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전쟁·평화 | 민주평화론, 한반도 평화 그리고 전략적 대북접근 2012년 5월호
인간·전쟁·평화
민주평화론, 한반도 평화 그리고 전략적 대북접근
냉전의 종결과 더불어 서구의 사회과학자들사이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이데올로기 경쟁의 종식과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보편적 확대를 강조하면서 전쟁은 서구적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한 국가들 사이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 민주평화론은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들은 상호 간에 무력분쟁을 할 가능성 혹은 무력분쟁을 전쟁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낮다는 국제분쟁과 평화연구의 한 흐름이다. 많은 경험적 연구들도 거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 간에는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무력갈등 혹은 심각한 외교적 갈등도 그렇지 않은 국가관계에서 보다 상당히 적게 발생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평화론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상대방과의 협력관계를 이끌어 내고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화적, 구조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민주평화론의 문화적 설명은 민주국가에서 개인이 자율성을 지닌 행위자로서 타인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자신과 동의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도 관용을 보여준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사회의 개방성과 자유로운 정보의 유입은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위와 같은 인식을 형성하고 강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상대 민주주의 국가를 악마의 이미지로 규정하는 것이 억제되며, 상대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 역시 그들의 엘리트의 전쟁 기도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됨으로써 민주주의 국가 간의 갈등이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비민주국가의 리더들은 자기 국민들에 대하여 지속적인 공격상태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미국의 냉전이데올로기는 미국이 소련의 주민들과 대립·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 엘리트들과 대립·갈등한다는 것이다. 자기결정권을 박탈당한 소련주민에 대한 미국의 인식은 소련에 대한 미국의 적대적 외교정책을 정당화시키는 논리로 작동하였다.
민주적 규범 공감 위한 전략적 접근 요구
민주평화론의 구조적 설명은 정기적인 선거, 권력의 분립, 견제와 균형의 원리와 같은 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민주국가의 리더들이 자국민을 전쟁으로 내모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모든 정치지도자가 자신 혹은 자기 후계자의 권력이 유지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정치지도자들은 충분히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야하며, 잠재적 지지자에게 개인적 이익뿐만 아니라 집단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공공재를 적절히 제공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서 진다거나 전쟁의 장기화 혹은 참혹성 때문에 집단적으로 큰 피해가 발생한다면 민주주의 국가의 대다수 정치지도자들은 전후 선거에서 패배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대중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선에 실패하였다.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지도자들은 서로 간의 전쟁을 피하려고 협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민주평화론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사담 후세인와 모암마 가다피, 바샤르 알 아사드, 김정은을 비롯한 최고권력자 등은 어렵게 권좌에서 끌어내려졌거나 혹은 현재도 권좌를 유지하고 있는 독재자들의 전형이다. 이들의 독재권력 하에서 대다수의 주민들은 고통의 삶을 살아가야 하지만, 이들에게는 독재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기회인 정기적인 선거의 기회가 없다.
독재국가의 정치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의 가족, 파벌, 군대와 비밀경찰 등의 이익을 충족시키는 것이며 나머지 대중은 독재권력의 억압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독재권력자들은 호전적이며 민주주의 국가를 상대로도 전쟁을 야기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민주평화론자들에게 민주주의의 확산은 국제적 불안요인을 애초에 제거하기 위한 제도적 기초 장치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민주평화론의 주장은 한반도 평화구축의 과정에도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우선, 남한 사회에서 북한의 정권과 주민을 분리해서 접근해야한다는 주장은 민주평화론의 문화적 설명과 유사하다. 즉 남한 정부의 대북강경책을 옹호하는 입장은 북한에 대한 봉쇄정책이 북한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정권의 권력자들이 북한주민에 대한 억압과 주변국에 대한 도발적 행위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냉전기 미국의 대소련 적대외교정책을 정당화하는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차이는 미·소는 현재의 남북관계와는 달리 이념적 경쟁의 관계 속에서도 직접적인 대화채널을 완전히 단절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대화와 교류의 완전한 단절은 남북한 주민의 사적 이익에도 공적 이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남북한 주민 간에 민주적 규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남북관계의 전략적 접근의 필요성이 민주평화론이 시사하는 중요한 바라고 하겠다.
민주화 위한 타국 개입 정당화시키지 않아
그리고, 북한의 민주화와 인권 개선을 위한 남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 확대에 대한 주장 역시 민주평화론의 제도적 설명에 토대를 두고 있다. 하지만 경험적 사실로써 이해되는 민주평화론은 상대 정치체제의 민주화를 위한 개입을 정당화시켜주지는 않는다.
민주주의로의 체제 이행은 단선적 발전과정이 아니며 민주화는 권위주의체제 혹은 독재정권으로의 회귀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전쟁이 민주화 과정의 국가와 다른 국가들 간에서 오히려 빈번하게 발생하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북한의 민주화를 논할 때 반드시 그에 따른 남북한 간의 위기관리능력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도 유념해야할 것이다.
현재 정부의 “통중봉북”이라는 접근이 한반도 문제의 다자성을 인식한 것이라 할지라도, 민주평화론은 대북강경책만이 아니라 북한과의 항시적 대화채널의 구축이라는 양자적 접근을 통한 위기관리 능력의 향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겠다.
송영훈/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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