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리의 스케치北 1 | 똑. 똑. 북한미술 노크 2012년 1월호
박계리의 스케치北 1| 똑. 똑. 북한미술 노크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과 김정은의 등장으로 주식이 폭락하고, 매스컴에선 연일 관련 기사들을 내보내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들의 일상에 북한이라는 존재가 그리 깊게 들어온 적이 있었을까.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현대미술을 이야기하면서 관찰해보면 포스트모던과 다문화성, 세계화의 정치적 함의와 지역색을 논할 때 학생들은 우리의 미술계가 뉴욕의 미술 담론과 동시대적으로 호흡하고 있음을 당당히 얘기한다. 또 앞으로도 그러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촉수들을 세워 민감하게 들이민다.
그러다가 포스트모던한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모던성, 우리의 현대미술에 대해 이야기하며 북한이라는 존재를 수면 위로 올리면 학생들은 순간 당혹해 한다. 자신들의 인식 지도엔 북한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잊고 살고 있고, 어쩌면 잊고 살고 싶은 북한은 언제나 불현듯 매스컴에 등장하면서, 갑작스레 폭력적으로 나타났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소리 소문도 없이 자신의 인식 지도 위에서 지워져가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반쪽의 공간이 출렁일 때마다 여지없이 남은 반쪽이 전 사회적으로 출렁거리는 것처럼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식지도에서 북한이 지워져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문화적으로 그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인 듯하다. 내 몸의 필요 없는 존재로 퇴화되어 버린 꼬리뼈를 인식하고 살지 않다가도 엉덩방아를 찧으면 여지없이 그 존재를 온몸으로 체화할 수밖에 없듯, 꼬리뼈와 같은 존재로 우리 몸 어딘가에 새겨져 있는 북한. 내 몸 안 어딘가에 있는지 잘 알지만, 잘 생각해보면 실은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모르는 현실처럼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다치기 전에는 잘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무의식적 기피 안에 갇혀있다.
‘북한에도 스타 작가가 있을까?’
평범한 질문을 해보자. 북한에서는 어떤 그림을 그리며, 무엇을 아름답다고 생각할까? 우리처럼 미술작업을 할 때 유행이라는 것은 있을까? 어떤 미술작품이 좋은 작품인가에 대한 미학적 논쟁은 존재할까? 북한미술은 가짜 작품이 많다던데, 금강산에 여행 갔다가 또는 개성에 여행 갔다가 사온 작품의 진위문제는 걱정할 필요는 없는 걸까? 우리의 박수근, 이중섭, 최근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전시를 가진 이우환과 같은 스타 작가가 북쪽에도 있을까? 있다면 그들은 누구이고, 또 어떤 그림을 그릴까?
생각해보면 이러한 상식적인 물음마저도 대답하고자 할 때엔 궁색함을 피할 길이 없다. 여태껏 잘 몰랐기 때문이다. 이제 실제로 잘 모르고 살았던 북한미술에 관한 이야기, 아주 기본적인 물음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북한에서 제작된 작품을 위주로 말해 볼 것이다. 그들이 제작한 작품 중에서도 우리의 시선으로 감동할 만한 작품이 있는지 들여다보려고 한다.
미술작품은 언어로 사고하는 작가의 생각을 색채와 선의 형태로 표현하는 시각미술품을 말한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표현하려고 하는 의도를 언어로 써놓은 경우에는 작가의 의도를 감상자가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반면, 미술로 표현하면 감상자가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작품을 이해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오키프의 작품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여성의 생식기를 떠올렸는데 실제로 작가는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다며 매우 기분 나빠했다. 신윤복의 미인도는 당시엔 매우 야한 그림이었지만 현대인들은 이 그림을 보고 전혀 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의 저고리의 옷 고름이 풀리고, 속고름마저 풀리기 직전의 모습. 특히 버선발이 보이는 이 작품은 신윤복 당대엔 매우 야한 그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오늘날의 야한 이미지들 사이에서 신윤복의 미인도는 그저 아름다운 그림이며, 작품 속의 여인은 우아하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작가와 작품 사이의 간극, 그리고 작품과 감상자 사이 체험의 과정 속에서 작가의 의도와 감상자의 해석 사이에는 간극들이 존재할 수 있다. 바로 그 지점이 미술비평이 갖고 있는 매혹적인 부분이기도 하고, 미술작품이 갖고 있는 매력이기도 하다. 이러한 수용미학의 측면을 인정한 상태에서 북한미술 작품들을 감상해 보고자 한다.
평소에 누가 사는지 관심조차 갖고 있지 않았던 바로 옆집에 잠시 수다를 떨기 위해 마실 가듯 편한 차림으로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박계리/ 이화여대박물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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