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1월 1일

만나고 싶었어요| “미술치료, 탈북학생들 자기인정의 첫 걸음이죠” | 윤덕애 여명학교 미술치료사 2012년 1월호

만나고 싶었어요| “미술치료, 탈북학생들 자기인정의 첫 걸음이죠”

서울 남산 중턱에 여명학교가 있다. 전교생 70명이 모두 탈북청소년인 대안학교다. 이곳 지하에 조그만 미술실이 있고 그 안에는 한 아름으로도 안을 수 없는 넉넉한 미소의 미술선생님이 있다. 도화지에 그려가며, 찰흙을 빚어가며 7년 동안 변함없이 학생들과 함께 울고 웃은 선생님, 윤덕애 미술치료사를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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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학교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나요?

‘문화나눔’이라고, 예술강사 400여 분과 함께 자원봉사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각 보육원에서 미술을 가르쳤는데 보육원 아이들 만나다보니 미술만으로는 안 될 것 같더라고요. 미술치료를 전문적으로 배워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숙명여대 평생교육원에서 미술치료를 공부하고 그 후에 자원봉사 자리를 찾다가 여명학교에 오게 되었어요.

그 전에 제가 다니넌 교회에서 김양재 목사님께 말씀을 듣고 우연히 기회가 닿아 여명학교에 찾아와 교감 선생님을 뵌 적이 있었죠. 교감 선생님은 ‘탈북 학생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동시에 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분이셨어요. 마음이 많이 움직였어요. 이런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 전에는 탈북 학생들을 직접 만나볼 기회가 있었나요?

그 전에는 탈북자에 대해 전혀 몰랐죠. 사실 처음엔 무서웠죠. 지금은 아니지만.(웃음) 그런데 그땐 그랬어요. 애들이 표정들도 경직되어 있고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 같은 게 있었거든요. 학생들이라고 하지만 27~28세 정도도 있고 남자애들이 특히 많아서 솔직히 ‘집에 갈 때 뒤를 쫓아오면 어쩌지?’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우린 같은 민족이다’ 이런 동질성을 갖는 느낌보다는 많이 무서웠던 게 사실이에요.

첫 번째 수업 날 많이 긴장했겠네요.

덜덜 떨고 기도란 기도는 다 했죠.(웃음) 한 반에 8~9명 정도 있었어요. 남학생이 6명 정도 되었고요. 처음엔 수업 끝나고 나오면 진이 다 빠져서 ‘이 일을 왜 하고 있지?’하면서 버스 정류장에서 많이도 울었어요.

여기 생활 초기에 일인데요. 제가 가지고 갔던 미술재료를 학생들이 밟고 지나가는 거예요. 몰래 녀석들이 흘리는 말을 들어봤는데 ‘우리는 배고파서 괴로웠을 때 여기선 이런 거 가지고 놀고 있었네.’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가고…. 또 한 번은 수업시간에 방해되니 휴대전화를 다 수거했어요. 근데 어떤 여학생 한 명이 저한테 ‘저 아이는 안 걷었는데 왜 저만 걷어요!’ 하면서 막 대들더니 결국엔 욕을 하면서 교실 문을 꽝 닫고 나가는 거예요.

힘든 과정 거치고 여기 와서 적응하는 학생들 마음, 이제는 아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하겠지만 처음엔 힘들었죠. 그렇게 밖에 나와서 울고 다른 선생님이나 학생들에게 위로 받고 마음 추스르면서 견뎌나갔어요. 아,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시절이 있었네요.(웃음)

수업 진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실제 강의실에 있으면 북한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에요. 학생들이 여전히 학습에 힘겨워하는 면이 있는데 언어적 측면에서 그래요. 서로 안 통하는 거죠. 7년이 지난 지금도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 저는 잘 못 알아들어요. ‘표시가 나거든요’ 이 말을 ‘알리거든요’ 이래요. ‘힘들다’는 ‘바빴다’ 이렇게 말해요. 여기 와서 알았어요. 어감의 차이가 확실히 나죠.

미술로 치료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이런 일이 있어요. 어떤 학생이 그림을 그리다가 끝까지 빨간색을 쓰지 않겠다는 거예요. ‘왜 그래?’ 물어보죠. 이 학생 말이 빨간색을 보면 북한에서 빠져나올 때 봤던 피가 생각난대요. 분명 상처가 있는 거죠. 빨강이라는 색깔에 투영되어서 나타나는 거고요.

이럴 때 제가 그 이야기를 다 들어주면서 풀리게 하는 거죠. 여러 번의 치료를 거쳐 상처를 벗어나게 해주는 겁니다. ‘이것 봐, 선생님하고 같이 하니까 이렇게 불처럼 활활 다 타서 없어지네.’라고 하면서 빨간색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주는 거죠.

이런 것도 있어요. 큰 전지에다가 물감을 흩어놓아요. 그리고 그 안에서 생각나는 단어들을 추출하고 그걸 엮어서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을 시켜볼 때가 있거든요. 근데 처음에 이 학생들이 뭐라고 마무리를 짓는 줄 아세요? 보통 어떻게 어떻게 해서 ‘빠져 죽었다’, ‘찔려 죽었다’ 이런 식으로 끝내는 거예요.

그 때마다 똑같이 반복하는 거죠. 들어주고 견뎌주고 바꿔주고. 중요한 건 학생들을 이해하는 거예요.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보낸 학생들을 이해해주지 못하면 미술치료는 할 수 없을 거예요.

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나요?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심리상태가 많이 나타나죠. 예를 들면, 미술치료에 ‘동굴화’라는 게 있어요. 학생들에게 말해요. “동굴 안으로 들어갑니다, 들어가다 보니 너무 많이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뒤를 돌아봅니다.” 그런 다음에 바로 “지금 상황을 그려보세요.”라고 해요.

보통 밝은 이미지가 나타나는 경향이 많거든요. 그런데 탈북 학생들은 자기를 쫓아오는 남자, 특히 총이나 칼을 들고 쫓아오는 남자를 많이 그려요. 여학생들 같은 경우 험악하게 위협하는 남성을 그리기도 하고요. 군인도 많이 나타나죠. 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에 있다는 거예요.

어떤 학생은 꽃을 그리기도 해요. 사실 처음엔 ‘특이하다,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어있나?’라고 생각했는데 치료과정에서 수차례 면담하면서 알아보니 그게 ‘김일성화(花)’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자신을 따라온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게 상징화된 북한에서의 이미지가 억압적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는 식의 그림도 많이 나타나요. 어떤 학생들은 그런 상황에서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고 머리를 싸매면서 괴로워해요. “못 그리겠어요, 선생님. 무서워요.” 실제로 이렇게 말해요. 그럴 때 제가 다독거리면서 옆에서 도와주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학생이 그릴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그려놓고선 치료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거죠. 두려움의 대상이 표현된 그림을 학생과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지우거나 없애거나 하죠. 그걸 피드백이라고 해요. 그걸 해주면 가상이라 할지라도 학생은 대리만족을 느끼게 되고 조금씩 상처로부터 벗어나게 되죠.

학생들이 심리적으로 많이 바뀌나요?

정말 많이 바뀌죠. 미술치료의 첫걸음이 바로 ‘자기인정하기’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도록 거울이 되어주는 거죠. 이 그림(사진1) 한 번 보세요. 이건 미술치료사가 보면 딱 아는 그림일 정도로 잘 알려진 패턴이죠. 이 그림이 어떤 의미냐면, 가지가 다 잘려 있잖아요. 뒤에는 철조망이고요.

이게 이 학생이 그린 자신의 깊은 내면의 모습이에요. ‘이게 너의 마음이야’라는 식으로 그림에 대해 해석해주면 어떻게 나오는 줄 아세요? 손을 부르르 떨어요. 안 하겠다고 고집부리기도 하고요.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직면하는 게 이렇게 힘들다니까요. 스스로 올 때까지 기다렸어요. 결국 다시 돌아오더라고요.

이 손 모양 작품(사진2) 보이시죠. 학생이 몇 시간 동안 자기 손 모양을 모델로 고정해서 만든 것이거든요. 근데 손가락 부분이 부러져서 낙담하고 했었어요. 온갖 정성을 들여 만들어 나갔는데 탁 부러졌을 때 이 학생이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선생님, 제가 또 한 번 죽은 것 같아요’ 이래요.

그런데 이걸 저와 함께 붙여나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스스로 마음이 많이 편안해지고 안정되는 기분을 느낀 거죠. 이후로 그 학생이 완전 미술치료 전도사가 되어서 학교 안에서 만나는 아이들마다 미술치료 받으라며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그럴 때마다 너무너무 보람을 느끼죠.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 아이들은 사실 통일을 바라면서도 통일을 두려워하는 측면이 동시에 있어요. 자기들이 북한의 가족들을 버리고 왔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죄책감이 있어요. 저는 그걸 지워주고 싶어요. 학생들이 어려운 환경이지만 끝까지 잘 버텨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힘들면 항상 여기서 기다리는 선생님이 있으니까 믿고 의지하면서 당당하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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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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