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훈의 취재수첩 | 북한에 불고 있는 스포츠 열풍 2013년 11월호
장용훈의 취재수첩 | 북한에 불고 있는 스포츠 열풍
북한에서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그 어느 분야보다 체육 분야에서 강풍이 불고 있다. 지난 5월 평양에서의 한 장면. 프랑스 파리 탁구 세계선수권대회 혼합복식에서 우승한 북한 혼합복식조 김혁봉·김정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자 공항은 고위인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최태복 노동당 비서, 리영수 당 부장, 리종무 체육상, 전용남 청년동맹위원회 위원장 등 고위 인사들이 직접 나가 이들을 맞이했다. 화환을 목에 걸고 꽃다발을 든 두 선수는 차에 올라 룡흥 네거리, 개선문거리, 창전거리 등을 지나며 퍼레이드를 벌였고 평양 시민들이 거리에서 이들을 축하했다. 김정은 체제 들어 크고 작은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북한 체육인은 이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체육인들을 위한 전용 아파트를 건설해 사기진작에도 나서고 있다. ‘체육인 살림집(주택)’은 평양 보통강 기슭에 건설됐으며 가정용품과 고급가구를 일식으로 갖췄고 진료소와 식당, 세탁소 등의 편의시설도 마련됐다. 북한의 언론 매체들은 이 아파트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선물’이라고 선전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스포츠 관련 공개 활동도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 9월 15일 부인 리설주와 함께 평양에서 진행 중인 ‘2013 아시안컵 및 아시아클럽 역도선수권대회’를 관람했다. 특히 이날 경기에서는 한국 선수가 등장했으며 김 제1위원장 부부가 박수를 치며 한국 선수를 응원하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경기 관람 하루 전에는 그가 평양체육관을 시찰한 사실이 보도됐다. 최근 개축 공사가 끝난 평양체육관은 체육경기뿐 아니라 군중집회도 열리는 북한 최대의 실내체육관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 9월 초에는 북한을 방문한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과 함께 농구경기를 관람하기도 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체육 열기로 한껏 달아오른 8월’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지난달 이 신문에 실린 김 제1위원장의 공개 활동 18건 가운데 체육 관련 활동이 8건이나 된다고 밝혔다.
김정은은 스포츠광 … 김정일은 예술 선호
김정은 제1위원장이 체육 관련 공개 활동을 활발히 하는 것은 ‘스포츠광’으로 알려진 그의 개인적 관심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통치의 한 방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사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음악과 문학, 영화 등 예술을 아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음악정치’라는 조어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반면 김 제1위원장은 확실히 체육에 힘을 주는 모양새다.
김정일 시대에는 한마디로 예술이 대세였다. 예술을 좋아하고 예술적 재능도 있었던 김 위원장은 예술을 통해 후계자의 기반을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3년 논문 ‘영화예술론’을 직접 발표할 정도로 영화광이었고 ‘꽃파는 처녀’ 등 영화와 연극, 가극도 예술인들과 함께 현장에서 직접 만들었다. 선율, 대사, 화면 하나까지 직접 챙긴 사실상의 연출자이자 제작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수대예술단과 백두산창작단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단체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예술인 대우와 지위는 급상승했다.
사회주의 문명국 핵심목표가 체육강국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부인 리설주와 함께 평양에서 진행 중인 ‘2013 아시안컵 및 아시아클럽 역도선수권대회’를 관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9월 16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김 위원장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부친과 달리 예술보다 스포츠에 더 열정을 쏟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전속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가 자서전에서 10대 시절 김정은 제1위원장의 뛰어난 운동 실력과 유별난 농구 사랑을 전할 정도로 스포츠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때 세계 최장신 농구선수로 알려졌던 북한의 리명훈 등과 농구팀을 만들어 경기를 즐겼고 아버지에게 졸라 리명훈의 미 프로농구(NBA) 진출을 추진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스포츠 사랑은 그가 최고지도자에 오른 이후 북한 전역에서 들썩이는 스포츠 열기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작년 11월 김정은 체제의 실세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직접 위원장을 맡고 당·정·군의 핵심인사들을 망라한 국가체육지도위원회가 발족했다. 스포츠가 국정의 중심에 우뚝 선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내세운 이른바 ‘사회주의 문명강국’ 건설의 핵심 목표 가운데 하나도 ‘체육강국’이다. 김 제1위원장은 강원도 마식령에 세계적 규모의 스키장을 건설토록 하고 완공 후 스키시범을 보이겠다고 호언장담한 것도 스위스 유학시절 스키에 심취한 영향으로 보인다.
세계적 수준의 축구선수 양성을 위한 국제축구학교 건설과 스포츠 과학화, 체육시설 리모델링 등에 대한 국가적 투자도 아끼지 않고 있다. 전문 선수뿐 아니라 단위별로 체육경기가 수시로 열리고, 산책 공원에는 롤러스케이트장, 배구장, 농구장, 배드민턴장 등이 들어서면서 일반 주민들이 스포츠를 생활화할 수 있는 체육공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또 새로운 종목의 육성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대표적인 미국 스포츠인 야구가 북한에서도 선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10월 열린 공화국선수권대회 야구 종목에서 기관차 체육단이 우승을 했다. 앞서 올해 1월에는 <조선중앙통신>이 ‘기관차체육단’ 선수들의 동계훈련 소식을 전하며 야구 배트를 든 선수의 사진을 웹사이트에 올려 눈길을 끌었다. 과거 북한 매체가 야구 종목을 소개한 사례가 흔치 않아 올해 야구 관련 소식과 사진이 잇달아 나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최근 야구를 활성화할 조짐을 보이는 것은 ‘체육강국 건설’이라는 목표에 맞춰 인기 종목을 다양화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일반적으로 스포츠는 동적이다. 경기를 하는 선수나 응원을 하는 관객이나 모두 흥분하고 빠져든다. 그래서 체육은 새로 출범한 정치권력에게는 좋은 통치방법 중의 하나이다. 국민들을 체육으로 묶어내면서 불만을 잠재울 수 있고, 스포츠의 활기를 통해 구성원들의 에너지를 모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김정은 체제의 체육 사랑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앞으로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북한 선수들이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장용훈 / 〈연합뉴스〉 기자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