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 시간 걸려도 원칙 바로 세워야 2013년 7월호
쟁점 | 남북회담 격(格)문제, 어떻게 봐야 하나?
시간 걸려도 원칙 바로 세워야

지난 6월 9일 김혜성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가운데), 황충성, 김명철 등 북한 대표단이 남북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을 갖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지도체제 등장 이후 북한은 심각한 군사적 긴장국면 조성에 이어 대남·대미 대화 공세로 극과 극을 달리는 정책을 표방해 오고 있다. 먼저 북한은 인위적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상황을 조성하고 이를 ‘반미대전’으로 선전하였다. 김정은이 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하는 대결전을 직접 진두지휘하는 강력한 군사 최고지도자 상을 부각, 선전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면 북한당국이 최고군사지휘관으로서의 김정은을 부각하기 위해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꾼협의회를 소집하고 지도”하거나 서해 군부대를 직접 방문지도하는 김정은의 모습을 대대적으로 선전해 온 것이 그것이다. 또 북한당국은 김정은을 “오늘의 첨예한 반미 대결전, 21세기의 핵 대결전을 승리로 이끄는 희세의 영장, 천재적 군사 전략가,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으로 만들고자 하는 고육책을 수행한 것이다. 이것이 지난 몇 개월 동안 북한이 전개해 온 한반도 군사적 긴장조성을 위한 ‘핵대결전’ 드라마의 실체다.
이후 북한당국은 대화모드를 통해 핵무장력을 바탕으로 한 외교전을 전개하여 대미관계와 대남관계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하는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먼저 북한은 군사적 긴장조성 이후 첫 외교행보로 북한군 총정치국장인 최용해가 중국을 특사자격으로 방문토록 하였다. 여기에서 북한은 최용해의 입을 통해 관계국가들과 대화를 하겠다는 약속을 중국에 표방함으로써 그들의 대화모드로의 전환 의도를 밝혔다.
북한당국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남북한 대화와 미·북대화를 제의하기에 이르렀다. 먼저 북한은 6·15공동선언 기념 공동행사를 위한 민간대화 제의로 대화공세를 시작하였다. 남한당국이 이를 불허하자 북한은 북한식 ‘조국통일’ 전위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내세워 당국회담을 제의하였다. 여기에서도 북한이 노린 것은 6·15공동선언 기념 공동행사를 관철하는 것인 듯하다.
北 ‘꼼수회담’으로 南 분열·혼란 도모
북한당국은 당 외곽 단체인 조평통을 남한의 통일부와 대등하게 자리매김해서 ‘대화투쟁’을 통한 대남 혁명전략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고자 한 것처럼 보인다. 이를 위해서 북한당국은 우선 6·15공동선언 기념 공동행사 개최를 성사시켜 남한의 각종 민간통일단체를 재결집하여 남북관계를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결국 그들은 당국회담에서도 남한정부가 6·15공동선언 기념 공동행사를 받아들일 기미를 보이지 않자 당국회담을 무산시키는 수법을 쓴 셈이다.
이 같이 북한당국이 여전히 진의회담이 아닌 ‘꼼수회담’으로 남한사회의 분열과 혼란을 도모하고자 하는 상황에 직면해서 우리는 원칙과 일관성을 가지고 대북정책을 추진해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북한당국의 꼼수를 적당히 받아들여 상황을 일시적으로 모면하고자 하는 감상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회담을 위한 회담과 같은 회담 업적주의에 집착한 나머지 북한당국의 ‘나쁜 행동’을 눈 감아 주거나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서도 안 된다.
북한은 특수체제이기 때문에 북한의 ‘나쁜’ 또는 ‘돌출적’인 행태를 어느 정도 감안해서 대응해야 한다는 태도를 지나치게 적용해서도 안 된다.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유화적 태도는 북한을 변화시키기보다 기존의 비합리적 체제를 더욱 공고화 하는 기회만 줄 뿐이었다. 이제부터라도 북한의 특수성을 고려하기 이전에 북한을 어떻게 국제적 규범에 따르는 집단으로 바꾸어야 나갈 것인지를 확고한 원칙으로 삼고 북한의 실질적인 변화를 위한 노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어떠한 대화를 할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북한과의 대화의 문을 열어 놓되 지나치게 서둘러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대화를 하느냐다. 최소한 남북한 당국이 격을 맞추어 상호 존중하는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대화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곧 신뢰구축의 첩경이다. 이것이 이번 남북당국대화 추진과정에서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단호하고도 원칙적인 대응태도가 앞으로도 변함없이 견지되어야 하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원칙과 일관성 견지로 인해 향후의 남북대화 재개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고 한다. 언뜻 보기에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당장의 성과보다는 작은 신뢰라도 쌓는 것이 먼저다. 남북한이 약속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신뢰 쌓기를 해나가는 것이다. 동시에 남북한이 상호 이익이 되는 부문을 찾아 교류하고 협력하는 노력도 게을리 말아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신뢰구조를 제도화함으로써 평화적 통일의 발판을 만들어 나가도록 하는 인내도 필요다. 기본적으로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요구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약속을 통한 작은 신뢰환경이라도 조성되기만 하면 이후부터 남북관계가 매우 급작스럽게 발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우 겉으로는 핵·경제 병진정책을 떠들고 있지만 경제건설이 더 급선무다. 주민들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향상시켜 주는 조치가 뒤따라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자력갱생으로 경제건설을 한다지만 이는 주민들을 쥐어짜는 행위에 불과해서 주민들의 불만을 더욱 증폭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북한이 체제유지를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대외적 지원을 보다 더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도 북한 스스로가 대미접근이나 대남한 접근을 재개하거나 적극화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원칙과 일관성을 기초로 한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 놓고 기다려 보는 것이 어떨까?
정영태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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