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리의 스케치北 | 김정숙, 선군(先軍)의 어머니로 이미지화 2012년 7월호
박계리의 스케치北
김정숙, 선군(先軍)의 어머니로 이미지화
북한미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선전선동의 역할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미술은 조형적 언어로 현실을 사상 미학적으로 파악하며 조형 형상을 통하여 인민들의 미학 정서적 교양에 이바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달에는 김일성의 부인, 김정일의 어머니였던 김정숙을 그린 작품들을 통해 북한미술의 이러한 역할이 어떻게 작품에 투영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김정숙과 총의 결합 … 선군정치 신호탄
1917년 태어난 김정숙은 1935년 9월 항일유격대에 가입하여 1940년 23살의 나이로 김일성과 결혼했다. 그 후 2년이 지난 1942년 김정일을 낳았으며, 한국전쟁 직전이었던 1949년 만 31살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숙의 이미지는 김정숙과 최고권력자와의 관계에서 규정되어 김일성 시대에는 목숨을 바쳐 김일성에게 충성하는 전사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었다.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은 1940년에 벌어진 ‘대사하치기 전투’를 그린 작품으로, 이 전투는 김정숙이 일본군의 포위와 저격으로부터 몸을 바쳐 김일성을 보위하였다고 해서 유명해진 전투다. 북한사회는 이 같은 그림을 많이 그려 유포시킴으로써 김정숙을 통해 김일성에 대한 충성심을 함양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1994년 김일성의 사망과 더불어 김정일이 실질적인 북한의 리더로 대내외에 천명되면서 김정숙의 이미지에도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전에도 존재하기는 하였지만 중점적으로 강조되지는 않았던 ‘김정일의 어머니’로서의 김정숙 이미지가 보다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하였고, 보다 흥미로운 것은 김정숙에게 ‘총’을 포함한 ‘군대’의 이미지가 결합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북한사회가 선군정치를 적극적으로 표방하기 시작하는 시점과 연관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목숨으로 보위하시는 김정숙동지>라는 작품을 보면 김일성과 김정숙 모두 총을 갖고 있다. 일촉즉발의 전투 상황을 상상해보면 자연스러운 구성이다.
그러나 김일성의 죽음 이후 같은 이야기를 그린
<백두의 녀장군 김정숙동지처럼 위대한 장군님을 결사옹위하는 성새가 되고 방패가 되자>에서 보듯 더 이상 김일성은 총을 지니고 있지 않다.
이제 총은 김정숙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더 나아가 선군정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백두의 녀장군 김정숙 동지께서는 오늘도 수령결사옹위대오 속에 영생하신다>에서 보듯 김정숙은 북한군 즉 선군의 어머니로 이미지화되기 시작하였다.
“김정숙동지, 수령결사옹위대오 속 영생”
이처럼 김정숙의 이미지는 북한 최고권력자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가 부여되어 왔으나 그것은 단순한 김일성의 아내, 김정일의 어머니로서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녀의 이미지는 김정일의 대두와 함께 그 위상이 점점 더 강화되면서 수령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결사옹위의 정신과 선군정치를 일반인들에게 교양시키기 위한 이미지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북한미술은 일반인들을 교양시켜내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역으로 우리는 북한의 미술 작품을 통해 북한사회와 정치의 맥락 및 흐름을 읽어낼 수도 있다. 현재 북한은 미술품이 외화벌이의 중요한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팔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작품도 많이 있다.
따라서 북한의 모든 미술품이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북한 내부에서 인민들의 교양을 목적으로 제작 및 유통되는 작품들의 경우에는 북한사회를 읽어내는 분석틀과 예측 가능성을 제공해줄 수 있다. 김정숙의 이미지는 그런 점에서 북한사회 및 정치를 읽는 또 다른 하나의 창으로 기능한다.
박계리 / 이화여대박물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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