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미얀마, 미·중 패권경쟁의 잠재적 균형자? 2012년 5월호
미얀마, 미·중 패권경쟁의 잠재적 균형자?
최근 폭넓은 정치개혁을 내세우며 국제무대에 데뷔하고 있는 미얀마를 둘러싼 지역 환경을 두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강화된다는 여론이 지대하다. 그런데 두 국가의 갈등을 이해하기에 앞서 미얀마의 외교정책과 전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얀마가 가진 권력자원과 권력의 전환능력이 소위 강성권력을 압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 약소국 미얀마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원, 즉 동아시아의 교두보이자 인도양을 앞마당으로 두고 있는 지정학적 가치와 중국과 인도를 교두보로 둔 거대한 천연자원의 보고라는 지경학적 가치를 활용하여 효율적 외교정책을 펼치는 데 유리하다.
1988년 미얀마에 신군부정권이 들어선 이후 중국과 미얀마는 이해관계를 합치시켜 상호의존도를 심화시켜 왔고, 2011년에는 양자관계가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되었다. 이에 반해 미국은 합법적이지 못한 정권에 벌을 준다는 도덕적 원칙에 입각하여 정권퇴진을 목표로 대 미얀마 제재를 고수해 왔으나 실효성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을 받는 등 오바마 행정부 이전까지 강경일변도를 유지했다.

지난 4월 1일 미얀마에서 열린 보궐선거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국민민주주의연합(NLD)이 승리한 것으로 나타나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얀마, 지정·지경학적 가치 최대한 활용
미얀마에 대한 중국과 미국의 극명한 입장은 미얀마의 대외 시각에서도 투영된다. 1998년 미얀마 국방부가 발표한 한 문건에는 미국의 중국 봉쇄정책에서 미얀마가 “가장 허약한 연결고리”라고 지적하지만 최근 미얀마 대통령을 포함한 주요 관료들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국가의 전략적 가치를 부각시키는 상반된 입장을 보인다. 적어도 미얀마는 변방의 약소국이 아니라 강대국의 패권경쟁을 조율할 수 있는 잠재적 균형자라는 사실을 정치적 수사로 역전시킨 것이다.
실제로 미얀마의 다양한 개혁 배경에는 강대국의 권력이 교차하는 지역 환경도 한 몫을 했다. 체제유지를 정권의 최대 목표로 설정한 미얀마 신군부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봉쇄정책을 돌파하기 위해 중국카드를 채택했으나 ‘미얀마의 중국화’라는 역효과를 낳았다. 바꿔 말하면 미얀마 군부입장에서 주권은 유지하겠지만 정치와 경제적으로 중국에 종속되는 구도나 미국의 경제제재에 굴복하는 상황은 정권 붕괴와 동일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에 반해 민주화 조치와 인권개선 등 정치개혁을 추진하면 미얀마는 제재 완화 또는 해제 수혜를 기대할 수 있고, 나아가 시장과 외교정책의 다양화를 통해 종국에는 중국 종속구도를 탈피할 수 있다.
미얀마 신정부의 거시적 전략과 달리 여전히 지속성의 맥락을 앞세우는 친중파는 존재한다. 작년 10월 중국 자본으로 건설예정이던 밋송(Myit Sone)댐 건설 중단을 두고 발생한 대통령과 군 수뇌부 및 각료들 간 심각한 의견 대립은 중국과의 연대 해체를 두려워하는 항변이 아니라 당장의 경제적 이득을 포기해야 하는 보수파의 볼멘 목소리였다. 군부와 결탁한 국내 기업들이 중국과 공동으로 개발 사업에 참여해 온 사실로 보아 친중파는 민족주의와 자신의 경제적 이권을 교환해 왔다.
미국과 미얀마의 관계가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은 아웅산 수치에 의존하고, 공식적으로 2003년 이후 국민민주주의연합(NLD)을 합법적인 정부로 규정한다. 이 사실에 입각하여 미얀마 정부도 독자적으로 제재 해제와 관계 정상화가 불가능하다고 인지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정부는 아웅산 수치를 지렛대로 이용하여 힐러리 클린턴 장관의 방문을 성사시켰고, 지난 4월 1일 보궐선거를 경제제재 완화용으로 활용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미얀마의 민주화 조치에 부응하는 세계 각국의 정상과 주요 인사들이 미얀마를 방문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미국과 중국의 대 미얀마 외교정책은 명쾌하지만 뚜렷이 상반되고, 이 지역을 전략적 교두보로 활용하려는 동일한 목적도 내재한다. 중국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수입하는 에너지의 안전한 수송로 확보를 위한 소위 ‘말라카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미얀마 서부 싯뜨웨(Sittwe)항을 이용하는 데 합의했고, 이를 발판으로 해상안보에 무게를 싣고 있다.
또 1992년 이래 미얀마의 주요 거점에 대한 해군기지 근대화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인도의 안보딜레마를 자극해 왔다. 구체적인 전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미국도 필리핀을 필두로 태국·인도와 연대하면서 중국의 ‘진주목걸이 전략’을 무마시키고 나아가 중국 봉쇄를 위한 해상권 안보벨트를 구상하는 등 허약한 지대를 강화하기 위한 핵심으로 미얀마를 간주하고 있다.
미얀마, 중국 해군 접근 단호히 거부
따라서 두 국가의 최종 목적은 미얀마 내 해군기지를 신축하거나 또는 자국 해군을 주둔시키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구애작전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미얀마는 이들 가운데에서 국익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는 헤징(hedging)전략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미얀마는 전통적으로 비동맹중립노선을 채택하는 국가다. 신헌법에 어떠한 외국군도 국내에 주둔할 수 없다는 조항을 삽입한 것도 지나친 중국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된다. 일례로 작년 5월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의 중국 방문 당시 중국은 건설 중인 가스파이프라인을 빌미로 미얀마 서부 해안에 대한 자국 해군 접근을 시도했지만 미얀마의 부정적 입장은 단호했다.
이제 민주화로 나아가는 미얀마의 선택에 ‘국가 대 국가’라는 기존 전략을 수정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고, 정권의 연성화가 심화될수록 미얀마의 중국 탈피는 현실화될 것이다. 1988년 군부가 재집권하기 전까지 미국은 미얀마의 후원자 중 하나였고, 군부를 교육시키기도 했으며, 미얀마 군부와 정치인들은 여전히 21세기 세계정치에서 미국의 위상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아웅산 수치는 친미주의자도 반중주의자도 아니지만 그녀의 아버지와 정치인들처럼 중국을 미얀마 외교정책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만 하는 국가로 인정한다. 정권의 유형과 관계없이 미얀마는 중국을 가장 부담스럽지만 활용하고 때로는 동조해야할 ‘필요악’으로 파악하며, 지역 환경으로 인해 강대국의 볼모로 잡힐 가능성을 차단하고자미국을 일시적 ‘구원자’로 간주할 것이다.
장준영/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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