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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일본의 과거사 반성과 한·일관계 미래상 2013년 12월호

시론 | 일본의 과거사 반성과 한·일관계 미래상

지난 9월 27일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옥사 건물벽에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제작한 독일과 일본의 과거사 인식 차이에 대한 비교광고 걸개그림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27일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옥사 건물벽에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제작한 독일과 일본의 과거사 인식 차이에 대한 비교광고 걸개그림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지구촌이 공존공영할 수 있는 이념은 무엇인가? 나아가 이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11월초 일본 도쿄를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깊은 상념에 잠겼다. 나는 21세기 지구촌이 간절히 열망하는 공존공영의 이념이 바로 ‘충서(忠恕)’의 정신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는 동양 전통의 유서 깊은 정신이기도 하다. <논어(論語)>를 비롯하여 <중용(中庸)>에서도 인륜의 기본 도리로 전하고 <송사(宋史)>에서는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以恕己之心恕人)”는 구절로 전하기도 한다.

이는 서구의 전통적인 기독교 사상과도 접맥되어 있다. 누구나 알다시피 기독교의 기본적인 사상은 ‘사랑’과 ‘용서’이다. ‘충(忠)’은 과거 봉건사회에서는 군주나 절대 권력자를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사회, 나아가 글로벌 사회에서 이 ‘충(忠)’은 ‘누군가를 위해 마음(心)의 중심(中)을 다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하여 마음의 중심을 다하는 것, 바로 오늘 현대사회의 ‘충(忠)’이리라. ‘서(恕)’는 ‘용서(容恕)’의 의미 이외에도 ‘어짊(仁), 인자(仁慈)’의 뜻, 또 ‘남의 처지에 서서 동정(同情)하는 마음’으로까지 나아간다.

이 또한 서양의 전통 정신과 접목시켜 본다면 ‘충(忠)’은 ‘로얄티(loyalty)’와 맞닿아 있고 ‘서(恕)’는 ‘관용(tolerance)’과 상통한다. 주지하다시피 ‘똘레랑스(tolerance)’는 19세기 드레퓌스 사건 이후 서구 지식인을 비롯한 시민사회에서 다른 민족까지 포함하여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지성적인 전통으로 자리잡아왔다.

내가 도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지구촌이 공존공영하고 상생하는 정신을 깊이 생각한 이유는 늘 고민해온 한·일관계의 미래상 때문이었다. 이번 도쿄행은 11월 6일부터 8일까지 2박3일 동안 열린 제7차 WSPU(세계스카우트의원연맹)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고, 이번 행사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석하기도 하고 총리 공관에서 공식 만찬 일정도 있었다.

충(忠)과 서(恕), 지구촌 공존공영의 이념

나는 이번 기회에 일본 아베 총리를 비롯해 세계 각 국을 대표하여 참석하는 70여 명의 의원들에게 ‘독도영유권’을 비롯한 우리 대한민국의 당연한 권리를 홍보하는 계기로 삼자는 마음을 먹고 이에 맞는 명함과 일본 총리에게 전달할 친서를 준비했다.

명함 앞뒤에는 ‘독도는 한국 땅입니다(Dokdo is Korean Territory)’라 명시했고, 뒷면에는 독도가 포함된 ‘동해’의 지도를 인쇄했다. 일본어로 번역하여 준비한 아베 총리에게 전달한 친서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아베 총리의 과거사 왜곡·부정, 독도문제의 집착은 한·일관계는 물론 동북아와 세계평화를 저해하는 잘못된 처사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일제 강점기에 피해를 입은 많은 증언자들이 한 맺힌 역사적 증언을 계속하고 있는데, 이 사실 자체를 어떻게 부정하고 왜곡할 수 있는가, 강한 의문을 다시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전쟁 관련 사죄와 배상에 적극적인 독일의 사례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하며, 일찍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한 요시다 총리나 기시 총리의 용기와 선견지명을 상고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한·일관계가 미래에도 선린 우호적 입장을 유지 발전시키도록 더욱 노력해야 한다. 결국, 한·일 과거사 문제의 해결을 위한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지도층의 새로운 인식과 노력을 촉구하는 바이다.

주지하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행보는 한·일 과거사를 비롯한 일본의 행태와는 단적으로 비교된다. 2005년 5월 10일 개선문 근처에서는 독일과 프랑스의 과거사, 나아가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행한 과거사 청산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브란덴부르크문 바로 옆에 유대인 희생자 홀로코스트 추모비 준공식이었다. 브란덴브르크문에서 남쪽으로 50m쯤 비석 준공 현장은 나치 당시 유대인 탄압의 선봉이었던 선전상 괴벨스의 지하벙커가 있던 자리였다.

이 추모비는 독일 정부의 과거사 청산작업의 또 하나 상징물이 되었고, 미국 필라델피아를 비롯한 우리 종군 위안부 기림비 건립을 반대하거나 철거를 요구하는 일본의 행태와는 대조적이다. 전후 피해보상에 있어서도 독일은 일본과 극단적으로 대조된다. 독일 정부는 이미 지난 1956년 ‘유대인 홀로코스트 희생자보상법’을 제정해 보상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기간에 그치지 않고 지속되어 왔으며 앞으로 2030년까지 약 600억 유로를 보상할 예정이라고 한다. 금전적인 보상 외에도 독일 전역에 26개의 유대인 수용소를 보존하고 전시해 과거를 반성하고 있다.

일본, 독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독일 지도층과 국민들의 과거사 청산과 반성 노력은 비단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뿐만 아니라 독일의 만행이 이루어졌던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지난 1970년 12월 브란트 당시 독일 총리는 폴란드를 방문하던 중 바르샤바 유대인 게토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예기치 않은 행동으로 독일의 과거청산과 사죄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여론은 과장된 제스처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결국 독일을 대표한 사과의 의미로 세계 각지의 찬사를 받았고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헬무트 콜 전 총리도 지난 1984년 2차대전 중 희생된 프랑스인들의 묘지에서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손을 맞잡는 화해의 자리를 만듦으로써 이후 독·프 관계를 급진전시켰다. 이러한 결과 프랑스는 1990년 독일 통일의 가장 적극적인 후원자가 됐고 2003년 양국은 공동의 대외안보정책을 수립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독일은 과거에 대한 이 같은 철저한 반성과 기억을 통해 가해의 원죄를 씻어왔고, 이런 반성 위에서 국제적 지지를 공고히 하면서 EU 지도국으로서 위상을 확보하거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까지도 겨냥할 수 있는 국제적 위상을 굳히고 있기도 하다.

아베 신조 총리에게 친서를 전달하면서, 또 세계 70여 개국 의원들에게 ‘독도영유권’ 문제를 홍보하면서 미력하나마 내 작은 노력이 한·일관계의 진정한 개선과 동북아의 공존공영을 향해 나아가고, 세계를 향한 ‘충서’의 메시지가 화해와 상생의 ‘로얄티’와 ‘관용’의 미래로 나아가기를 소망했다.

이명수 / 국회의원(새누리당, 충남 아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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