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7월 1일 0

윗동네 리얼 스토리 | 뛰는 단속반 위로 나는 팔봉이 2013년 7월호

윗동네 리얼 스토리 29 | 뛰는 단속반 위로 나는 팔봉이

일요일도 아닌 주중 오후, 팔봉이네 집에 또래 고등중학교 6학년 학생 예닐곱 명이 모여들었다. 비디오로 남한 영화를 보기 위해서다. 저녁시간이나 주말엔 부모들이 집에 있어 엄두를 못 내고 이렇게 주중 하루를 택해 낮 시간을 이용한다. 수업할 시간인데 아파트에 학생들이 모여 들면 이상한 일이지만 그건 옛날 소리고 지금은 학교 안 가는 애들이 너무 많아 별로 주의를 돌리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불법단속반 요원들의 눈은 그렇지 않다. 그렇게 모여 들어 외국 영화나 남한 드라마, 영화를 보는 것을 알기에 은밀히 뒤따라온다. 그렇지만 무작정 따라 들어가 잡는 것은 아니다. 두 단속원은 학생들이 팔봉이네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알아내고 경비실에서 잠시 대기한다. 한창 재미 삼매경에 빠졌을 때 뛰어 들어가 한꺼번에 잡으려고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다.

‘이놈들 시치미 떼는 것 좀 보게’

학생들이 모두 올라가고 40분 정도 시간이 경과하자 단속원 하나가 경비원을 시켜 아파트종합 전원을 꺼버린다. 그 다음 스위치함 앞에 한 사람은 남고 다른 사람은 부리나케 6층을 향해 뛴다. 팔봉이 집 앞에 이른 다음 자못 긴장한 마음으로 노크를 한다. 이제 죽을죄를 지은 녀석들이 자기 무릎 아래 설설 기며 용서해 달라고 비는 꼴이 보이는 듯하다. 전기를 꺼 버렸으니 비디오에서 테이프나 CD를 빼낼 수 없어 현행범으로 잡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이 이내 열린다. 집안에 들어선 단속원은 의외의 광경에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당황한 얼굴들을 볼 줄 알았는데 수학책이나 덕성실기 같은 책을 쥐고 마치 ‘넌 뭐냐?’ 하는 눈초리로 쳐다본다. ‘이놈들 시치미 떼는 것 좀 보게.’ 단속원은 휴대폰을 연결하여 경비실에 남은 동료에게 전기를 넣으라고 소리치고는 씩 웃었다. ‘번쩍’ 하고 전기가 들어오자 어서 TV를 켜라고 소리쳤다. 팔봉이가 “네.” 하며 TV를 켠다. ‘쏴’ 하는 잡음이 귀를 메운다.

북한에는 채널이 하나로 고정돼 일요일이 아닌 평일에는 낮 시간에 방영을 안 하고 저녁 5시부터 한다. 팔봉이를 밀어낸 단속원은 비디오 버튼을 누른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고개를 갸웃했지만 증거가 없으니 뭐라 말할 수도 없어 그냥 물러날 수밖에 없다.

머리를 갸웃하며 단속원이 내려가자 학생들은 ‘야호’ 하고 소리치며 모두 좋아 날뛴다. 그리고는 이내 TV 앞에 모여 앉는다. 한창 재미있게 한국 영화를 보는 중 뛰어든 불청객에 대한 생각은 벌써 사라지고 빨리 바꾸라고 소리친다. 사연은 이랬다.

영화에 푹 빠져 들 무렵 갑자기 정전되자 “비상!” 하고 팔봉이가 소리쳤다. 미리 약속된 행동이다. 한 학생이 날쌔게 달려들어 보던 비디오를 TV와 분리시켜 옷장 이불속에 감추고 대기시켜 놓았던 속 빈 비디오 기계를 TV에 연결시켜 놓는다. 모든 공정은 눈 깜짝할 사이에 치러진다. 전기가 꺼지면 비디오 속 필름을 꺼내지 못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한 것들이다.

“비상!” … 순식간에 속 빈 비디오 기계로 교체

그 다음 책가방에서 책을 뽑아 손에 드는 순간 약속이나 한 듯 노크 소리가 들린다. 이럴 땐 지체 없이 문을 열어야 한다. 늦어지면 의심을 받기 때문이다. 문 안에 들어서는 단속원에게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하는 팔봉의 얼굴빛은 자못 진중하다. 들키면 인생을 종치는 엄중한 범죄를 방금 저질렀다는 주저감은 얼굴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후 학생들은 영화 한 편을 아무 방해 없이 보고나서 뿔뿔이 흩어져 갔다.

실제로 북한에서 남한 영상물을 보다가 들키면 그것으로 인생은 끝난다. 그런 위험천만한 일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오늘날 북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면 볼수록 경이롭고 놀라운 동족의 나라 남한의 현실, 그곳 사람들의 현란하게 사는 모습은 죽어서도 누리고 싶은 꿈이기에 드라마 한 편 보는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보고 싶고 누리고 싶고 그 속에 묻혀 보고 싶은 그 마음의 질주를 막을 힘은 아마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이지명 / 계간 〈북녘마을〉 편집장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