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 자유를 향한 세상으로의 투신 2013년 6월호
북리뷰 | <14호 수용소 탈출> 블레인 하든 지음
자유를 향한 세상으로의 투신
최근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설치되면서 북한의 인권 상황도 개선되리라는 국제적 기대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북한 수용소 인권실태를 낱낱이 고발한 <14호 수용소 탈출>이 출간됐다. 이 책은 수용소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 신동혁과의 인터뷰를 재구성한 저서이다. 그는 14호 수용소에서 탈출한 유일한 사람으로 그의 증언만이 수용소의 실상을 알려준다. 이 청년은 수용소 안의 삶만이 유일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깥 세상에 관해 말해줄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이 처한 삶에 대해 서서히 자각하고 정체성에 대한 자문을 하게 된다.
그의 인생은 영화 <타잔>을 떠올리게 한다. 밀림에서만 생활하던 타잔이 짐승들과의 생활을 떠나 인간들과의 생활에 적응해가듯, 신동혁 또한 수용소에서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기존 습성과 생활을 하나씩 지우고 작은 것부터 다시 채워나가고 있기에 문명사회에서 걸음마를 시작한 것과 다름없다. 그는 “저는 동물 같은 존재에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아주, 천천히 변해 갑니다. 가끔은 어떤 느낌이 들까 싶어서 다른 사람들처럼 울고 웃어 보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웃음이 나오지 않습니다.”라고 한다. 24살에서야 감사와 용서 등의 감정마저 처음부터 천천히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14호 수용소 재소자에서 인권운동가로
한편 타잔은 자신이 자란 밀림을 지키려하지만, 신동혁은 그가 머물렀던 수용소를 없애고 남아있는 이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현재 그는 수용소에 자유를 전하기 위한 사명을 갖고 인권운동가로 활동 중이다. 처음에는 북한 인권운동이 갖는 상징성을 몰랐던 그지만, 점차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활동가로 스스로 변모해가고 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잃었던 인간성이 이제야 되살아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야말로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임을 시사하는 듯하다.
이 책의 저자인 블레인 하든은 신문 기자 출신으로 수차례에 걸친 신동혁과의 인터뷰를 통해 책을 만들었다. 수용소에 관해 처음 들었을지도 모르는 대중들을 상대로 했기에 저자는 다른 탈북자 수기를 간간히 소개하면서 관련 이야기를 확대한다. 이는 이해를 돕기 위한 방법으로 배경 지식이 없는 이들에게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자칫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저자는 북한 정권에 대한 생각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으며,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과 힘들어하는 모습을 가감 없이 묘사하며 수용소를 탈출한 바깥에서의 삶 역시 순탄치 않음을 암시한다.
이 책은 인간이 끊임없이 사투하는 존재임을 느끼게 한다. 핍박받고 스러져 가는 생명의 빛들을 통해 충격과 함께 경건함마저 불어 일으킨다. 어쩌면 그의 투쟁은 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 형용할 수 없는 일들이 21세기에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그 곳. 그의 행동은 단순히 14호 수용소 탈출이었지만 어쩌면 잠재되어 있던 자유를 갈망한 세상으로의 투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선수현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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