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한국 新성장엔진, 시베리아를 가다| 유럽계의 시베리아 유입과 ‘러시아화’ 2012년 5월호
통일한국 新성장엔진, 시베리아를 가다
유럽계의 시베리아 유입과 ‘러시아화’

시베리아 카자크 가계 출신으로 1848년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출생한 수리코프의 1885년 작품 <예르마크의 시베리아 정복(Conquest of Siberia by Yermak)>
시베리아는 혹독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17세기 러시아인들이 진출하기 아주 오래전부터 모든 지역에 토착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시베리아에서 구석기 시대 최초의 인간주거 흔적은 레나강 상류계곡과 그 남부지대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기원전 3,500년경에는 다양한 신석기 문화들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며 북극해의 해안지대를 포함한 북부 아시아 전체에 걸쳐 퍼져 나갔다.
러시아의 진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17세기경에 이르러서는 이미 여러 인종 간에 혼혈이 이루어졌으며, 시베리아는 다양한 인간이 거주했던 지역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897년 제정 러시아의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시베리아의 총인구는 약 6백만명이며, 그 중 유럽계 시베리아인은 5백만명 정도이고 지역 원주민은 1백만명을 상회하지 못했다. 유럽계 시베리아인은 크게 다섯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그룹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벌의 초기, 16세기와 17세기부터 자발적으로 시베리아로 이주한 러시아인으로서 시베리아 토착인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이후 시베리아 식민개발과 함께 그 수는 증가됐다. 두 번째 그룹은 러시아 유럽지역으로부터 시베리아로 이주한 농민들이다. 초기에 이들의 거주형태는 유목적 성격이 강했으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점차적으로 한 곳에 정주하는 정착형으로 변모했다.
세 번째 그룹은 범죄인과 부랑자들로서, 중앙으로부터 상대적으로 통제가 취약한 지역을 찾아 도피해왔다. 네 번째 그룹은 시베리아 정벌과정에서 필요한 고위관료와 상인 그리고 다양한 전문 직종을 지닌 자들로서 주로 시베리아 지역의 도시에 정착했다.
마지막 그룹은 정치적 이유 때문에 유배에 처한 지식인이나 정치인들로서, 이들의 생활공간은 주로 수용소나 제한된 지역이었다. 이들은 시베리아 지역에 유럽 문화를 전파하거나 정착시키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유럽계 시베리아 주민의 대부분은 슬라브인, 특히 러시아인이었으며 그 뒤를 이어 폴란드인이 차지했다. 그밖에도 독일인, 그리스인, 프랑스인, 영국인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소수민족에 해당되었다.
지식인의 시베리아 유배, 유럽문화 전파 역할
제정 러시아 정부는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의 개발과 남하정책의 일환으로 1891년~1903년 사이에 시베리아횡단철도를 건설했다. 이 철도의 개통으로 많은 슬라브인들이 극동지역으로 이주했으며, 1905년 스톨리핀의 농업개혁 이후 토지가 부족한 슬라브인들은 새로운 토지를 찾아 극동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기 시작하는 등 유럽 지역으로부터 시베리아 지역으로의 인구유입이 가속화됐다.
이러한 현상은 비록 방법과 목적에 있어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소비에트 시대에도 지속되었다. 1933년 일본과의 전쟁을 대비한 전초기지로서, 1936년~1938년 스탈린의 대숙청 작업이 전개되는 동안에는 부농, 정치범과 사상범 그리고 고려인을 포함한 일부 민족집단의 강제이주 혹은 추방지로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에는 중공업과 군수산업의 중심지로, 흐루시쵸프와 브레즈네프 시대에는 분권화 정책과 서시베리아의 처녀지 개척, 그리고 노동배분정책에 의한 각종 특혜가 부여되는 특화지역 등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시베리아 지역의 인구유입과 절대적 인구수 역시 증가했다.
그러나 소비에트 체제의 붕괴는 시베리아 지역의 인구감소 현상을 초래했다. 러시아연방 정부의 각종 유인책에도 불구하고 유럽으로부터의 인구유입 현상이 축소되었을 뿐 아니라, 인구의 자연증가 현상도 감소했다. 이와 더불어 유럽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기후와 사회적 환경은 오히려 이 지역으로부터 인구유출 현상을 부추겼다.
그러나 제정 러시아 시대부터 소비에트 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된 유럽으로부터의 러시아인 유입과 시베리아 지역의 ‘러시아화’ 또는 러시아 통합정책의 결과, 동 지역에서 러시아인이 지역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는 상대적으로 소수민족으로서 고아시아족과 신시베리아족으로 이루어진 이 지역 원주민들의 정체성과 사회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시베리아 원주민 전통문화와 생업 파괴돼
이 과정 속에서 러시아인들은 다소 왜곡된 관념들을 제시하며 주장해왔다. 러시아인은 대체로 평화적인 절차로 러시아를 지배하였으며, 러시아와의 통합은 ‘좀 더 수준 높은 문화’와의 접촉으로 원주민들에게 해로움보다는 더 많은 이득을 제공하였으며, 원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했던 다른 식민체제들과 러시아 식민체제와는 아무런 유사성이 없다는 등의 주장을 전개해왔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될 부분은 제정 시대의 시베리아 정벌과 소비에트 시대의 집단화, 유목생활 반대정책 등이 실제로 시베리아 지역 원주민의 전통문화와 생업 파괴 등과 같은 현상을 초래했다는 점이다.
현 시베리아의 정체성과 장차 발전 방향성을 이해하려면, 시베리아 지역의 러시아인의 유입과정과 ‘러시아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시베리아 지역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훈/ 배재대 한국-시베리아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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