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훈의 취재수첩 | 北 이산상봉 일방적 연기 통보, 이유는? 2013년 10월호
장용훈의 취재수첩 | 北 이산상봉 일방적 연기 통보, 이유는?
북한이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나흘 앞둔 지난 9월 21일 갑자기 상봉행사를 연기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이하 조평통)는 이날 대변인 성명에서 “정부가 남북대화를 동족대결에 악용하고 있다.”며 “북남 사이의 당면한 일정에 올라있는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행사를 대화와 협상이 진행될 수 있는 정상적인 분위기가 마련될 때까지 연기한다.”고 밝혔다.
조평통은 이어 “우리를 모략중상하고 대결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도 미룬다는 것을 선포한다.”며 정부가 10월 2일로 제안한 금강산관광 실무회담도 연기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또한 우리 정부가 최근 남북관계 성과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결과’니, ‘원칙 있는 대북정책’의 결실이라고 떠들고 있고 금강산관광에 대해서도 ‘돈줄’ 등을 언급하며 중상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구속 사건과 관련해 “내란음모사건이라는 것을 우리와 억지로 연결시켰다.”고 비난했고, 남측이 “미국 상전과 야합하여 전쟁연습 소동과 무력증강 책동에 광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北 “南, 남북대화 동족대결에 악용 … 이산상봉 연기”
정부는 이날 김의도 통일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북측이 민족의 가장 큰 아픔을 치유하는 일이자 순수하게 인도적 차원에서 준비한 상봉을 불과 4일 앞두고 일방적으로 연기한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이산가족과 국민 가슴에 대못을 박는 반인륜적 행위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에 조속히 응할 것을 촉구했다.
남북은 지난 9월 16일 이산가족 상봉 남측 대상자 96명, 북측 대상자 100명의 최종명단을 교환했고 9월 25일부터 30일까지 금강산에서 상봉행사를 할 예정이었다. 당초 상봉 대상자를 각 100명씩 선정하기로 했으나, 상봉이 가능한 것으로 파악된 117명의 남측 상봉 후보자 가운데 21명이 건강 문제 등으로 상봉을 포기함에 따라 96명으로 정리됐다. 남측 상봉 대상자 가운데 최고령자인 김성윤(95) 할머니의 아들 고정삼(66) 씨는 북한의 상봉연기 발표 이후 “선물도 잔뜩 사놓고 기다렸는데 북한이 일방적으로 저러니 그 서운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북한의 이번 이산상봉 연기는 우리 정부가 금강산관광 재개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데 따른 불만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발표한 성명에는 “금강산관광에 대해서 그 누구의 돈줄이니 뭐니 하고 중상하는가 하면…”, “괴뢰들이 우리를 모략중상하고 대결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 등 금강산관광 회담과 관련된 불편한 심기가 곳곳에서 직접 언급됐다.
아울러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도 연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이 이날 이산가족 상봉 재개의 조건으로 내건 ‘대화와 협상이 진행될 수 있는 정상적인 분위기가 마련될 때’가 결국은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 개최를 언급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북한은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에 앞선 금강산관광 재개 실무회담 개최를 요구해왔지만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 후 회담 개최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부가 최근에 제기해 놓은 회담 시점은 10월 2일로 이산가족 상봉행사(9월 25∼30일)가 모두 끝난 뒤인 셈이다. 결국 우리 정부가 핵문제와 5·24조치 등을 이유로 금강산 재개 실무회담을 여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연기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조평통 대변인 성명에서 남쪽의 전쟁도발 책동과 통일애국인사 탄압을 상봉 연기의 이유로 제시하기는 했지만 주된 이유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합동군사연습 기간에도 북한이 개성공단 실무회담을 개최했고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사건이 발생했어도 개성공단 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산가족상봉 연기의 핵심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의 갑작스런 상봉 연기에도 불구하고 성명에서 이산가족 상봉 ‘연기’라는 표현을 사용해 앞으로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상봉이 재개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南 “반인륜적 행위 … 이산상봉, 거래나 흥정 대상 아냐”
2000년 12월 열기로 합의했던 제3차 이산상봉 행사는 북측이 내부사정을 이유로 연기를 요청해 2개월여 뒤인 2001년 2월에 열렸다. 또 북한은 2001년 10월로 예정됐던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9·11테러로 인한 정부의 경계조치 강화를 이유로 중단시켰다가 반년 뒤에 재개했다. 이 같은 과거 사례로 볼 때 북한은 금강산관광 재개 실무회담을 비롯한 정부의 태도 변화를 봐가면서 이산가족 상봉 재개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금강산관광 재개 실무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의 동시개최를 제기하면 북한이 상봉에 나설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상봉 재개가 조기에 이뤄지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칙을 지켜나가는 방향으로 하겠다.”며 “박근혜 정부에서 이산가족 상봉은 거래나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태도에 새로운 조치를 내놓기보다 당분간 현재의 입장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에 대해 “금강산관광의 대가로 현물을 주는 방안은 과거 노무현 정부 때도 제기됐다.”며 “(현물을 주는 방안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부의 입장을 북한이 순순히 수용리라 예상하기 어렵다. 따라서 추석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장용훈 / 연합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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