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 과연 최선책이었는가? 2013년 7월호
쟁점 | 남북회담 격(格)문제, 어떻게 봐야 하나?
과연 최선책이었는가?
애초부터 남북당국회담을 바라보는 양측의 목적과 기대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회담이 순항하리라 생각하기는 어려웠지만, 회담이 개최되지도 못한 것은 양측 모두가 바라지 않은 결과였다. 그렇다면 회담이 왜 무산되었는가?
먼저 양측은 회담 개최의 절박성에서 큰 인식차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측은 개성공단사업 중단으로 북한이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보고 있는데다 한·미·일 대북제재 공조가 잘 다져졌고 중국마저 북한을 압박하고 있으므로 북한의 회담 제의는 개성공단을 살리고 금강산관광사업을 재개하여 경제적 회생을 모색하는 한편 외교적 고립을 면하려는 절박한 필요에서 비롯된 사실상 남한에게 고개를 숙이는 행위로 본 것으로 평가된다.
상대방이 더 손해? … 남북, 각자 자기 입장 고수
반면 북한이 회담을 제의한 것은 절박한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최용해 특사가 중국을 방문한 직후 시진핑 주석에게 약속한 관련국과의 대화를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북·중 ‘혈맹’관계를 회복하고 미·중 정상회담에서 반북 합의가 도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연출’의 성격이 강했다고 여겨진다.
개성공단이 단순 고용에 그쳐 북한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근로자 임금수준이 중국 노동자 수준보다 낮은데다 근로자들이 남한을 동경하게 되는 반체제적 위협이 감지되므로 대안 모색을 검토하고 있었을 수 있다. 따라서 양측 모두 겉보기와 달리 회담 개최의 절박성이 크지 않았던 데다 회담 결렬시 상대측이 더 손해라고 간주하면서 타협보다는 자기 입장을 고수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북한이 회담 개최지로 서울을 수락하고 실무접촉 장소도 개성이 아니라 판문점 우리측 지역인 ‘평화의 집’을 수용한 것도 전술적으로 대화의 ‘진정성’을 과시하려는 취지에서 비롯됐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측은 이를 북한측의 열등한 협상력 때문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본 회담의 의제와 대표의 급 문제에서는 양보를 거부했다. 의제 부문에서 북한은 6·15공동선언 기념행사를 공식 의제화하려 고집했는데 이를 통해 5·24 대북제재를 유명무실화 하려는 북한측 의도를 간파한 우리측이 이를 거부하였다.
더 큰 문제는 대표의 급이었다. 그간 남북 간에 성사된 많은 회담은 우리 국정원과 북한 통일전선부(이하 통전부) 사이 그리고 우리 통일부와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 사이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는 대북정책을 총괄하는 통일부 장관과 통전부장 사이의 회담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 측은 지난 20년간 남북당국회담이 통일부총리와 통전부장, 통일부 장관과 조평통 제1부국장, 통일부 차관과 조평통 부국장 사이에 이루어졌다는 관행을 지적하면서 통전부장이 북한 대표를 맡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였다.
이에 우리측은 ‘남측 수석대표는 남북문제를 책임지고 협의·해결할 수 있는 당국자’로, 북측은 ‘북측 단장은 상급 당국자’로 각각 발표하고, 회담 하루 전 김남식 통일부 차관과 강지영 조평통 서기국 국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명단을 교환했는데, 북측이 자기들은 장관급이 나오는데 남한은 차관이 나온다고 하여 회담 자체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우리 정부 입장은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것으로 대표의 급과 격이 맞지 않으면 합의를 이루어도 결국 제대로 이행이 되지 않으므로 급과 격이 맞아야 회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내용면에서 옳고 국민 정서에도 부합한다. 단지 합목적성과 실용성 등에서는 최선책이었는지를 검토해 볼 수 있다.
먼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북한의 나쁜 버릇을 고치는 것은 좋지만 전략면에서 중·장기 과제를 단기과제로 한 번에 해결하려는 과욕이었을 수 있다. 정책의 실현가능성과 전략적 합리성에 대한 고려가 불충분했던 것 아니냐는 의견이다. 특히 개성공단 문제는 시급히 해결되지 않으면 123개 기업과 수많은 협력업체가 치명타를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이 우려된다. 대부분 고령이어서 매일 4명 이상이 사망하는 이산가족의 상봉도 시급하다.
개성공단 정상화와 이산가족상봉 시급해
남북관계에서의 정책 우선순위를 볼 때, 북한의 도발 억지, 한반도 평화 회복과 정착, 북핵문제 해결, 인적 교류와 호혜적인 협력 도모 및 평화통일 기반 조성, 북한의 대중 의존 억제, 북한의 급변사태 대비 등 다양한 과제들이 있는데 남북회담 결렬로 이들 과제는 뒤로 미루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향후 정부는 개성공단 정상화와 이산가족 상봉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남북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회담 결렬이 다분히 실무접촉이 불충분했던 데 기인하므로 실무회담을 재개하고 충분한 협의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대표의 급과 격이 문제가 된다면 상호간에 문제가 없는 총리급 회담을 개최하거나 서로가 동의하는 실무책임자급 회담을 가지면 될 것이다.
대화나 협상이 없을 때 상대방의 손실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둘 다 손해를 보는 ‘방휼지쟁(蚌鷸之爭)’ 상황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고 일정 정도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서로가 득을 보는 정책을 취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홍현익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