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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 스토리 | 최신 트렌드 ‘멧북’을 아시나요? 2013년 10월호

윗동네 리얼 스토리 32 | 최신 트렌드 ‘멧북’을 아시나요?

어느 사회나 유행은 있다. 북한이라고 다를 바 없다. 최근 북한을 휩쓸고 있는 유행은 뭘까? 유행은 언제나 젊은이들로부터 시작된다. 만약 유행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뒤진다면 그 젊은이는 틀림없이 능력 없는 사람, 가까이 다가갈 필요 없는 사람으로 평가될 것이다.

북한 실태를 보면 먹는 것도 부족, 입는 것도 부족, 어디 갈 때 탈 수 있는 차도 부족, 아무튼 부족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도 그런 생활상 어려움은 나 혼자의 고생으로 슬쩍 감출 수 있지만 돌아가는 추세, 즉 유행을 따르지 못하면 완전 뒤로 밀리는데 젊은이라면 아무래도 그건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멧북 사게 돈 좀 부쳐줘. 요새 유행이야”

얼마 전 북한에 있는 조카와의 통화 도중 그만 깜짝 놀랐다. ‘멧북’이라는 걸 사야겠는데 얼마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돈을 보내달라고 한다. ‘멧북’이 뭐냐고 물었더니 한참 우물거리다가 자기도 모른다고 한다. “이런, 아니 모른다면서 산다는 건 뭐야?” 하니까 그게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을 보는 건데 딱 짚어 뭐라고 설명 못하지만 노트북 비슷한 전자기구라고 했다. 듣고 보니 우리의 소형 노트북 컴퓨터인 ‘넷북’을 가리키는 말 같기도 한데 어찌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알고 보니 ‘멧북’은 중국 어느 회사에서 창안한 것인데, 희한한 것이 이건 순 북한 젊은이들을 겨냥해 팔기 위한 비즈니스였다. ‘멧북’의 종류는 크고 작은 것이 있는데 작은 노트북 크기도 있지만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게 만든 매우 작은 것도 있다고 한다.

북한 젊은이들의 인기를 단숨에 모은 것은 그 자그마한 ‘멧북’ 속에 영화 같은 영상물을 60여 편이나 저장해 놓고 아무 때나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장치이기 때문이었다. ‘멧북’은 전기가 따로 필요 없다고 했다. 충전할 수 있어 큰 것은 약 4시간 정도, 작은 것은 6시간까지 간다고 하니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아무 곳에서나 보면 된다는 것이다. 집에서 비디오나 DVD 같은 것으로 영화를 보다가 전기를 차단하고 들어오는 검열조에 결려 인생을 종치는 것과 달리 이 ‘멧북’의 안전성(?) 또한 인기의 요소라고 했다.

“너 요즘 살기 괜찮은 거구나. 구경거리에 신경 쓰는 걸 보니.” “삼촌 그런 게 아니고, 이게 말하기 좀 그런데 20대라면 그런 것 쯤 소장하고 있어야 축에 끼우는 거라서…”, “축이라니 무슨 축?” 난 모르는 척하고 되물었다. “에이~ 참, 사람 축에 낀다는 거지. 뭐 배불리 먹는다고 잘나 보이는 게 아니거든. 주위에 사람을 끼자면 뭐, 알면서!” “알았다. 돈 보내 줄게. 그게 한 대에 얼만데?” “차이는 나지만 대체로 인민폐(위안) 700원 정도일걸? 달러로는 1백달러 좀 넘어. 60편 영화 다 보면 다시 안 본 영화를 집어넣어야 하니까 거기도 돈 들어가고. 넉넉하게 보내 줘. 힝~”

“밥 굶어도 남조선 영화만 봤으면 좋겠어”

“너 그러다가 잡히면 어쩌려고 그래? 보지 말라는 영화 안 보면 되지, 또래 축에 끼는 게 목숨보다 중한 거냐?” “모르면서, 사람이 어찌 먹고만 살아,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인데 보고 싶은 것도 봐야지. 밥 굶어도 남조선 영화만 봤으면 좋겠어. 같은 민족인데 거기 사람들은 왜 그리 희한한지, 잘 먹어 그런 거 알아. 그리고 지금은 옛날과 달리 잡으러 다니는 사람들도 이 ‘멧북’을 구하지 못해 별 꼼수를 다 쓰는데 만약에 내가 잡혔다 하자. 그럼 날 잡은 사람한테 이걸 가지고 못 본 척하시라요. 하면 그것으로 끝이야 저들은 뭐 사람 아닌가? 그런 걸 갖고 사람잡이 하면 그쪽에서도 외목(왕따)나거든. 물론 잡히지 말아야지. 어떻게 보내오는 돈인데 그러니까…” 구구절절 늘어놓는 조카에게 “알았어. 보내 줄 테니 사서 실컷 봐라.” 하고 끊었다.

통화는 끊었지만 멍해 오는 자신을 발견했다. 북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통화였다. 마치 그림처럼 내 눈 앞에 흘러가는 것이 있다. 독재정치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민중이 만드는 유행은 멈출 수 없는 것 같다. 설사 ‘반역자’, ‘황색 바람에 물든 역적’으로 몰아 죽인다 해도 보고 싶은 것은 보고야 직성이 풀리는 이러한 유행이 다시 보면 무시할 수 없는 민중의 생명력이 아닐까?

이지명 / 계간 〈북녘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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