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리의 스케치北 | “<보천보의 횃불>, 김일성 우상화 신호탄” 2012년 4월호
박계리의 스케치北
“<보천보의 횃불>, 김일성 우상화 신호탄”
<보천보의 횃불>은 북한 미술계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지금 이 작품을 보는 독자들은 화면 오른쪽에 한 손을 높이 들고 서 있는 사람에게 먼저 시선이 갈 것이다. 누구일까? 이 사람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보천보 전투에 대한 지식이 있든 없든,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은 ‘김일성’일 것이다. 빙고!
이 작품에서처럼 영웅을 영웅답게 묘사하여야만 하는 것이 북한 미술계 작가들에게 부여된 기본적인 의무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조형형식이 시도된다. 부각시켜야 할 중요한 사람을 가장 크게, 가장 높게, 가장 진하게 표현하기도 하고, 가장 중앙에 배치시키기도 한다. <보천보의 횃불>에서는 가장 높게 배치시키면서 오른손까지 들었으니, 당연히 관람자의 시선은 김일성에게 먼저 가 꽂히게 된다.
또 하나 많이 쓰는 방식은 주인공에게 가장 많은 공간을 할애하는 방법이다.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전시할 때, 벽 하나에 작품 10개를 설치하고 같은 크기의 다른 벽엔 작품 하나만을 놓으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작품의 크기에 상관없이 넓은 벽에 놓인 작품이 더 명품이라는 생각을 갖고 감동 받을 마음을 준비를 하곤 그 작품 앞으로 걸어가게 된다. 물론 이러한 감상자들의 심리상태를 의도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큐레이터의 전시 연출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보천보의 횃불>은 밀집되어 있는 군중들과는 달리 오른손을 높이 든 인물 주변에 공간을 확보하고, 하얀색 옷을 덧입히며 머리 위에 밝은 구름을 배치시켜 아우라를 줌으로써 주인공을 영웅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효과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북한 미술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드러내는 것을 사실주의라 한다면 이 보다는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을 영웅답게 그리는 데에 익숙했던 신고전주의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제작한 정관철(1916~1983)은 식민지 시대에 태어났지만 현재의 평양시 중구역에서 출생하였기 때문에 월북 작가는 아니다. 동경 미술학교에 유학하여 유화를 배웠으니, 식민지 시대 최고의 ‘스펙’을 지닌 작가이기도 하다.
물론 유학 생활을 영위할 만큼 부유하지 못해 휴학과 재입학을 해가며 신문배달, 우유배달, 광고도안 등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더욱이 ‘수혈협회’의 알선으로 피를 팔아 자금을 충당해가며 5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쳤다는 일화로 보건대, 그림에 대한 정관철의 열정과 삶의 태도가 얼마나 처절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정관철, 1945년 김일성 첫 초상화도 그려
1942년 동경 미술대학을 졸업한 그가 미술계에 화려하게 등장한 것은 1945년 10월 김일성을 환영하는 평양시 군중대회에서 사용될 김일성의 첫 초상화를 그가 그리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보천보의 횃불>은 1937년 김일성이 이끈 80명의 항일유격대가 일본군의 국경수비대를 뚫고 만주에서 압록강을 넘어 보천보를 습격하고 면사무소와 우체국을 불살랐던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북한에서는 이 전투로 26세의 김일성이 전설적인 인물로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정관철은 이 작품을 1948년에 그려내었다. 당시는 김일성이 자신의 무장유격대 활동의 정통성을 부각시켜 권력기반을 굳히는 일이 시급한 과제였던 시기다. 따라서 김일성의 성공은 이 작품을 제작한 그의 위상을 북한 미술계에 확고히 굳힐 수 있게 했다. 실제로 정관철은 1949년 2월에 열린 북조선미술가동맹대회에서 동맹위원장이 되었고, 그 후 거의 35년간 조선미술가동맹 위원장으로 활약했다.
이 작품은 보천보 전투의 핵심적 요소를 정지된 한 화면에 효과적으로 구성해내고 있다. 어둠에 잠겨있는 보천보라는 시공간을 선택하고, 일본 관할의 주요 기관들이 불타오르는 장면을 통해 반일 투쟁의 불길이라는 이미지로 연결시키고 있다.
수많은 군중들이 김일성이라는 중심을 향해 술렁이듯 솟구치면서 밀려오는 구성과, 타오르는 불빛에 반사되는 빛과 열기로 군중들의 표정을 드라마틱하게 구성해내는 능력은 그를 왜 북한 미술계에서 높이 평가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군중 속 각 인물마다 개성적으로 표현해내는 데생력은 그가 유학을 통해 학습기에 익힌 아카데미즘의 탄탄함 또한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독자들에게는 이 작품의 전체적인 화면보다는 각 세부의 인물들을 꼼꼼히 들여다 볼 것을 권한다. 정관철 작품의 재미는 영웅 한 사람보다는 군집되어 있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 촉촉하게 녹아 있기 때문이다.
박계리/ 이화여대박물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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