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6자회담 의제 “北, 여러 가지 … 美, 비핵화” 2013년 10월호
기획 | 북핵문제, 어디로 가고 있나?
6자회담 의제 “北, 여러 가지 … 美, 비핵화”
북핵협상 재개를 둘러싼 물밑 신경전이 치열하다. 현재의 대화 모멘텀은 5월 24일 시진핑-최룡해 베이징회담에서 마련됐다. 여기서 시 주석은 남북대화를 재개하고 핵문제에서 성의를 보여준다면, 책임지고 제재국면을 대화국면으로 전환시키겠다고 북한에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북한은 시 주석의 ‘조언’에 따라 파상적인 대남 유화공세를 펼치고 있다. 미국에 대해서도 북·미 고위급회담(6.16 국방위 중대담화), 3~4자회담(8.26 창안취완 중국 국방부장 방미시 대리 전달) 등의 제안을 내놓고 있다. 물론 6자회담 역시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대화공세와 함께 중국의 대미·대남 대화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미·중정상회담(6.7)에서 시 주석은 “대화의 조기재개가 절박하다.”고 말했다. 한·중정상회담(6.27)에서는 뜻밖에도 남북대화 재개를 강력히 요청하여 북핵 ‘한·중공조’를 기대한 박근혜 대통령을 당혹케 한 것으로 알려진다. 8월 19일 창안취완 중국 국방부장은 수전 라이스 안보보좌관에게 북한의 3~4자회담 제안을 전달하면서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압박했다. 9월 6일 G20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난 시 주석은 재차 6자회담 조기재개를 요구했다.
북·중 간 조율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룡해 특사가 귀국한 직후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중국을 방문(6.18~22)하여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 왕이 외교부장, 장예수이 외교부 상무부부장을 면담했다. 6·16 중대담화와 6자회담 재개 등을 조율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이어 김계관은 다시 러시아를 방문(7.3~9)하여 같은 문제를 논의했다. 7월 25~29일에는 리위안차오 부주석이 방북하여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시 주석의 구두친서를 전달했다. 여기서 김 제1위원장은 3~4자회담 제안을 내놓았을 것으로 보인다. 8월 26일에는 우다웨이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방북하여 6자회담 재개문제를 재차 조율했다.
北, 평화체제·비핵화 협상 동시 진행
2013년 8월 9일 북·미 양국은 제네바에서 비공식 1.5트랙 대화(조엘 위트 전 미국 국무부 북한담당관과 안명훈 북한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를 가졌다. 여기서 안명훈은 비핵화 문제를 협상테이블에 올려놓을 용의가 있다며, 이것은 6·16 담화로 발표된 김 제1위원장의 결정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북한은 6·16 담화에서 북·미 고위급회담을 제안하면서 그 의제로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핵 없는 세계 건설 문제를 포함하여 쌍방이 원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제안했다. 비핵화는 이 여러 가지 문제 중 하나에 포함된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북한의 제안은 평화체제 협상과 비핵화 협상을 동시에 진행하자는 것이다. 즉 3~4자회담에서 평화체제 협상, 6자회담에 비핵화 협상을 진행하되 이 모두를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사전조율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그리고 한국)은 만일 회담을 재개한다면 비핵화는 ‘여러 가지 의제’ 중 하나가 아니라 중심적 의제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것이 담보되지 않으면 회담은 그 형식이 무엇이든 사실상 북핵을 용인하는 정당화 절차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0일 조태용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글린 데이비스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 간 합의의 골자가 바로 이것이다. “6자회담의 중심목표는 비핵화이다. 6자회담을 재개하려면 비핵화 회담이라는 것을 북한이 분명히 해야 한다.”(조태용). “6자회담 재개의 장애물은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계속 주장하는 것이다. 회담을 재개하려면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6자회담의 핵심사안에 진실하다는 어느 정도의 신호를 우리가 봐야 한다. 우리는 북한과의 대화에 열려있지만 오직 여건이 적합하고 북한이 비핵화의 중심성을 다시 받아들일 때, 북한이 비핵화에 역행하는 방향을 뒤집을 때만 그렇게 할 것이다.”(글린 데이비스)
美, “비핵화 논의가 중심 … 북이 수용해야”
지난 3월 31일 북한이 채택한 경제·핵 병진노선은 한마디로 핵동결과 보상(평화체제)의 맞교환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본격적 핵무장에 따른 지정학적 지진을 감내할지, 미국 그리고 중국이 선택하라는 메시지였다. 톰 도닐런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미·중정상회담(6.7) 결과를 발표하면서 비핵화와 확산능력(핵능력) 동결을 모두 대북정책 목표로 거론했다. ‘전략적 인내’라는 ‘先핵포기, 後보상’의 비핵화 프레임을 넘어서 ‘단기 동결, 장기 비핵화’로 프레임을 전환할 수 있다는 암시인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①북한이 대화 프로세스에서 비핵화의 중심성을 수용해야 하고, ②한국이 대화 프로세스의 당면목표가 동결이라는 점을 수용해야 한다. 그런데 ②를 위해서는 ①이 선행돼야 한다.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에서 대화가 비핵화회담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당면 핵동결 협상은 북핵 묵인절차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북한이 요구하는 핵군축회담과 다름없는 것이고, 한·미 양국이 절대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북핵회담이 재개되려면 회담에서 핵문제가 중심적으로 다뤄진다는 점, 비핵화를 전제로 한 핵동결이라는 점에 대한 분명한 보장, 즉 (도닐런의 표현을 빌리자면) “회담의 내용에 대한 어떤 약속”을 북한이 먼저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미국은 이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과연 비핵화의 중심성을 받아들일까? 현재까지는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9월 11일 북한이 영변 5MWe 원자로 재가동에 돌입했음을 시사하는 미국 상업위성 사진이 공개됐다. 만일 실제 재가동되고 있다면 핵회담은 재개가 불가능하고 정세는 파국으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 9월 13일 현재 미국은 정보판단 공개를 유보하고 있다.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됐을 때의 파급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대화의 길을 포기하고 파국을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대화 프로세스 재개를 압박하기 위한 기싸움의 일환인 것일까? 현재로서는 판단이 어렵다. 그러나 현재 북핵문제가 중대한 분수령에 처해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임수호 /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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