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7월 1일 0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북한에서 휴가? 한숨만 휴~ 2012년 7월호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북한에서 휴가? 한숨만 휴~

북한에서 살 때 휴가를 즐겨본 기억이 별로 없다. 당국에서 정한 정기휴가가 매해 있긴 했지만 정작 휴가를 받자면 쉽지 않았다. 북한에선 근로자의 정기휴가를 연간 14일로 규정했다. 그러나 휴가를 남한에서처럼 여행을 하거나 바닷가 펜션 등에서 즐기기 위해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북한 근로자가 휴가를 받으려면 휴가신청서를 제출해야 했다. 물론 남한에서도 휴가신청서를 쓰지만 북한에선 휴가승인을 받기 더 어렵다. 근로자에게 주는 당연한 휴가임에도 신청서를 쓸 때 휴가를 받으려는 사유를 따진다. 단순히 여행을 가고 싶다거나 집에서 쉬겠다는 것이면 사유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휴가신청 사유를 그렇게 기재하면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 충성심이 부족한 사람처럼 인식되기 쉬웠다. 그러면 당연히 승인을 받지 못했다.

승인받기 제일 쉬운 사유는 약혼식, 결혼식, 부모 환갑이나 장례 등 관혼상제다. 그 외에 환자간호, 집수리, 식량구입 등 생계형 사유가 되어야 한다. 한가하게 놀러가겠다는 사유를 기재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북한에서도 고위층은 휴가를 사치한 생활로 보낸다.

여행? 휴식? 휴가승인 받기 어려워

일반 근로자가 휴가를 즐기는 경우는 ‘혁신자’로 지정되어 휴양소에 갈 때다. 휴양소에 가면 14일간을 즐겁게 지낼 수 있는데 일체 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 그러나 거기서도 각지에서 모여온 사람들이 임시 당 조직을 구성해 생활총화를 하는 등 조직생활을 강요받는다.

북한에선 휴가신청 사유 때문에 해마다 고민이 반복된다. 어떤 사람은 매해 관혼상제를 사유로 기재하다보니 나중에는 거짓말을 한다. 휴가를 승인하는 간부들도 거짓말인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경우가 많다. 간부들도 같은 고민을 하며 살기 때문이다.

북한사람들은 관혼상제를 제외하고는 휴가철에 놀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장사를 하거나 개인이 경작하는 뙈기밭 농사를 하거나 땔나무를 하러 다닌다. 그러나 휴가 14일간으로 할 일을 다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휴가 외에 ‘사결’을 받는다. 사결은 한 번에 3일 한도로 연간 7일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휴가와 달리 사결을 받는 기간의 임금은 지불되지 않는다. 단 식량배급표는 받을 수 있다.

휴가를 전부 잘리는 경우도 많다. 1년에 3일 이상 결근하면 정기휴가가 취소된다. 즉 지각을 9번만 해도 받을 수 없다. 병으로 14일 이상 치료 받아도 정기휴가가 없다. 때문에 북한에선 몇 년씩 휴가를 받아보지 못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북한사람들은 남한사람들처럼 휴가를 제일 무더운 7, 8월에 받는 것이 아니라 주로 농사철이나 연말에 받는다. 농사철에 농사를 짓기 위해서고 연말엔 설 명절(양력설)준비도 하면서 추위를 피해 집에서 할 일을 하려는 것이다. 눈이 깔린 연말에 산에서 땔나무를 하면 쉽다는 점도 있다.

‘먹을 것이 없어 직장 못나간다면 끝’

하지만 오랜 세월 그런 환경에서 살다보니 날이 갈수록 약아빠진 사람들이 생겨났다. 연초에 무슨 핑계를 대든 14일간의 휴가를 전부 놀아버리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일이 생기면 사결을 받거나 병원에 뇌물을 주고 가짜 진단서를 발급받아 바쳤다. 휴가는 휴가대로 놀고 사결을 받고 병결을 많이 해도 노동법에는 다음해에 그 대가로 휴가를 받을 수 없다는 규정이 없었던 것이다.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 식량배급이 중단되면서부터는 휴가에 대한 관심이 더 적어졌다. 어차피 먹을 것이 없는데 무단결근이면 어떻고 휴가면 어떤가. 휴가라는 의미가 없게 됐다. 몸이 아파 출근하지 못하면 진단서를 바치던 규정도 주민통제에 효력을 내지 못했다. 굶어죽은 시신이 도처에 널려 있는 현실에서 진단서가 무슨 소용인가. 먹을 것이 없어 직장 못나간다면 끝이었다.

여기에 비하면 남한사람들의 휴가는 너무나 행복하다. 생계를 위해 무엇을 하려고 휴가받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관혼상제를 휴가받고 치르는 것도 보지 못했다. 주 5일 근무제가 보편화된 조건에서 주말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필자는 남한에 와서야 휴가의 본래 의미를 되찾은 것 같다. 즐겁게 놀기 위해 휴가를 받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다.

북한주민들은 남한 근로자들에게 휴가가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자산계급이 근로자를 혹독하게 부려먹기만 하는 세상으로 안다. 외부와 단절된 울타리에 갇혀 사는 북한주민들에게 남한의 행복한 휴가철 모습을 한번이라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도명학 / 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