편의 부양으로 받는 배급량이 300g인데 여자가 직장에 들어가면 700g을 본인만 받게 된다. 자녀가 있고 부모가 있다면 모두 남편 앞으로 배급표를 받게 된다.

식사시간에 드러나는 세대주의 권위란?

따라서 남자의 권위가 가정에서 인정받을 수밖에 없다. 세대주의 권위가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바로 식사시간이다. 대체로 보면 아침에 한 그릇씩 밥을 식기에 담아 상을 차리면 세대주인 아빠는 한 그릇 다 먹어도 괜찮지만 아내와 노모, 아이들은 한 그릇의 밥을 절반만 먹고 남겨야 점심에 굶지 않고 나머지 밥을 먹을 수 있다.

“나 점심 안 먹을래.” 뭐 이러며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체로 보면 아쉬운 대로 숟가락을 놓는다. 밥은 옥수수쌀을 앉히고 그 위에 입쌀을 얹어 밥을 하는데 먼저 세대주 밥을 두 그릇 하얀 쪽으로 담고 나면 누런 옥수수밥만 남는다. 당연히 밥상은 ‘부익부, 빈익빈’으로 갈린다. 그런데도 아버지들은 그 흰밥을 아무 가책도 없이 응당한 것으로 여기며 맛있게 비운다.

“욕심쟁이 모자는 세게 차야 정신이 들어”

식구들 역시 그런 것을 갖고 서운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아빠가 한 그릇 다 비우지 않고 조금 남기기를 바라는 애들이 있는데 간혹 남기게 되면 서로 그걸 차지하겠다고 형제가 싸우기도 한다. 그러나 배급제도의 붕괴와 함께 그런 응당한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필자가 살던 이웃에 대위 계급장을 단 사람이 살았는데 어느 날 저녁 우연하게 필자와 술 한 잔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도중 갑자기 이 사람이 밑도 끝도 없이 허허 웃는 것이었다. 군인이어서 그랬는지 평소 매우 과묵한 사람이어서 그리 웃는 것을 별로 본 적이 없었다. “왜 그러냐.”고 하니 이런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아침에 아내가 해 주는 밥을 먹고 부대로 나가던 그가 다시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서두르던 나머지 군모를 쓰지 않고 나왔던 것이다. 부엌에 들어서니 아내는 뒤울안에 있는 돼지우리에 먹이를 주러 나갔는지 보이지 않고 아직 거두지 않은 상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대위에게는 소학교 1학년에 다니는 아들과 유치원 높은 반에 다니는 아들이 있었는데 지금 윗방에서 저들끼리 무얼 차며 왁자하니 떠들고 있었다. “아버지 모자 가져오라.” 하고 소리치려다가 대위는 그만 입을 닫아 버렸다. 두 아들 녀석이 던지는 말이 심상치 않게 들렸기 때문이다.

“이밥(쌀밥)만 먹는 모자놈, 받아라!” 툭 하고 차는 소리가 났다. 막내아들 목소리다. 형이란 놈은 “그렇게 밖에 못 차? 저 혼자 이밥만 먹는 욕심쟁이 모자는 이렇게 세게 차야 정신이 들어, 봐라.”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튕겨난 모자가 벽에 부딪치는 소리까지 들렸다. 그 다음 서로 돌려차기를 하는지 모자가 방바닥을 굴러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때마다 아들놈들이 외치는 소리가 가관이다. “이밥모자 간다.”, “받았다. 아빠 점심 이밥은 내꺼다.”, “욕심쟁이 모자 탁.”

욱한 심정을 주체할 수 없어 대위는 얼떨결에 미닫이를 와락 열어젖혔다. 그렇게 문을 연 것을 조금 뒤에 많이 후회했다고 한다. 부대로 간 줄 알았던 아빠가 눈을 부라리며 눈앞에 나타나자 두 아들은 너무 황겁해 “아빠” 하고 동시에 부르며 목석처럼 굳어지더란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대위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잔의 술을 입에 털어 넣는다. 그날 점심 대위는 집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필자도 그랬지만 그 대위도 아무런 가책도 없이 가정에서 우대 받던 자신을 처음으로 많이 후회했을 것이다.

이지명 / 계간 〈북녘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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