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중계 | 제2북방정책 한국 경제 활로가 될 수 있다 2013년 12월호
세미나중계 | 제2북방정책 한국 경제 활로가 될 수 있다

지난 11월 14일 개최된 평화재단 창립 9주년 기념 심포지엄. 왼쪽부터 홍순직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권영경 통일연구원 교수, 추원서 한반도개발협력연구소장, 백학순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정낙근 여의도연구소 연구위원, 김준형 한동대 교수 Ⓒ연합뉴스
1조 1,635억달러의 경제 규모 세계 15위(명목 GDP), 1조 674억달러의 무역 총량 세계 8위,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반도체, 철강 등의 다양한 제조업 기반을 갖춘 대한민국. 이처럼 한국 경제에는 화려한 수식어들이 따르지만 자원의 98%, 에너지원의 97% 이상을 수입하는 세계 4위의 에너지 수입국이자 고질적인 청년실업과 심화되는 고령화 및 출산율 저하 등의 문제로 경제 성장률이 2.9%에 정체되어 있는 문제점을 안고 있기도 하다. 평화재단이 지난 11월 14일 ‘한국 경제의 돌파구, 남북관계 정상화에서 찾는다’라는 주제로 그 해법을 남북관계에서 찾아보는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제2북방정책, 한국 경제의 신성장동력”
한·러 정상회담이 열리던 시점에서 추원서 한반도개발협력연구소장은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제2북방정책’을 신성장동력 전략으로 제시했다. 다음은 추 소장이 규정한 제2북방정책과 함의이다.
추 소장에 따르면 제1차 북방정책은 1990년대 이후 한국 경제성장의 주요 공신이었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은 호혜평등의 원칙 아래 모든 국가들에 문호를 개방한다는 6·23선언을 천명했다. 이때부터 본격화된 제1차 북방정책은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관계 정상화와 본격적 교류협력의 시대로 이어졌다. 그동안 체제의 이질성으로 배척해 오던 러시아를 비롯한 구 사회주의권 시장과 교류를 시작하고, 중국과 수교를 맺으며 현재 한국의 10대 수출 대상국에 중국, 홍콩, 베트남, 러시아 등이 포함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제2북방정책이란 한국이 표방해 오던 기존 북방정책에서 더 나아가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안으로 새로운 북방정책, 혹은 신북방정책으로도 통칭된다.
부산-유럽 화물 운송, 40일→17일 단축
현재 한국 경제는 복지 수요 증대와 저성장의 고착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묘안이 마땅치 않다는 더 큰 문제점을 갖고 있다. 특히 기업들의 내실화가 약한 상태에서 신성장산업의 발굴이 미진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추 소장은 “제2북방정책은 제1차 북방정책에서 비켜나 있던 지역을 새로운 협력 대상으로 발굴하여 한국의 경제성장 동력으로 활용하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제2북방정책 활용이 가능할까? 지난 10월 18일 박근혜 대통령은 유라시아 대륙의 교통·물류·교역·에너지 분야를 하나로 묶어 거대 단일 시장으로 발전시키고, 나아가 지역 공동 번영과 평화체제를 공고히 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안한 바 있다. 이는 부산을 출발해 북한, 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를 실현해 복합물류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유라시아 개별 전력망과 가스관, 송유관 등 에너지 인프라를 이어 중국 및 동시베리아 자원을 공동 개발, 이용하는 것을 의미했다.
박 대통령은 “유라시아 지역은 서쪽으로는 EU, 남쪽으로는 ASEAN, 태평양 건너에는 NAFTA 등 단일시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며 “한·중·일 FTA 논의를 가속화하고 중국 주도의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연계를 통한 거대 무역자유지대화에 대한 가능성”도 제시했다.
한반도의 지경학적 이점을 고려할 때 제2북방정책은 한국 경제의 신성장동력이자 평화통일 기반을 조성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책은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와 협력 없이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추 소장은 “제2북방정책은 남북관계의 개선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구상”이라며, 남북관계의 정상화가 이루어진다면 관련 국가들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내다보았다. 다만 “북핵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내세울 미국의 협조와 전략적 소통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한·미 간의 소통, 중국의 중재 노력, 6자회담의 재개 등을 통한 분위기 조성으로 풀어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가장 큰 문제는 남북관계
최근 북한은 14개 개발구를 통하여 경제개발을 촉진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신의주 압록강경제개발구를 비롯하여 신평관광개발구, 위원공업개발구, 북청농업개발구, 와우도수출가공구 등 북한이 경제특구개발을 공식 발표함에 따라 지방 곳곳에서의 외자 유치 작업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제2북방정책과도 연관된다. 특히 나진-하산 철도가 개통 한 것은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의 연결을 의미하며 철도·도로·항만 물류 시설 등 교통 및 물류 협력사업에 청신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추 소장은 “대륙과 연결하는 노선이 본격화한다면 현재 부산에서 유럽까지 운반하는 화물 운송 시간이 40일에서 17일로 단축되는 등 물류비용과 수송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가시적 이점을 내세웠다.
추 소장은 또한 한국의 자원 및 에너지원의 해외 의존도를 분산시키기 위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북한 지역을 관통하여 한국에 공급하는 사업을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오늘날 북한의 산업이 붕괴된 주요 원인이 에너지 부족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남·북·러 간 가스관 연결 및 에너지 협력은 북한 경제에도 새로운 활로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에너지 공급원의 다변화와 동북아 통합에너지망을 위해 논의 중인 가스관 부설과 송전망 구축 사업을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이날 제기된 방안들이 아주 새로운 것들은 아니다. 이미 지난 2001년 5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북한과 러시아 철도의 연결사업, 즉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결사업, 그리고 가스관 연결, 민간선박의 영해통과 등에 합의한 이후 논의를 진행해 왔지만, 현재까지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남북관계이다. 추 소장은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5·24 조치를 꼽았다. 이는 결국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모두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따라서 5·24 조치의 조속한 해제와 최악의 상황이 아니고서는 남북 경제협력사업이나 민간 차원의 경제활동은 경제논리에 맡겨둘 것을 제안했다. 즉 남북문제와 북핵문제를 분리하여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지 않고서 이 모든 구상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날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기조연설에서 “북한은 핵·경제 병진정책이라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비현실적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 특구 모색 등 북한이 안간힘을 쓰고 있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의 이러한 몸부림을 남북관계 개선으로 연결시키고 병행해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골자로 하는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해 우리가 과감하고 창의적인 접근을 해야 할 것”이라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한국 경제는 복지와 통일이라는 커다란 숙제를 안고 있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국이 가지고 있는 오늘의 영광은 어느새 과거가 될 수도 있다. 제2북방정책을 통한 남북 경제협력은 변화를 표명하는 북한에게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우리에게도 새로운 활로를 제공할 수 있다.
선수현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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