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6월 1일

만나고 싶었어요| “표준어는 남한 생활의 도구일 뿐입니다.” 국립국어원 강보선·양수경 강사 2012년 6월호


만나고 싶었어요

“표준어는 남한 생활의 도구일 뿐입니다.” 국립국어원 강보선·양수경 강사

어떻게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남한어를 가르치기 시작하셨는지.

| 강보선 | 국어교육을 전공했고, 남북 언어통합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 중에서도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어를 이해시키는 일과 새터민들에게 남한어를 이해시키는 일, 이 두 가지에 관심이 있고요. 2년 전부터 국립국어원을 통해 새터민에게 남한 표준어를 가르치는 일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보통 주민센터나 하나센터가 국립국어원에 의뢰하면 새터민 언어교육 프로그램이 구성됩니다. 대략 10주 정도 기간으로 교육 프로그램이 정해지면 남한 어휘 분야는 제가 강의하고, 발음과 억양 분야는 언어학을 전공하신 양수경 선생님께서 진행하시죠.

수강생 연령대와 성비는?

| 양수경 | 주민센터나 취업훈련 프로그램 안에서 자발적으로 신청한 수강자를 대상으로 교육하는 곳을 보면 보통 30~50대 여성분이 많은 편이에요. 남한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어울려 일을 하고 있는 분은 남한어의 필요성을 현장에서 직접 느껴서 그런지 참여율도 높고 의욕도 대단하시죠.

| 강보선 | 30~50대 분이 많은 이유가 자녀교육과도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새터민은 자녀가 학교에서 쓰는 말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죠.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도록 남한어를 배워 자녀가 학교생활을 잘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분이 많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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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들이 언어 측면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 양수경 | 현재 입국하는 새터민분들 중 함경북도 출신이 대다수잖아요. 함경북도 말이 성조 방언이라고 해서 남한으로 말하자면 경상도 방언처럼 높낮이가 고정되어 있거든요. 전체적으로 억양이 매우 두드러지고 이질적이기 때문에, 한 마디만 해도 북한에서 온 게 바로 표시가 나요. 남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싶은데 말투나 억양 때문에 특별한 시선과 주목을 받으니 너무 싫은 것이죠.

새터민들이 ‘어머니’를 ‘오마니’라고 발음하는 거 많이 들어보셨죠? 북한의 ‘어’가 원순화되면 우리말의 ‘오’와 비슷하게 들려요. 마찬가지로 ‘으’가 원순화되어 ‘우’처럼 들리죠. 자신은 ‘영희’, ‘성희’라고 이야기했는데 남쪽 사람들이 나중에 써놓은 것을 보면 ‘용희’, ‘송희’라고 되어있는 식이죠. 그러한 남북한 사이에 이질화된 요소 때문에 의사소통에 불편을 겪는 수가 많죠. 심리적으로 타자화되는 과정을 겪는 것이고요.

실제로 시간제 일자리를 구하려고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했을 때 한 마디만 이야기하더라도 상대방이 ‘어디서 왔냐’, ‘출신이 어디냐’ 이렇게 묻게 되거든요. 소극적인 분은 주눅이 들어 다시 전화하는 것을 꺼리게 되죠. 말에서 드러나는 것 때문에 다른 취급을 받고, 북한에서 왔으니 사회문화적 지식도 적고 업무능력도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아예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시면서 불편함을 토로하시죠.

모든 내용을 다 가르치기 힘들 것 같은데.

| 강보선 | 제한된 시간 안에 가르칠 수 있는 어휘가 한계가 있죠.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새터민을 위한 언어교육용 교재를 보완하는 방향에서 강의하고요. 외래어는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용어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또한 남한 사람과 대화할 때 실수할 수 있는, 즉 똑같은 의미라고 생각했는데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른 것 중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위주로 다루죠. 예를 들면 ‘소행’이라는 단어가 있잖아요. 북한에서는 ‘소행’이 긍정적인 의미도 있고, 부정적인 의미도 있거든요. 긍정적으로 쓰일 땐 ‘착한 소행이다’, ‘소행상을 타다’ 이런 말도 있어요. 그런데 남한에서는 부정적으로 쓰이잖아요.

예를 들어 새터민 교사가 교실에 들어갔는데 학생들이 선물로 꽃 한 다발을 교탁 위에 놓여있는 상황에서 “이게 누구 소행이죠?”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죠. 그러면 학생들은 ‘우리가 뭘 잘못했나?’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되잖아요.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이죠.

‘머리’라는 단어도 북한에서는 사람에게만 ‘머리’라고 써요. 나머지 동물에게는 ‘대가리’거든요. 남한에 왔더니 ‘소머리’, ‘돼지머리’ 이렇게 쓰는 것을 보고 낯설었다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요. ‘살찌다’의 경우도 북한에서는 주로 동물에게만 쓴다고 해요. ‘방조하다’라는 말도 북한에서는 ‘도와주다’, ‘도움을 주다’ 이런 의미에요. 그런데 남한에서는 ‘(나쁜 일을) 모른체하다’, ‘방관하다’ 이런 의미가 있잖아요.

또 한 새터민이 병문안을 간 자리에서 남한 환자분의 야윈 얼굴이 안쓰러워 걱정하는 투로 “얼굴이 못 쓰게 되었네요.”라고 말해 오해를 샀다고 해요. 이러한 차이점은 아직 연구 중이기 때문에 밝혀진 게 그리 많지 않지만 그 중에서도 알아야 될 것을 추려서 교육을 하고 있죠. 실제로 이러한 부분은 정착기간과 상관없이 별도로 배우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새터민 사이에서 반응이 좋아요.

북한이탈주민의 출신 지역에 따른 특징이 있나요?

| 양수경 | 평안도나 황해도, 이 쪽 지역 방언을 서북 방언이라고 하는데 보통 여기 출신 분들이 함경도 같은 동쪽 지역에서 오신 분들보다 말을 알아듣는 부분에 있어서 어려움을 훨씬 덜 겪는다고 말씀하세요. 또한 지금까지 입국하신 분들 중에는 압도적으로 함경도 출신이 많잖아요. 이 분들 중에서는 남한 표준어를 배우는 것보다 부산의 경상도 방언을 배우는 게 더 쉽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어요. 아마도 성조 방언이 계속 남아있기 때문에 억양의 높낮이 측면에서 지역 방언이 훨씬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보람있는 일도 많죠?

| 강보선 | 예전에 북한에서 의대를 나와서 탈북한 후 남한에서 다시 의대에 진학하신 남성 분이 있었어요. 저희가 한창 남북 어휘 교재를 개발해나갈 때 의료에 관한 단원이 있었거든요. 자료 만든 것을 보여드리고 잘못된 것과 추가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달라고 부탁드린 적이 있죠. 다 보고나선 “평소에 모르고 있던 점이 많이 소개가 되어 참 좋다”, “남한에 정착해 10년이 지났는데 조금 일찍 만들어져 빨리 볼 수 있었다면 더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람을 많이 느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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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14~15일 국립국어원 강의실에서 열린 ‘새터민의 언어 적응 지원을 위한 새터민 교사 연수회’에서 참가자 및 기관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 언어교육 과정에서 우려되는 것이 있다면?

| 양수경 | 새터민에게 남한 표준어를 교육하면서 항상 느끼는 부분인데요. 이러한 교육이 혹시 자기 고향 말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하면서 반드시 남한어로 고쳐야 된다는 식의 잘못된 압력으로 받아들여질까봐 우려가 돼요. 소수자의 언어권리 측면에서 북한어를 사용하는 새터민이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예전과 달리 현재 남한에서도 지역  방언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죠. 같은 방언을 쓰는 사람들끼리는 긴밀한 유대관계를 느끼고, 이로 인해 보다 친밀감을 갖는 등의 기능이 있거든요. 그러니 저는 항상 강의실에서 ‘여러분이 쓰고 있는 말이 표준어보다 언어적으로 뒤떨어지거나 나쁜 말이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는 남한 사람의 인식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라고 강조해요.

남한 표준어 교육의 기본은 새터민의 필요를 도와주는 것이지, 표준어로 바꾸라는 강요가 아닙니다. 사회생활 할 때 표준어로 말하지 못해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이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사용하면 되는 것이라고 꼭 말씀드려요.

| 강보선| 덧붙이자면 현재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내용이 있어요. 북한어를 소개하면서 남한어와의 차이점을 드러내주는 내용인데요.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죠. 남한 사람을 대상으로 북한어가 이상하거나 열등한 언어가 아니며, 표준어와 방언이 각각의 역할이 있듯이 북한어 역시 소중한 언어 자원으로 봐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도적 측면에서 보완해야 할 점이라면?

| 강보선| 인쇄본 교재 개발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시청각 자료도 많이 개발되면 좋겠죠. 예를 들어 화장품과 관련된 어휘 중에서 유독 외래어가 많잖아요. 이럴 때 실제로 화장품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장면을 한 번 보는 것이 책으로 습득하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많이 되겠죠. 수강자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도 과제입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새터민 대학생들이 알아야 할 어휘와 표현’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 적이 있었어요. 새터민 대학생에게는 대학생이 평소에 많이 쓰는 내용을 이야기해야 하잖아요. ‘과제물을 제출할 때 어떤 글을 써야 하지?’, ‘교수님께 이메일을 보낼 때는 무슨 표현을 써야 하지?’ 이런 것을 궁금해할 것 아니겠어요?

맞춤형 강의와 교재가 더 많이 개발되어야 합니다. 또한 최근에 새터민을 위한 상담센터가 많이 늘었는데도 언어 상담은 진행하지 않더라고요. 새터민을 위한 전문적인 언어 상담 창구가 있어서 언제든 쉽게 불편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립국어원에서 진행하는 북한이탈주민 언어교육 효과는?

| 박미영 | 매년 상하반기에 한 번씩 새터민 교사 연수회를 진행합니다. 하나센터, 복지관 선생님뿐만 아니라 관련 단체 관계자분이 오셔서 교육받고 토론하시거든요. 교육이 종료되고 난 후 반응을 보면, 여태껏 방법적 측면에서 많이 부족해서 새터민이 상담해올 때 시원하게 해결해주지 못했던 부분이 많았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제대로 배우게 되어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씀해주십니다.

실제로 국립국어원으로 새터민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교육요청을 하는 사례도 늘고 있어요. 현재 파주에서 언어교육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자신은 강원도에 있어 너무 멀어 참석할 수 없으니 강원도에서 별도로 교육을 해줄 수 있는지 문의하는 식이죠. 이런 전화를 받으면 지금까지 진행해왔던 국립국어원의 새터민 언어교육이 실질적인 효과가 있었다는 것과 함께 꼭 필요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느끼죠.

지난해의 경우를 보면 1회로 끝나는 단발성 교육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올해는 10개월씩 장기간 지속적으로 운영하겠다며 문의하는 기관이 상당히 늘었습니다. 고무적인 현상이죠. 새터민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통일부나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같은 기관이 전국 유관 단체에게 새터민 언어교육을 적극 권장해나감과 동시에 그간 개발한 교재와 유능한 강사진을 바탕으로 한 국립국어원의 활동이 상호보완적으로 진행된다면 보다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죠.

이동훈/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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