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2월 1일

장용훈의 취재수첩|김정은, 주민지지 얻기 위한 행보 가속 2012년 2월호

장용훈의 취재수첩

김정은, 주민지지 얻기 위한 행보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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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인민군 제3870군부대를 시찰하자 부대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체제 안정화를 위한 북한당국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북한의 새 지도자 김정은 노동당 중앙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설 연휴에도 권력 장악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강행군을 이어갔다.

김 부위원장은 설인 지난 1월 23일 오후 평양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내각총리,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기남·최태복 당비서 등의 당·정·군 고위간부가 참석한 가운데 국가연회를 열었다.

최태복 비서는 이 자리에서 “김정일 동지에 의해 개화 발전된 민족문화를 김정은 동지가 계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체제’에 대한 외부의 불안감이 여전한 상황에서 북한 지도부의 결속을 다지고 김 부위원장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행사인 셈이다.

또 1월 24일에는 평양 만경대혁명학원을 방문해 교직원과 학생들을 축하했다. 1947년 김일성 주석의 고향(지금의 평양 만경대구역)에 세워진 만경대혁명학원은 혁명 유가족과 당·정 고위간부의 자녀에게만 입학이 허용되는 특수학교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리영호 군 총참모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등 권력 핵심층이 이 학교 출신이다. 김 부위원장이 이 학교를 찾은 것은 3대세습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지도부의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인민형 지도자’의 모습 부각

1월 22일에는 설을 하루 앞두고 경제현장과 군부대를 방문해 ‘민심잡기’에 집중했다. 김 부위원장은 이날 ‘허철용 동무가 사업하는 기계공장’을 방문해 제품을 직접 살피고 생산증대를 독려했다. 설을 맞아 이 공장의 노동자에게 물고기 500t의 공급 등을 지시하는 ‘인민형 지도자’의 모습을 부각했다.

북한 매체는 같은 날 김 부위원장이 기계화 군단으로 알려진 조선인민군 제671대연합부대 지휘부를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인 선군노선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군대의 지지를 확보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사실 김 위원장이 사망한 지난해 12월 17일 이후 김 부위원장을 최고지도자로 옹립하는 북한의 움직임은 매우 빠르게 전개돼 왔다.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상주로 조문객을 맞은 김 부위원장은 12월 28일 영결식에서 김 위원장의 영구차를 호위한 데 이어 다음날 평양에서 열린 중앙추도대회에서도 주석단 중앙에 모습을 드러내 새 통치자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그 이튿날인 12월 30일에는 부친의 이른바 ‘10월 8일 유훈’에 따라 당 정치국의 추대로 최고사령관에 오름으로써 군권 장악에도 박차를 가했다. 새해 들어서는 1일 ‘근위서울류경수 제105탱크사단’을 방문한 데 이어 11일께는 평양의 건설현장을 시찰하는 등 최고지도자로서 공식 활동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김 부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100회 생일(4월 15일)을 맞아 ‘강성대국 선포’가 예상되는 4월까지는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보다는 아버지의 유훈인 선군정치와 강성대국 건설을 따르는 유훈통치에 힘쓸 것으로 전망된다.

김 부위원장에 대한 주민의 충성을 유도하기 위한 북한당국의 우상화 작업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조선중앙TV>는 김 부위원장의 생일인 지난 1월 8일 후계자 시절 군부대 방문 등의 장면을 담은 기록영화를 방영했다.

이에 앞서 신년공동사설 내용을 관철하고 김 부위원장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군중대회가 1월 2일 ‘함남의 불길’로 유명해진 함경남도를 시작으로 북한 전역에서 줄줄이 개최됐다. 또 김 부위원장이 16세 때 영군술에 관한 논문을 쓴 ‘사상이론의 천재’라는 주장을 비롯해 그를 전지전능한 지도자로 띄우는 우상화 선전도 속속 등장했다.

북한 지도부의 불안한 시선

북한 매체들이 군부대에서 김 부위원장이 울먹이는 장병의 손을 꽉 잡는 장면이나 근로자들에게 보낸 친필편지를 공개하는 데는 인민들과 스킨십을 강조함으로써 그를 친근한 ‘인민의 지도자’로 부각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매체들은 이제 김 부위원장 찬양에 ‘영명한 영도자’, ‘희세의 명장’, ‘백두의 천출명장’, ‘살아있는 태양’ 등 온갖 수식어를 동원하고 있다. 호칭상으로만 보면 김 부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김정일 위원장과 같은 반열에 올라선 셈이다.

김 부위원장은 정책적으로는 유훈통치를 내세우며 핵개발을 중심으로 한 선군노선과 경제발전을 통한 강성대국 건설을 다짐하고 있다. 권력기반을 안정적으로 다지려면 북한에서 영향력이 큰 군대를 중시할 수밖에 없고, 민심을 잡기 위해서는 경제문제 해결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김 부위원장은 새해 들어 첫 공개 활동으로 군부대와 경제현장을 한 차례씩 시찰했다. 이런 모습은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뒤 애도기간을 마치고 김정일 위원장이 공식석상에 한동안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과는 대비된다.

외형상으로는 김 부위원장이 불과 한 달여 만에 북한의 최고통치자로 자리 잡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잰걸음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김 부위원장을 바라보는 북한 지도부의 불안한 시선이 작용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부위원장의 후계수업 기간이 3년 정도에 불과했고, 엘리트 계층과 주민 사이에 권력기반도 취약한 편이어서 그 만큼 우상화와 빠른 권력승계가 급선무라는 얘기다.

북한 지도부가 김정은 부위원장을 최고지도자로 내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북한체제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김정은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속도도 매우 빠르다. 2009년 1월 후계자로 내정되고 채 3년이 안 된 김정은 부위원장의 입장에서 주민들로부터 공인받기 위한 움직임이 빠르게 전개될 수밖에 없고 이러한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장용훈 <연합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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