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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南과 北 여행길 달라도 너~무 달라 2013년 10월호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52 | 南과 北 여행길 달라도 너~무 달라

지난 2004년 5월 1일 중국의 단둥과 북한의 신의주 사이에 있는 중조우의교를 통해 평양에서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열차에서 승객들이 창밖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04년 5월 1일 중국의 단둥과 북한의 신의주 사이에 있는 중조우의교를 통해 평양에서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열차에서 승객들이 창밖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교통이 발달하여 세계가 이웃동네가 되어가는 시대다. 비행기로 지구의 반대편에 가는데 하루도 안 걸린다. 거기에 비하면 한반도는 너무나 좁다. 김포공항에서 이륙하는 국내선 항공기를 볼 때면 저것이 높이 올라갔다 곧바로 다시 내려가면 목적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좁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비행기보다 열차를 타는 것이 오히려 편리하다. 고속열차로 3시간도 안 걸린다. 비행기는 열차만큼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공항까지 오가는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면 열차로 가는 시간보다 별 이득이 없다.

북한은 다르다. 평양에서 청진까지 가는 급행열차가 정시로 달리는 경우 19시간이나 소요된다. 매 역마다 정차하는 완행열차는 24시간 이상이다. 그러나 지금 전기사정이 좋지 않고 철로와 기관차가 낡아 훨씬 더 오래 걸린다. 특히 잦은 정전으로 가다가도 멈춘다. 또 일정한 구간을 달리면 기관차를 바꿔 연결해야 하는데, 기관차가 부족하여 장시간 대기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겨울에 더 그렇다. 평양에서 청진까지 가는데 1주일, 심지어 보름 정도 걸릴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열차에서 아사자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北, 평양~청진 보름 걸려 … 가다가 굶어죽기도?

언젠가 압록강 기슭 국경도시 혜산에서 황해남도 해주까지 가는 열차를 탄 적이 있다. 꼬박 15일이 걸렸다. 도중에 먹을 도시락만 배낭으로 하나 가득 준비했다. 그런데 그걸 도둑 맞는 통에 굶어죽을 뻔 했다. 식량난으로 열차식당도 운영하지 않았고, 식사를 팔지도 않았다. 오래 정차하는 큰 역에 도착해야만 음식을 들고 나온 장사꾼들한테 사먹을 수 있었고 값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식량난 이전엔 ‘곽밥’이라 불리는 도시락이 있었는데, 차표 살 때 목적지까지 가는데 필요한 만큼의 ‘곽밥표’를 함께 받았다.

북한에서 어디로 한번 가자면 여행의 자유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이렇게 장시간 여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북한이 작은 나라라는 사실이 별로 의식되지 않는다. 열차로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가는데 보름씩 걸리니 러시아만큼이나 크게 느껴진다. “이렇게 크니까 우리나라가 강성대국인거야.” 하고 빈정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야 하고 자동차 한번 얻어 타자면 운전기사에게 돈을 주고도 천대를 받았다. 그것도 트럭 적재함에 빼곡하게 서서 가야 했다. 그래도 자동차를 타는 것이 열차보다 빠르다. 적어도 정전은 안 되기 때문이다. 대신 도로가 대부분 비포장도로인데다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울퉁불퉁한데, 그 때문에 자동차가 고장이 자주 난다. 그러면 그것을 수리하고 간다. 이래저래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출퇴근도 힘들었다. 집에서 8km 거리에 있는 직장에 10년 넘게 걸어 다녔다. 자전거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겨우 장만했던 자전거는 한 달도 못타고 도둑 맞았다. 가난한 살림엔 자전거도 큰 재산이어서 다시 마련할 길이 없었다. 본의 아닌 걷기운동을 엄청나게 많이 한 셈이다.

그렇게 살던 인생이 남한에 와서는 자가용을 타고 어디든 시간만 내면 갈 수 있게 됐다. 인생에 반전이 있다면 이런 반전이 또 어디 있겠는가. 지금은 서울에서 대전 정도는 자가용을 타고 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 이상 남쪽으론 고속열차를 탄다. 열차에서 눈 좀 붙이고 나면 어느 새 목적지다.

교통이 발전한 결과 여행길 문화도 차이난다. 북한에선 열차에 타면 앞 사람, 옆 사람과 처음 보는 사이에도 이야기를 나눈다. 누군가 먼저 “손님은 어디까지 가십니까?”하면 “예, 저는 평양까지 갑니다. 손님은요?”하고 화답하며 자연스레 자기소개를 한다. 그러다보면 술과 음식도 나누면서 자기 고장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열차는 소식통이다. 여행 시간이 길기 때문에 그 사이 상당히 친해진다. 사업상 거래까지 성립되는 때가 많다. 심지어 남녀 간 사랑이 맺어져 결혼까지 가기도 한다. 영화에도 그런 내용이 심심찮게 나온다.

南, 돌부처 여행객들 … 사람 냄새 나지 않아

남한에 와선 그런 북한의 모습이 그립다. 버스나 열차를 타면 옆에 앉은 사람과 눈길도 마주치지 않고 돌부처처럼 앉아 간다. 그러니 솔직히 여행길이 재미없다. 문명은 발전하는데 생활에 즙이 없고 사람 냄새가 사라진 느낌이 든다. 어쩔 수 없는 순리일지도 모른다. 북한도 앞으로 발전하면 그렇게 될지 그때 가서야 알 것 같다.

필자는 한반도 지도를 볼 때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대전에서 부산까지 손가락을 벌려 재보고 그것을 다시 북쪽으로 돌려본다. 그러면 서울에서 대전까지 거리가 서울에서 평양까지 거리만큼 비슷하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거리만큼 비슷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열차로 2시간 30분 정도면 부산에서 신의주까지는 5시간이 걸리겠구나’, ‘그러면 서울에서 우리 고향까지는 8시간 정도 걸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해본다. 그런 날이 언제면 올까. 통일이 너무 그립다.

도명학 / 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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