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한국 新성장엔진, 시베리아를 가다 | 기회의 땅 시베리아, 끊임없이 도전해야 2013년 6월호
통일한국 新성장엔진, 시베리아를 가다 마지막회 | 기회의 땅 시베리아, 끊임없이 도전해야

러시아 시베리아 남동쪽에 위치해 있는 바이칼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담수호다. 전혀 오염이 되지 않은 수질과 2,600여 종의 동식물이 살고 있어 1996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우리 조상들이 이동해 왔으며 <삼국유사>에 기록된 최초의 나라인 ‘환국’을 바이칼호 일대로 추정하기도 한다. Ⓒ연합뉴스
미국과 러시아가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등장하기 이미 100여 년 전에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1805~1859)은 미국과 러시아가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했다. ‘프론티어 정신’을 앞세운 미국의 서부개척과 ‘검은 담비를 쫓는’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은 두 국가 모두에게 제국(empire)의 조건과 환경을 제공했고, 토크빌은 그것을 정확히 보았다.
시베리아는 알려지지 않은 우랄산맥의 동쪽 지역이었다. 250여 년 동안 러시아를 지배했던 몽고-타타르의 세력들이 침략해 온 지역, 춥고 황량함으로만 알려져 왔던 지역이었다. 그런 지역을 이번에는 슬라브 민족들이 코사크족들을 앞세워 상업적 이해관계의 추구를 위해 침략하여 정복하고 식민화하였다. 그리고 죄수들을 보내 강제로 정착시키는 등의 방법을 통해 러시아의 분리될 수 없는 일부로서 통합시켰다.
그러면 러시아에 대한 시베리아의 의미는 어떤 것인가? 시베리아는 러시아의 이미지에 시베리아의 정체성과 이미지들, 즉 황량함과 혹한, 아시아적 특성, 유배지로써의 변경적 특성, 착취 및 개발의 대상으로써 식민지에 대한 이미지들을 추가했다. 다음으로 거대한 자원이 매장된 영토 확장과 정복, 육지를 통한 식민화, 강제이주(노동)와 정착(개발), 대륙을 잇는 대시베리아 철도 등은 러시아에 제국의 실질적 실용적 힘을 더해 주었다.
시베리아, 모든 광물자원 품고 있어
그러나 역시 시베리아의 존재 의미는 그 무궁무진한 자원에 있다. 과거 시베리아의 검은 담비가 러시아 제국을 유지시켜 주었다면,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에 러시아를 제국으로 유지시킬 수 있는 것은 광활한 시베리아가 품고 있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광물자원일 것이다. 니켈, 금, 납, 석탄, 몰리브덴, 다이아몬드, 은, 아연 등과 같은 많은 천연광물에 더해 석유와 천연가스는 시베리아가 품고 있는 진주인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중심부를 차지한 유라시아 대륙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런 러시아의 일부로서, 유럽 러시아와는 구별되는 지구 전체 육지면적의 1/12을 차지하고, 우랄산맥의 동쪽에 위치한 소비에트의 근대 ‘극동’ 행정구역을 포함하는 이런 거대한 대륙을 전통적으로 ‘시베리아’라 불렀다.
지정학의 창시자인 독일의 라첼(1844~1904)은 그의 저서 『정치지리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땅이 정치적으로 조직화되고, 이를 통해 국가는 유기체가 된다 … 국가는 그 자체로 유기체가 아니지만, 살아 움직이는 인간들이 움직이지 않는 땅과 연결되면 유기체가 된다. 인간과 땅은 강하게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인간과 땅은 하나가 되어 서로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서로 떼어 놓으면 국가는 그 생명력을 다하고 만다.”
시베리아가 낯선 곳으로 여겨지는가?
유기체가 아닌 국가를 구성하는 인간이 땅과 만나면 국가가 유기체가 되고, 유기체가 된 국가는 힘과 영향력을 표출하면서 주변의 땅(환경)과 상호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땅 위에서 펼쳐지는 인간과 국가의 정치적 의지의 구상과 표현이 지정학이라면, 러시아의 제국성은 본질적으로 지정학적 기초 위에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시베리아는 그리 만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시베리아의 개척은 자연적, 기후적, 인간적 도전이었다. 과거 순수한 정치범에서부터 흉악범까지 범죄자들을 포함하여 제국이 원하지 않았던 많은 인물들이 시베리아의 곳곳에서 개척촌 건설, 광산개발, 철도건설, 요새구축 등에 목숨을 바쳤다.
시베리아가 낯선 곳으로 여겨지는가? 그렇다면, 우리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이다. 드넓은 시베리아의 동토대 중간에 말들이 달리는 평원이 있고, 순록이 풀을 뜯는 초원이 있다. 그리고 그 어딘가에 우리의 조상들이 말을 달리며 천하를 호령하던 터전이 있었다. 시베리아가 왠지 낯설지 않은 이유는 바로 우리가 거기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추운 지방에서 생활하던 까닭에 얼굴이 두텁고, 검은 색의 곧은 머리카락과 돌출된 광대뼈, 흑갈색의 눈동자 그리고 몽고반점은 일찍이 우리 민족의 조상들이 드넓은 시베리아의 어디에선가 말을 달리던 기마민족, 유목민족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준다.
북방 시베리아에서 말을 달리던 우리의 호연지기는 한반도로 이주해 오면서 완전히 잊혀져 버린 것일까? 그나마 고구려, 발해까지만 해도 우리는 광활한 대지에서 대제국을 이루어 살아왔다. 그러나 시베리아와 한민족의 오랜 이별 후의 재회는 비극적이며 희생적인 것이었다. 19세기 중엽, 시베리아가 조선과 국경을 접하게 되고, 민족과 옛 터전이 새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지나간 세월에 시베리아는 이미 남의 나라 땅이 되었고, 함부로 갈 수도 없었다.
1864년(고종1년) 대흉년은 잊혀진 우리의 유목 기질을 되살렸다. 비록 배고픔을 피해 두만강을 건넜지만, 척박한 땅을 개척하고 농사를 지으며 시베리아의 한 모퉁이에 생활의 터전을 잡은 그들은 진정 유목민의 후예다운 개척자들이었다. 1874년 25명이 이주하여 초가집 다섯 채로 시작된 블라디보스토크의 개척촌(개척리)은 l년도 채 못 되어 신한촌(新韓村)으로 발전했다.
시베리아가 도전할 상대로서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고, 언제나 희생을 강요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는 그런 환경에 낯설지 않다. 이미 역사적으로 그런 자연환경 속에서 도전에 응했고, 강제이주 당한 신한촌의 한인들이 중앙아시아에서도 증명해 보였듯이 우리 민족은 그 어떤 환경적 어려움에도 끊임없이 도전하여 생명력을 이어갔던 민족이다. 지금 현재도 그렇지만 자원개발, 남·북·러 가스관 및 철도 건설, 시베리아 도로, 북극권 항만 건설, 쇄빙선, 북동항로, 교통 인프라 구축 등 미래 언젠가는 시베리아가 거대한 잠재력을 앞세워 통일한국 시대의 큰 기회로 다가올 것이고, 우리는 조상들이 그리하였듯 끊임없이 당당하게 쟁취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민족의 사명이자 살 길인 것이다.
배규성 / 배재대 한국-시베리아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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