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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 좀비영화의 종결판? 2013년 10월호

영화리뷰 | <월드워Z>
좀비영화의 종결판?

지난 8월 4일 머나먼 브라질에서는 한국의 한 젊은이가 페더급 챔피언 벨트를 놓고 혈전을 벌였다. 요즘 UFC라는 이종격투기 경기가 주말 프로복싱의 시청자들을 대거 흡수하면서 국내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지난 8월에는 UFC 메인이벤트 경기에서 한국의 정찬성 선수가 페더급 세계 챔피언인 조제 알도를 상대로 타이틀전을 벌였고, 오른팔 어깨탈구의 부상으로 4라운드 만에 TKO패를 당해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정찬성 선수는 이종격투기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계최대 이종격투기 단체인 UFC에 입성하여 챔피언 도전권을 따냈다. 그가 UFC 내에서 갖는 입지는 그동안 경기에서 보여준 빼어난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미국 내 인기도 큰 몫을 했다. 정찬성 선수의 닉네임은 ‘코리안 좀비’다. 우리와는 다르게 미국인들에게 ‘좀비’는 매우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오는가 보다. 물론 여기서 ‘좀비’는 두려움을 모르는 화끈한 경기 스타일을 의미한다.

맥스 브룩스의 밀리언셀러 소설을 영화화

미국인의 ‘좀비’사랑은 그동안 나온 좀비영화의 수를 세보면 알 수 있다. 하도 많아서 필자는 세는 것도 그만뒀다. 그 정도로 많다. 동양권에서는 강시영화가 그에 비견될 수 있겠으나 강시영화는 현재 거의 맥이 끊긴 상태다. 좀비란 아메리카 서인도 제국의 부두교 주술사가 마술적인 방법으로 소생시킨 시체들을 일컫는 말이니 뿌리는 강시와 같은 셈이다.

최근 개봉된 영화 <월드워Z>는 좀비에 대한 상상력이 점차 체계화되면서 정점을 찍어 간다는 느낌을 주는 영화다. 그에 비해 밀라 요보비치가 주연한 영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는 우리가 알던 ‘좀비’의 존재를 너무 벗어나다 보니 사실상 전통적 의미에서의 좀비영화로 평가하기는 애매하다.

전통 좀비영화를 표방한 최근의 영화가 <월드워Z>다. 이 영화를 전통 좀비영화로 보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 원작자에 있다. 원작자인 맥스 브룩스는 이미 2003년에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묘사한 논픽션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로 베스트셀러 작가에 올라섰다. 그리고 이어 2006년에 출간한 <세계대전Z>가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밀리언셀러에 등극했다. 이 작품을 영화화 한 것이 <월드워Z>다. 맥스 브룩스의 소설은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 출간되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듯하다.

영화 〈월드워Z〉는 가상의 바이러스에 의해 전 지구적인 대재난이 발생한다는 내용이다. 기존 좀비물에 비해 스케일이 크다. 우선 주인공인 제리(브레드 피트)는 전직 UN조사관이다. 백신개발을 위해 방문하는 곳도 미국이 아닌 영국에 위치한 WHO(세계보건기구) 산하 연구소다. 원작에서는 보다 더 세밀한 국제관계 등에 관한 무거운 주제가 다루어졌지만 영화에서는 다 배제되고 ‘엄청나게’ 날랜 좀비들이 등장한다.

사실 원작에서는 좀비의 발생지로 중국이 지목되고 중국, 북한 등이 지도부의 욕심에 의해 좀비화 된다. 영화 〈월드워Z〉는 중국이라는 영화시장을 의식해서 좀비 발생지를 두루뭉술하게 처리했다. 다만 경기도 평택의 험프리 미군기지가 좀비의 발생지로 의심받으면서 브레드 피트가 조사관으로 파견된다. 그리고 거기서 북한과의 무기밀매로 감금된 CIA조사관이 나와 살며시 한반도 문제를 건드린다.

날쌘 좀비의 등장으로 긴박감 고조시켜

썩 유쾌하지 않은 설정이지만 1995년 <아웃브레이크>에서 원숭이를 불법 밀반입해서 치명적 에볼라 바이러스를 미국 땅으로 전염시키는 사람으로 한국인 선원이 등장하는 것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다. 주인공인 게리는 다음 목적지인 이스라엘을 향해 떠나고 좀비 바이러스의 발생지는 지적하지 않은 채 백신을 찾기 위해 WHO 연구소로 찾아간다.

하여간 원작은 UN의 ‘전후 보고서’를 시작으로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기록하는 다큐형식이지만 영화 〈월드워Z〉는 역대 좀비영화에서 가장 날쌘 좀비들을 등장시켜 다이나믹한 영상을 구현하는 데만 공을 들였다. 원작은 국가 권력자와 군부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주제로 1999년 나온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의 ‘Zombie’라는 팝송의 주제의식과도 잇닿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월드워Z>에 ‘좀비’만 있고 ‘알맹이’가 없다는 느낌이 들어 아쉬움이 남았다.

서유석 /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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