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동북아 평화협력, 다자틀 속 비전통 안보이슈로 시작해야 2013년 10월호
특집 | 한반도와 동북아, 통일과 평화협력의 선순환
동북아 평화협력, 다자틀 속 비전통 안보이슈로 시작해야
동북아에는 경제적 교류협력이 증가하지만 정치, 안보면에서는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파라독스가 존재한다. 동북아는 세계에서 경제발전이 가장 활발한 지역이며 역내 교류와 투자의 비율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교류와 협력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지역에는 정치적, 군사적 갈등이 존재한다. 동북아 지역에서 일본과 소련 간 북방 4개 영토, 한·일 간 독도, 일·중 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이다오), 중국·베트남·필리핀 간 남사군도를 둘러 싼 영토 갈등은 해묵은 문제이며,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뾰족한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 또한 과거사 해석을 둘러싼 갈등과 함께 중국, 일본 등의 군비투자가 증대되고 있으며 특히 북핵문제는 이 지역의 긴장을 악화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동북아 파라독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아야 한다. 동북아 지역의 정치, 군사적 갈등은 100년을 거슬러 굴절된 근대화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동북아 지역의 영토 갈등의 기원은 일본의 식민지배와 2차대전 후 전후질서 재편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동북아의 정치군사적 불안정은 중국의 부상과 이에 따른 지역질서 재편과 관련되어 있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퇴조, 일본의 군사대국화 지향 등은 지역질서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동북아 파라독스는 또한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지역 국가의 민족주의 성향이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지역질서 개편의 불안정과 경제침체 등이 민족주의 감정과 결부되어 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다. 각국의 정치인들이 이러한 국내정서를 활용하여 갈등을 심화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비전통 안보이슈, 공통 이해관계 … 참여 촉구 용이해
갈등의 한 복판에 북핵문제가 있다. 북핵문제는 동북아 지역의 핵도미노를 부추기고 지역질서를 불안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또한 북한의 대남도발, 인권탄압, 경제난 등 북한이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는 지역의 평화와 경제협력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동북아 질서의 불안정과 역내 갈등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자협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다자안보 문제를 다루기 위한 기구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있지만 동북아 지역의 문제를 다루는 데는 한계가 있다. 또한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는 동북아 6개국의 관료, 학자, 전문가가 참여하는 1.5트랙의 대화기구로 현안을 해결하는 데에는 역시 한계가 있다.
동북아 파라독스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에는 제도적 접근과 기능적 접근이 있다. 제도적 접근은 동북아 국가 간 제도적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동북아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북아다자기구를 출범하기는 어렵다. 두 번째 대안은 비정치적이고 비군사적이며 비전통적인 이슈를 중심으로 우선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지난 8월 21일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 본부에서 열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내외신 기자 설명 간담회에서 향후 남북관계의 방향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北, 다자협력 통해 국제협력 이익 경험할 수 있어
동북아에서 관련국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이슈는 기후, 환경, 에너지, 재난구조, 사이버테러 등 비전통 안보이슈다. 기후온난화, 홍수, 가뭄, 황사 등 기후·환경 문제는 이미 세계적 문제다. 또한 동북아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등도 에너지의 효율적 사용과 대체에너지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보듯이 동북아 지역의 에너지 안보에 대한 문제도 관련된 모든 나라들이 머리를 맞대야 할 문제다. 비전통 안보는 모두 인간안보(human security)와 관련되어 있다. 인간안보는 삶의 안전과 인간다운 삶을 할 수 있는 삶의 조건에 관련된 보편적 인권의 문제다.
영토문제나 역사문제, 군비통제, 북핵문제 등에 대해서는 관련국이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다자틀에서 논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비전통 안보이슈는 동북아 국가들의 참여를 촉구하기에 용이하다. 비전통 안보이슈는 동북아 모든 국가들이 관련된 문제이며 어느 한 나라가 해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다. 비전통 안보이슈는 관련국의 참여를 촉발하고 공동해법을 모색할 필요성이 있는 사안이다. 또한 비전통 안보이슈는 참여국 모두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윈-윈 게임이다.
동북아 평화협력은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협력을 촉진시킬 수 있는 첫 걸음이라는 의미가 있다. 우선 가장 필요하고 다자협력이 가능한 분야부터 협력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기능주의적 다자협력의 이점은 이미 유럽연합(EU)의 협력 경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민감한 이슈를 제외하고 쉬운 이슈부터 차근차근 협력을 추진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느려 보여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리고 동북아 평화협력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환경조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북핵문제를 다루기 위해 6자회담이 별도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서 북핵문제를 직접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효과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서 관련국 간 신뢰가 축적될 경우 결과적으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공감대 형성에 기여할 것이다.
또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 대한 북한의 참여는 북핵문제 해결에 간접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은 동북아 다자협력 구상에 참여함으로써 다자협력이 줄 수 있는, 즉 혼자서 얻을 수 없는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 게 될 것이다. 아울러 북한은 국제협력의 규범과 절차를 준수하는 것이 북한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러한 다자협력의 경험과 학습효과는 북한으로 하여금 비핵화를 추진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북한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체험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박종철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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