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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 영웅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2013년 6월호

영화리뷰 | <아버지의 깃발>

영웅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월에는 전쟁관련 행사가 줄을 잇는다. 우리는 아직 북한이라는 교전 실체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시대가 많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전쟁관련 논의의 스펙트럼은 좁은 편이다.

반면 미국은 수많은 전쟁을 치른 전쟁의 ‘대가’답게 전쟁관련 영화의 소재가 매우 다양할 뿐 아니라 시각도 독특하다. 이번에 소개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버지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 2006)>은 미국과 일본 간 태평양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다.

이 영화가 특이한 점은 같은 해에 개봉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와 쌍을 이루는 구조 때문이다. 물론 둘 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작품이다. ‘유황도’라고 하는 동일한 공간에서 전쟁터를 바라보는 상반된 앵글, 그리고 그 전쟁터에서 울려나오는 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색다른 느낌이 다가 올 것이다. 두 영화는 하나는 미국의 입장에서, 다른 하나는 유황도를 지키는 일본군의 입장에서 그려냈다.

동일한 전쟁터를 바라보는 상반된 앵글

영화 속에서 가장 뇌리에 강하게 남는 영상은 상륙정에 탑승한 해병들의 눈에 비쳐진 회색빛 죽음의 섬 유황도가 펼쳐질 때다. 마찬가지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에서는 좁고 축축한 굴 속에 박혀 바다에 가득 찬 미군 전함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여기서 일본군 병사들은 거의 죽음을 직감한다. 양측 병사들이 공유하고 있던 감정은 ‘공포감’이었다.

영화 <아버지의 깃발>을 본다면 반드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도 볼 것을 ‘강추’한다. 아마도 두 영화의 영상과 카메라 앵글 등을 비교해 보면 색다른 재미가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배우에서 감독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이루어낸 영원한 ‘황야의 무법자’ 건맨 출신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달라 보일 것이다. 아직도 생생하다. 토요일 밤이면 TV에서 울려나오는 토요영화 배경음악과 함께 시작하는 서부극에서 깊은 눈주름을 가득 잡고 눈을 가늘게 뜬채 시가를 삐딱하게 문 그의 모습. 그리고 깔리는 앤니오 모리꼬네의 배경음악. 서부극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빼곤 말할 게 별로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1970년대에 감독으로 데뷔했는데 초기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다가 <용서받지 못한 자(1992)>에서부터 조금씩 그 재능을 드러내며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 <그랜 토리노(2008)> 등에서 묵직한 감동과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배우와 감독 모두 성공한 사람이 흔치 않은데 그런 측면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참 독특한 사람이다.

영화 <아버지의 깃발>은 참전용사의 아들이 아버지의 전우를 찾아 인터뷰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영화의 시대 배경은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치닫던 시점이다. 미국사회는 점차 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지쳐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미국정부는 전비를 마련하기 위한 추가 재원과 국민적 관심을 필요로 하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영웅을 필요로 했다.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질 때 등장하는 ‘5인의 해병’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태평양전쟁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유황도전투’의 상징이다. 미국정부는 만들어낸 영웅을 통해 전쟁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정작 그 당사자의 회고는 매우 덤덤하다 못해 냉소적이다.

전쟁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영화 <아버지의 깃발>은 전쟁, 국가, 영웅에 대해 침착하고 냉정한 정의를 내린다. 물론 이런 멘트는 대부분 동명의 원작 소설에서 차용한 것이다. “적들과 싸운 것은 국가일지 몰라도 싸우다 전사하는 것은 전우를 위한 것이다.”라든지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등 무게감 있는 멘트가 주인공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살아남은 ‘영웅’들은 유황도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간 전우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전쟁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그들의 삶이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전쟁터에 두고 온 무엇으로 인한 공허감이 이들의 삶을 감싼다.

전쟁은 항상 수많은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그 스토리는 누구에겐 상처로 누구에겐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이 땅의 무명용사들이 남긴 침묵의 아우성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들 귓가를 휩싸고 도나보다.

서유석 /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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