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그 많은 인물, 어디 갔는가? 2012년 2월호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32
그 많은 인물, 어디 갔는가?
최근 북한당국이 김정일의 동상을 세운다는 노동당 정치국 결정내용을 보도했다. 이제 북한은 김일성의 동상에 이어 김정일의 동상까지 난립하는 형국이 됐다. 세계에 북한만큼 동상이 많은 나라는 없을 것이다.
남한사회, 훌륭한 인물 평가에 인색?
무릇 동상이란 국가와 민족, 사회발전을 위해 공헌한 인물들의 업적과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지는 상징물일 것이다. 그런데 북한을 보면 그렇게 동상이 많은데 비해 너무나 낙후하고 열악하다. 도대체 김일성을 비롯한 동상의 주인공들이 북한이라는 사회를 위해 무엇을 공헌했는지 알 수 없다.
김정일의 동상이 지금까지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북한을 가장 완벽하게 망쳐놓은 것이 김정일이니 말이다. 얼핏 생각하면 김정일이 자기의 정책실패를 인정하는 겸손한 인물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일은 멀리 앞을 내다보았을 것이다. 노회한 독재자 김정일이 옛 소련의 스탈린을 비롯한 독재자들의 동상이 사후 어떤 수모를 당했는지 모를리 없다. 어찌됐건 북한을 망쳐놓은 것이 김씨 왕조의 ‘기적’이니 그 기적을 만든 ‘위인’들의 동상이 세워지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선 당연한 것이라 해야겠다.
눈을 돌려 남쪽을 바라보니 북과는 너무 다른 반대 모습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대한민국처럼 성공한 나라는 없다. 온 세계가 인정하는 기적의 나라다. 북에서 살 때 ‘한강의 기적’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감동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이상한 것은 대한민국의 거리와 광장들에서 그 기적을 이루는 데 공헌한 그 누구의 동상도 없다는 것이다. 동상을 세워줄만한 인물이 없어서? 그렇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게 저절로 하늘에서 황금소나기가 쏟아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공보다 실? 실보다 공 따져 평가해야
좌우이념과 각양각색의 정치노선이 혼잡했던 복잡한 해방정국에서 신생 대한민국의 방향타를 지혜롭게 잡아간 인물도 존재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세계에서 가장 낙후하고 가난한 농경사회를 세계경제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든 과감한 지도자도 없고,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며 민주화에 한생을 바친 정치인도 보이지 않는다.
혹자는 특정 인물들이 아니더라도 민중이 스스로 이루어냈을 거라고 말한다. 거기에 한민족이 원래 우수한 유전자를 타고 났다는 말까지 덧붙이기도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역사는 민중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중은 출중한 리더와 함께 할 때 기적을 낳는다. 그렇지 못하면 수난의 역사를 헤매야 한다.
민중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만약 훌륭한 리더와 인물의 기여 없이도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면 낡은 봉건적 질곡에서 수백년 잠자고 있다가 식민지가 되었던 아픈 역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 시대의 민중은 바보였는데 지금의 후손들은 저절로 똑똑해졌단 말인가.
안타깝게도 훌륭한 인물이 논쟁거리가 되고 출중한 리더에 대해선 조심해서 칭찬해야 하는 것이 남한의 현실이다. 밝은 달도 뒷면은 어둡다. 나라에 공헌한 인물들도 인간인 이상 공과 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공적이 7이면 실책이 3인 인물에게 공은 덮어두고 실만 전부라고 평가하는 것은 잔인하다. 이런 풍토에서 애국심을 말하는 것은 일종의 강요로 들릴 수 있다.
광화문광장에서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이 무슨 생각을 할까. 왜 후손들 속에는 인물이 없는지 안타까워 할 것 같다. 아니면 현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공보다 실을 따지며 시비가 많은 현대에 살았더라면 동상은 고사하고 말밥에나 오를 수 있겠으니 말이다.
인물에 대한 평가 환경이 이렇다보니 동상만이 아니라 화폐를 만드는 데도 그렇다. 북한 화폐를 처음 본 사람들에게 소감을 물으면 체제선전과 우상화 내용으로 도배된 북한 돈이 어색하고 촌스럽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남한 돈이 그렇다. 일제식민지 시절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하던 조선은행권 비슷한데, 화폐에 그려진 내용이 전부 옛날 것뿐이다. 돈은 현대인의 손에서 돌아가는데 화폐에 그려진 인물은 모두 옛날 사람이며 물건도 옛날 병풍이나 측우기 같은 것이다.
화폐에 그려질 내용을 정하는 사람들에겐 현대가 부끄러운 모양이다. 거기에 나라의 자유와 독립, 민족경제의 부흥을 위해 몸 바친 인물들의 사진과 천지개벽한 한강의 모습, 세계로 뻗어가는 젊은이들의 역동적인 활약을 반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통일 후 통일한국의 화폐만이라도 그렇게 되었으면 한다. 그 때에 가서도 새 화폐에 연개소문이나 김유신뿐이라면 정말 실망스러울 것 같다.
도명학/ 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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