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쉿! 지금은 시험 시간 2013년 7월호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7 | 쉿! 지금은 시험 시간
오랜 기간 교사생활을 한 탓인지 ‘7월’ 하면 무더위도, 물놀이도 아닌 시험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북한의 학교도 일반적으로 한국과 유사하게 학기가 끝날 무렵 1년에 두 차례 정도 치르게 된다. 1학기가 끝날 7월 중순에서 8월 초면 전국의 중학교는 학기말 시험을 치르고, 8월 10일경이면 여름방학이 시작되어 지금쯤이면 학생들은 시험 공부에 정신이 없을 때이다. 여느 학교나 시험기간의 모습은 비슷하겠지만, 북한의 시험 보는 날은 조금 씁쓸하다.
문제 풀 시간은 45분 중 고작 25분?
땡땡땡! 한국에서는 시험을 알리는 종이 치고, 보통 복사된 시험지가 학생들에게 전달되자마자 치열한 연필 소리와 긴장감이 시간 내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진 북한에서의 시험 시간은 조금 다르다. 교사가 시험 문제를 읽어주고 학생들은 문제를 받아 적는다. 수학, 물리, 화학 같은 과목들은 칠판에 적기도 한다. 보통 10문제를 출제하는데 시험시간은 45분이다. 여기에 문제가 생긴다. 교사가 문제를 읽어주거나 칠판에 쓰다보면 45분 중 20~25분이 훌쩍 지나간다. 결국 학생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25분에 불과하다.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은 문제의 답을 다 쓸 수 있으나 대부분의 학생들이 실력을 발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일 수 있다.
더욱이 각 교실별로 들어가는 선생님에 따라 학생들의 점수가 갈리기도 한다. 가령 예체능 선생님이 수학 시험에 들어간다면 학생들의 표정은 좋지 않다. 해당 교사마다 발음과 억양이 다르며 익숙하지 않은 과목의 문제를 불러주거나 쓰다 보니 여기저기 되묻는 학생들이 나타난다. 학생들의 물음이 난무할수록 문제를 풀기는 더 어렵다.
학생들과 교사들의 진땀 빼는 시험 시간이 끝났다면, 이제 교사들에게는 채점하는 과정이 남는다. 물론 채점은 수작업이다. 요즘과 같은 OMR 답안지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채점은 5점 만점이다. 사실상 5점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이전 10점제에서 5점제로 변하며 더욱 냉정히 평가하게 만들었다. 10문제에는 각각 비중을 둔다. 가령 1번은 2점, 2번은 0.5점, 3번은 2점 등 이런 식으로 10개 문제의 합이 10점이 되게 한 후 각 문제를 1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긴 후 2로 나눈다. 이 때 반올림을 하여 시험지 성적이 4.5면 5점이고 4.4점이면 4점이 된다. 여기에 평상시 성적을 합한 것이 학생의 학기 성적이 된다. 시험성적과 평상시 성적의 비율은 7대 3이다. 예를 들어 시험 성적을 4.3, 평상시 성적은 4점을 받은 학생은 반올림 하여 시험성적은 4점×0.7=2.8, 평상시 성적은 4×0.3=1.2로 총 4점을 받아 우등이 된다.
대학, 예술학원 … 추천 후 시험 보고 입학
성적 등급은 전 과목 5점이면 최우등, 4점이면 우등, 3점은 보통, 1~2과목이 2점이면 낙제 순위로 매긴다. 낙제를 한 학생에게는 재시험 응시 자격을 준다. 학년말 시험, 재시험에서도 3점 이상을 맞지 못하면 유급이라는 수모를 겪는다. 물론 유급당하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
시험 범위는 원칙적으로는 학기 중에 배운 내용이다. 난이도는 규정상 학기, 학년 간 3점생(보통생)을 기준으로 출제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교사들은 문제의 난이도를 지키지 않고 어렵게 출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간혹 교사들이 문제를 어렵게 내야 자신의 교권이 서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추락하는 교권 앞에서 권위를 내세울 수 있는 몇 안되는 수단이지만 이를 통제, 감독하는 시스템이 없는 것도 문제를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대학생들 시험 방식은 중학교와 조금 다르다. 학년말 시험에서 필답시험과 구답시험을 치른다. 필답시험은 필기식 시험이고 구답시험은 제비표를 뽑아 보는 시험이다. 우선 시험 당일 중학교와 같이 필답시험을 본 다음 구답시험을 치른다. 표에 제시된 문제는 대체로 3문제인데 표를 뽑고 대기석에 앉아 3~5분 정도 말할 준비를 한 다음 시험 위원들 앞에 나가 답변하는 방식이다.
학기말, 학년말 외에도 북한에는 다양한 종류의 시험이 있다. 우선 대학, 전문학교(한국의 전문대학), 특수교정이라고 일컫는 제1중학교, 외국어학원, 예술학원을 비롯한 영재 및 전문가 후비양성기관에 들어가는 입학시험이 있다. 대학, 전문학교 입학은 한국의 수능처럼 중학교 6년 과정을 졸업한 학생에 한해서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추천을 받아야 가능하다. 또한 한국의 특수목적고에 해당하는 특수교정에는 소학교 4년 과정을 졸업한 학생이 추천을 받아야 응시할 수 있다.
한편 예술 수재들을 양성하는 예술학원 기악반 모집은 비교적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각 도·시·군에 있는 유치원 음악반에서 악기를 배운 어린이들이 그 대상자다. 시험은 실기시험 즉 악기 연주가 기본이다. 시험에 응시하는 어린이들은 대체로 당, 행정, 보안, 검찰 등 권력 기관에 종사하는 사람 혹은 무역회사에 다니거나 시장에서 큰 장사를 하는 사람, 중국 연고자들의 자녀들이 태반이다. 이유인즉슨 북한에서도 조기 음악교육을 받는 데에는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예술학원 모집 시험은 항상 북새통이다.
북한에서의 시험 기간을 떠올려 보니 한국 학생들은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공부한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교과서와 참고서, 풍족한 학용품, 마음만 먹으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 등. 이런 모습들을 보니 나도 학창시절로 돌아가 지금의 학교에서 다시 공부하고 싶다. 몇 날 며칠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여 시험지를 받아들고 부지런히 문제를 풀고 있는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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