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일본 집단적자위권 추구 역사는? 2013년 12월호
특집 | 일본 집단적자위권 추구와 동북아
일본 집단적자위권 추구 역사는?
집단적자위권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행사할 수 없다는 일본 정부의 기본입장이 성립된 것은 1960년 체결된 소위 신안보조약의 국회 심의과정에서였다. 1959년 3월 2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하야시 슈죠 내각법제국 장관은 일본에게 국제법적으로는 개별적 및 집단적자위권이 인정되고 있으나, 현재의 일본국 헌법 하에서는 집단적자위권의 행사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답변함으로써 최초로 이 입장을 공식화했다.
이 입장의 논리를 보다 명확하게 정리한 문서로는 1972년 9월 14일 작성된 일본 정부의 공식문서를 들 수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즉 일본이 주권국가인 이상 국제법상 모든 주권국가들에게 부여되어 있는 집단적자위권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평화헌법의 제약 하에서 일본에 대한 급박하고도 정당하지 못한 무력공격에 대해서만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타국에 가해진 무력공격을 저지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는 소위 집단적자위권의 행사는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신안보조약의 심의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미군기지에 대한 공격을 자위대가 방어할 경우, 그 미군기지가 일본 영토이기 때문에 이것은 집단적자위권의 행사가 아니라 개별적자위권의 행사라는 입장을 취했으므로, 일본이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은 자위대가 해외에 파병되었을 경우에만 한정되었다. 이 점에 착안하여 당시의 기시 수상은 평화헌법의 특질상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자위대의 해외파병은 있을 수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집단적자위권을 둘러싼 논란을 잠재웠다.
신가이드라인·주변사태법, 집단적자위권 행사 제도화
그런데 탈냉전 이후인 1997년 새로운 미·일 방위협력지침(신가이드라인)이 성립되면서 일본은 실질적으로 집단적자위권에 대한 기존정책을 변경하게 된다. 신가이드라인은 미군에 대한 일본의 ‘후방지역지원’에 대하여 “주로 일본의 영역에서 행해지지만, 전투행동이 행해지고 있는 지역과는 분명히 선이 그어진 일본 주변의 공해 및 상공에 있어서 행해지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후방지역’이라는 용어를 이용하여 마치 이 ‘후방지역’에서 행해지는 미군에 대한 지원활동은 군사적인 의미가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일본의 영역 밖에서 자위대가 전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군사활동의 하나인 병참활동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신가이드라인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주변사태법’이 1999년에 제정된 것은 미군에 대한 병참활동에 한정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집단적자위권의 행사가 제도화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주변사태법’에서 상정하는 ‘후방지역’은 일본의 ‘주변’에 해당되는 것이었으므로 자위대의 활동범위는 어느 정도 제한을 받았다. 그런데 9·11 테러에 대한 미국의 지원요청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테러대책특별조치법’에서는 ‘후방지역’ 대신 ‘비전투지역’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전 세계를 무대로 일본이 미군에 대한 병참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반면 2006년 수상에 취임한 아베 신조는 이와 같이 병참 부문에 한정된 집단적자위권의 행사에 만족하지 않았다. 2007년 1월 4일 연두기자회견에서 집단적자위권에 관한 유형별 연구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아베 총리는 4월 25일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의 재구축에 관한 자문회의’를 발족시켜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는 4가지 케이스를 제시하며 자문을 구했다. 그런데 자문위원의 대부분은 집단적자위권 행사 용인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로서 이 자문회의는 아베가 집단적자위권에 관한 일본 정부의 기본입장을 바꾸기 위한 형식적인 수순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해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하고, 9월에 아베 정권이 붕괴하면서 그의 계획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그런데 2012년 12월 총선거에서 자민당의 승리에 의해 극적으로 복귀한 아베 총리는 이번에야말로 집단적자위권 행사라고 하는 숙원을 이루겠다는 집념으로 2007년에 발족했던 그 자문회의와 완전히 동일한 명칭과 구성원을 가진 자문회의를 올해 2월 8일 다시 발족시켰다. 이 자문회의는 2007년 이후 일본을 둘러싼 안보환경의 변화를 고려하여 집단적자위권의 행사와 관련한 보다 폭넓은 논의를 하겠다는 기본방침을 표명하고 있다.
다만 11월 8일자 <요미우리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내각법제국과의 조정 및 공명당과의 물밑교섭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요인도 작용하여 일본 정부는 집단적자위권에 대한 헌법해석 변경을 내년도 여름 이후로 연기시켰으며, 이에 따라 ‘안전보장의 법적기반 재구축을 위한 자문회의’의 보고서 제출시기도 내년 봄 이후로 연기하는 방향으로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아베 집단적자위권 시나리오는 ‘방어’ 아닌 ‘공격’?
내년도에 만일 아베 총리의 시나리오대로 집단적자위권의 행사에 대한 헌법해석의 변경이 이루어진다면, 일본의 안보정책은 혁명적으로 바뀔 것이다. 집단적자위권의 행사는 ‘방어’가 아니라 ‘공격’의 형태로 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전수방위의 원칙에 따라 현재 보유가 금지되어 있는 공격용 무기들을 보유할 필요가 발생하게 되며 물론 재정형편이나 외교적인 고려 등이 무기체계의 변화속도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지만, 공격용 무기를 보유하는 데에 있어서 현재와 같은 헌법의 제약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미 빈사상태에 있는 일본 헌법 제9조는 최종적인 사망선고를 받게 될 것이며, 일본은 소위 ‘보통국가’로서 재탄생하게 될 것이다.
김준섭 / 국방대 안보정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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