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리의 스케치北 | 김성희, 갈대꽃 흔들림에 분단의 상처 담다 2013년 7월호
박계리의 스케치北 19 | 김성희, 갈대꽃 흔들림에 분단의 상처 담다
화가 김성희는 1989년 공훈예술가, 1999년에는 인민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후 김일성상을 수여받은 성공한 화가다. 그녀가 1983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 <광주의 원한>은 현재 조선미술박물관에 국보로 지정되어 소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1995년 제작한 <총련일군에게 주체의 혈통을 심어 주시는 위대한 어버이> 또한 국가미술전람회에 출품된 후 국보로 지정되어 현재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렇듯 북한 미술계를 대표하는 그녀는 해외동포들의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갖고 관련된 주제를 많이 그려왔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그녀가 재일조선인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평양으로 들어온 40년을 기념해서 김일성상을 수여받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북한으로 들어와 성공한 재일조선인을 대표한다.
재일조선인 화가, 그윽한 멋 조선화에 빠지다
김성희는 1939년 일본 동경에서 여섯째로 태어난다. 엄혹한 시절 많은 수의 가족들을 부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제주도에서 살다가 1924년 일본으로 건너갔고, 제주도 해녀 출신이었던 어머니도 일본으로 건너왔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중학교 때부터 스스로 세상을 헤쳐나가며 성장해나가야 했던 그녀는 가정교사를 하면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정물화인 <감>이 학교전람회에서 1등을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조선대학교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면서 밤에는 무사시노미술대학에서 유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녀의 인생을 변화시킨 결정적인 계기는 1959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제7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재일청년학생대표로 참가하게 되어 평양에 가게 된 사건이었다. 평양미술대학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자신의 바람이 받아들여지면서 그녀는 일본을 떠나 평양에서 화가로 성장하게 된다.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에서 배운 추상 미술이 아닌 사실주의 미술을 하고 싶다는 바람대로 그녀는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 스케치를 하며 탄탄한 데생(dessin)력을 키워갔다.
1963년 평양미술대학 유화과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하고, 바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입선을 하는 등 평양에서의 삶은 순탄했다. 그녀는 성실했고 또한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1970년대 10년간의 작업 끝에 그녀는 자신이 인민적이고 혁명적인 그림을 그리겠다고 최선을 다했으나 민족의 역사와 찬란한 문화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알지 못한다는 점을 반성하게 된다. 우리 민족의 심리에 맞는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서 조선화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에 대한 반성은 유화만이 가장 좋은 회화형식이라고 생각한 것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늦었지만 조선화의 정갈하고 그윽하며 힘 있고 아름다우면서 고상한 맛을 내는 세계에 들어가 보기로 한다. 먼저 조선미술박물관으로 가서 선조들의 우수한 회화작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고구려 벽화의 <사신도>와 정선, 김홍도, 장승업 그림에 심취하면서 유화로는 표현할 수 없는 조선화의 표현방식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조선화로 그린 첫 작품은 1978년 제작되었다. 이 작품의 주제도 역시 재일본 조총련의 삶과 관련된 것으로, 조총련 사람들이 학교에서 우리말을 배우는 모습을 그린 <우리말 우리글을 더 잘 배워>이었다. 더 나아가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전통을 드러낸 <묘길상>은 작가 스스로가 “이 작품에 매혹되어 있다.”고 밝힌 바도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소재가 주요 화가 작품의 주제가 되는 것은 ‘우리민족제일주의’가 중요 담론이 되면서 미술계에서 일어난 변화 중의 하나인 것으로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일본에서의 현대미술 교육의 답답함을 사실주의로 해결해 보고자 평양으로 향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작품에서 보여지는 독특함은 그녀가 성장기를 일본에서 보내면서 의식했건 그렇지 않았건 입력된 수많은 이미지들이 자양분이 되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구룡폭포>를 보면 대상의 본질을 드러낼 때 그 외형을 닮게 그려야 한다는 사실주의자의 자기 검열 편협함이 동작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가을의 백두산>에 투영되어 있는 서정성과 장식성의 조화 또한 그러함을 알 수 있다.
조선화로 그려진 <분계선의 달>은 북한 미술계에서 “풍경화 형식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철학성 있는 작품”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걸작이다. 가을날 바람도 스산하고 되는 대로 뻗어나온 가시나무도 앙상한데 진회색으로 흐려진 하늘에 뜬 보름달마저 희미하다. 고개 숙인 갈대꽃의 하얀 흔들림과 앙상한 가시나무의 움직임은 분단의 역사에 새겨져 있는 상처, 말 못한 사연들의 고통과 슬픔이 맺혀있어 혁명적 낭만주의의 낙관적 화폭들과는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분계선의 달>에서도 앙상한 가시나무가 흔들리면서도 위로 뻗어 올라가는 기세를 품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한다. 풍경화 형식을 통해 철학적 화두를 제시할 수 있는 점이 바로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이유다.
박계리 / 한국전통문화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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