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맛지도 | 톡 쏘는 겨자와 담백한 닭고기의 만남 ‘초계탕’ 2013년 7월호
북한 맛지도 12 | 톡 쏘는 겨자와 담백한 닭고기의 만남 ‘초계탕’
미국에 초청받아 갔을 때였다. 그날 행사장 식사 중에 닭고기 샐러드가 나왔다. 가만히 보니 바로 북한 음식인 초계탕에서 국물을 빼고 신선한 채소를 썰어서 얹은 것이었다. 이역만리 먼 곳에서 북한 음식과 비슷한 것을 먹다니 아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초계탕은 고려시대 궁중에서 개발되었던 음식으로 여름에 먹어야 제맛이 나는 시원한 탕이다. 그리고 먹을 때는 시원하지만 닭고기의 따뜻한 성질 때문에 사람들의 속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음식이어서 여름철 보양식으로 꼽히기도 한다.
삼계탕은 뜨거운 음식이기 때문에 먹을 때 땀을 흘리며 더워하지만 초계탕은 새콤하고 시원한 국물에 녹두묵이나 메밀국수를 함께 말아 먹기 때문에 그 맛이 오묘하고 시원한 것이 특징이다. 또 초계탕에는 버섯을 비롯한 다양한 식재료들이 들어가기 때문에 영양으로나 맛으로나 매우 고급스러운 음식이다.
이런 보양음식을 북한에서 어찌 쉽게 맛볼 수 있겠는가. 북한에 있을 때는 생각도 못했던 음식이기도 하다. 북한에서 가장 큰 닭 공장은 평양에 있는 만경대 닭 공장인데, 이곳에서 닭고기와 달걀을 생산하여 평양 시민들에게 공급했다. 내가 평양에서 살 때만 해도 평양에는 가정마다 구매권 책이 배달되었는데, 당시에는 달마다 가족 수에 맞는 달걀과 닭고기를 공급하도록 되어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별미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조금씩 어려워지기 시작했던 북한의 살림살이는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식량 부족으로 배급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급기야는 식량난으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다. 내가 북한을 떠나기 전이었던 1990년대 북한에서 닭고기는 환자용 약이었다. 다시 말해 오랜 지병으로 앓아누운 사람이나 몸이 허약한 사람에게 만들어 주는 보양식이 되었다.
당시에 노동자 한 달 월급이 최고 많아야 80원인데 시장에서 닭 한 마리에 350~400원 정도나 하니 어떻게 일반사람들이 먹을 수 있었겠는가? 어쨌든 고달픈 북한 주민들에게 닭고기는 그림의 떡이고 심한 병에 걸려야 혹시나 먹어볼 수 있는 음식이며, 간부들에게 뇌물용으로 사용되는 귀한 음식인 것이다. 남한에는 가는 곳마다 삼계탕집이 즐비하고 동네마다 치킨집이 들어서 있지만 북한 주민들은 닭고기 먹는 이를 빼두었다고 할 정도로 닭은 구경조차 어려웠다.
평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 매주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외할머니 집에 모여 맛있는 음식들을 만들어 먹곤 했는데, 그때 가장 많이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 겨울에는 닭고기를 넣은 제비국(칼국수)과 만두국이었고, 여름 삼복더위 때는 단고기와 초계탕, 그리고 닭곰 같은 것이었다. 외할머니의 손을 거치면 음식이 아주 감칠맛 나게 바뀌었고, 그 요리솜씨 덕분에 우리 가족은 더 잘 모였던 것 같다.
겨자의 톡 쏘는 시원한 맛과 닭고기의 담백한 맛이 조화를 이룬 초계탕 국물은 평양에서 쫓겨나지만 않았으면 수십 년 동안 우리 가족을 하나의 단란한 가정으로 엮어 주는 청량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출신성분은 우리 가족에게서 초계탕의 맛있는 국물을 빼앗아갔고 그 뒤로 남한에 올 때까지 초계탕을 다시 먹어 보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미국에 계시는 친할머니를 만났을 때 녹두지짐과 함께 초계탕을 만들어 주셨다. 외할머니에서 친할머니로 옮겨간 초계탕 요리. 불쌍하게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에 그날 초계탕 요리는 입 안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아프게 쏘며 지나갔던 기억이 난다.
초계탕 만들기
● 재료 녹두묵 ½모, 닭고기(가슴살) 100g, 달걀 ½개, 오이 ½개, 파 흰대 ½대, 국물 2½컵, 마늘 1쪽, 표고버섯(말린 것) 4개, 잣 10알, 김 ½장, 겨자 2작은술, 간장 1큰술, 식초 ½ 큰술, 소금 ½작은술, 참기름·후춧가루·실고추 약간씩
● 만들기
1. 닭고기는 손질하여 냄비에 넣고 삶아 가늘게 찢은 다음 소금, 간장, 후춧가루, 참기름, 다진 파, 마늘을 넣고 무친다.
2. 오이는 굵은 소금으로 문질러 씻은 다음 버들잎 모양으로 채 썰어 소금에 살짝 절여둔다.
3. 표고버섯은 연한 소금물에 살짝 데쳐서 잘게 채친 다음 프라이팬에 볶는다.
4. 녹두묵은 0.7㎝ 굵기로 채 쳐서 겨자, 식초, 참기름, 간장, 소금을 넣고 무친다.
5. 달걀은 풀어서 지단을 부치고 가늘게 채 쳐서 실지단을 만든다.
6. 닭고기 삶은 국물은 깨소금, 간장, 식초, 겨자를 넣고 양념한다.
7. 그릇에 녹두묵을 먼저 담고 그 위에 표고버섯볶음, 오이무침, 닭고기를 얻은 다음 달걀 실지단, 실고추, 실파, 잣, 김으로 고명하고 6의 국물을 부어 낸다.
이애란 / 북한전통음식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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