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5월 1일

특집ㅣ 탈(脫) ‘혁명전통’과 효율성 발휘, 권력안정 분수령 2012년 5월호

<편집자주>

지난 4월 당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에서 영원한 총비서이자 국방위원장으로 추대된 김정일의 3남 김정은이 당 제1비서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추대됨으로써 김정은 체제가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 그러나 공식적인 권력승계를 조기에 마무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체제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북한이 1998년 고난의 행군을 마치며 국가비전으로 거론하기 시작하였고 2007년 11월말 김일성 전 주석의 100회 생일을 맞는 2012년까지 달성하겠다고 천명한 강성대국 진입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정치사상과 군사강국은 달성하였으나 경제강국 건설은 앞으로 집중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함으로써 스스로 강성대국 특히 경제강국 달성에 실패하였음을 인정하였다. 이에 북한의 강성대국 추진 실태를 정치사상, 군사, 경제, 과학기술로 나누어 살펴봄으로써 김정은 체제의 앞날을 전망해보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특집ㅣ 김정은 체제 출범…강성대국은?

탈(脫)‘혁명전통’과 효율성 발휘
권력안정 분수령

SR_201205_13

북한 김일성 주석의 100회 생일을 맞아 지난 4월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인민군 열병식이 열린 가운데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손을 흔들고 있다. 그는 이날 열병식에서 20분 정도의 첫 공개연설을 했으며 <조선중앙TV> 등 방송매체들은 열병식 행사를 이례적으로 실황중계했다. ⓒ연합뉴스

선대 수령의 사망과 동시에 후계 수령으로 등극한 김정은이 당·정·군의 수위에 오름으로써 명실상부한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됐다. 지난해 12월 17일 김정일의 사망과 동시에 수령의 지위에 오른 김정은이 가장 먼저 차지한 자리는 군의 최고직책이다.

지난해 12월 30일 군 최고사령관에 오른 김정은이 4월 11일 당대표자회에서 당 제1비서,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직책을 차지했다. 이로써 김정은은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등극했고 한반도 절반의 새로운 상속인으로 공인됐다.

왕조시대 왕위계승처럼 권력승계가 순조롭게 이뤄진 것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수령제’ 통치시스템을 구축해 놓았기 때문이다. 북한주민들은 3대 세습을 ‘관습헌법’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고, 권력층도 김정은을 ‘진심으로 받들어야 한다’는 김정일의 ‘10·8 유훈’에 따라 외견상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1월 18일자 <노동신문>을 통해 김정일의 유훈을 공개하면서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잘 받들어 주체혁명위업을 빛나게 계승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어버이장군님의 가장 큰 염원이며 우리 일군들과 인민들에게 남기신 간곡한 부탁이다.”고 밝혔다.

적어도 북한 집권층은 지도자와 운명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김정은을 수령으로 옹립해서 기득권을 누리려 한다. 이와 같이 북한은 ‘수령중심의 유일체제’를 구축해 놓았기 때문에 선대 수령의 사망과 동시에 후계 수령이 곧바로 권력을 장악하고 ‘수령제’를 이어가고 있다.

김정은, 권력층 충성맹세 속 당·정·군 장악

김정은이 ‘4·15 연설’에서 “김일성 민족의 100년사는 탁월한 수령을 모셔야 나라와 민족의 존엄도 강성번영도 있다는 철의 진리를 뚜렷이 확정해주는 역사”라고 밝힌 것처럼 북한역사는 수령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김정은의 공식승계는 김정일의 승계방식과 과정이 유사하다.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같은 권한을 갖는 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란 새로운 직책을 만들어서 그 자리에 올랐다. 마치 스포츠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선수의 등번호를 영구결번 하듯이 전임지도자의 직책을 영구직함으로 남겨 놓았다.

당중앙위원회 제1비서란 직책은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에서도 볼 수 있는 직책이다. 흐루시초프 시대 소련에서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비판하면서 서기장 직책을 폐지한 적이 있다. 흐루시초프는 집단지도체제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제1서기 직책을 신설하여 그 자리를 차지했다. 쿠바는 지금도 카스트로가 당중앙위원회 제1비서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김정일을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함으로써 김정은이 제1국방위원장을 차지했는데 이는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있기 때문에 제1국방위원이란 직책을 쓸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란 다소 어색한 직책을 신설한 것으로 보인다.

최룡해, 핵심인물 부상 … 군 통제 강화

김정은의 권력승계 수순은 김정일의 경로를 그대로 따랐다. 지난해 말 군 최고사령관직을 먼저 승계하여 군권을 장악한 후 당과 국가의 최고직책을 잇달아 승계하여 공식승계를 마무리했다. 김정일이 3년 걸린 공식승계 절차를 김정은은 불과 4개월여 만에 끝냈다. 김정일의 경우 오랜 후계구축 기간을 거쳐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식승계를 서둘지 않았다.

하지만 김정은은 후계구축 기간이 짧고 전권을 장악하기에는 아직 어리다는 점에서 공식승계를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 권력기반이 취약한 가운데 공식직책의 승계를 늦출 경우 야심가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식승계를 서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북한의 새 지도부는 김정은 체제의 조기 공식화를 통해서 권력투쟁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김정은 체제의 내구력과 관련한 외부 세계의 의구심을 불식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사망으로 ‘김정일 변수’의 불확실성은 사라졌지만 ‘김정은 변수’의 불확실성이 새롭게 제기됐다. 무엇보다 김정일에 비해 후계구축의 기간이 짧은 김정은이 안정적으로 권력을 공고히 할 것인지가 최대의 관심사다. 야당이나 시민사회가 존재하지 않은 북한에서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에 직접적으로 저항하거나, 야심가가 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권력투쟁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 여부는 북한 내부의 유일한 위협세력이 될 수 있는 군부의 지지여부와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군부의 지지확보를 위해 김정은 시대에도 선군정치와 군부인사의 핵심 지도부 배치는 계속될 것이다. 이번 당 대표자회를 전후해서 군부인사들의 승진과 발탁이 이뤄졌다.

하지만 군의 가장 중요한 자리인 총정치국장에 민간인 출신 최룡해를 임명한 것은 군에 대한 당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2010년 9월 김정은, 김경희와 함께 대장칭호를 받은 최룡해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비서(근로단체 담당),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당정치국 후보위원, 당중앙위원회 위원에 임명되면서 김정은 체제의 핵심인물로 급부상했다.

4월 7일 차수 칭호를 부여받은 최룡해는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비서국 비서,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올랐다. 곧이어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최룡해는 국방위원회 위원의 자리도 차지했다. 이로써 최룡해는 당과 정부의 주요직책을 겸하고 김정은 시대 권력의 핵심임을 재확인했다.

경제난 극복 실패시 반체제세력 조직화 될 수도

20대 후반의 카리스마가 부족한 김정은으로의 후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김정은 체제가 효율성을 발휘해야 한다. 김정일 시대처럼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전통을 강조하면서 과거 지향적으로 문제를 풀 수는 없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혁명가계라는 것만으로는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

북한은 이번에 개정한 조선로동당 규약 서문에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규정했다. 김정은 체제가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영원한 지도사상’으로 내세운 것은 전임 지도자를 극복할 수 없는 3대 세습의 태생적 한계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3대 세습을 통해서 공고화된 유일체제는 정권을 유지하는 데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

김정은 체제가 효율성을 얼마나 발휘하느냐는 3대 세습의 태생적 한계를 얼마나 극복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수령복을 대대로’ 누린다는 달콤한 말만으론 인민을 끌고 갈수는 없다. 김정은이 북한의 최고지도자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령으로서 인민들의 의식주를 보장하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먹는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운 만성적인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인민은 등을 돌릴 것이다. 인민의 불만이 높아지면 야심가가 나타나거나, 반체제세력이 조직화할 수 있다.

스위스 유학경험이 있는 김정은이 북한의 다른 어떤 지도자보다는 개혁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정책전환을 위해서는 권력의 공고화와 함께 대외관계를 풀어야 한다. 최근에 공개된 김정일의 ‘10·8 유훈’에도 “국제제재를 풀어 경제발전을 위한 대외적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내부자원이 고갈된 북한이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대외관계를 풀어야 한다.

특히 북미 적대관계를 풀어야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가 외부세계와 관계설정을 하지 못하고 갈등을 지속할 경우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