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8월 1일

IPA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캠페인 | 룡천역 폭발사고 지원, 남북 긴급재난구호 모델 만들어 2012년 8월호

IPA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캠페인

TS_201208_70

룡천역 폭발사고의 진원지인 룡천역도 깔끔하게 복구공사가 마무리됐다. 2005년 4월의 모습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룡천역 폭발사고 지원, 남북 긴급재난구호 모델 만들어

지난 2004년 4월 22일 북한의 평안북도 룡천역에서 대규모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북한은 사고 발생 이틀 만인 24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4월 22일 12시 10분경 평안북도 룡천군 룡천역에서 질안비료를 적재한 화차들과 유조차들을 갈이하던 중 부주의로 인해 전기선에 접촉하여 폭발사고가 발생하였다.”고 공식 발표했다.

룡천역 폭발사고로 인한 피해는 엄청났다. <조선중앙통신>은 보도에서 룡천역 반경 4km의 공공건물과 산업시설 30여 채와 주택 1,850여 가구가 파괴됐고 이로 인해 8,0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재산손실액이 3억유로에 달한다고 전했다. 인명피해도 매우 컸는데, 이번 폭발사고로 최소한 154명이 숨지고 1,300여 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피해를 야기한 룡천역 폭발사고는 한 마디로 재난이었다. 재난이란 인간의 생존과 재산의 보존이 불가능할 정도의 생활질서를 위협받는 상태를 초래하는 사고 또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재난으로 발생하는 피해를 재해라고 하며 이로 인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이재민이다. 재난사태 발생 시의 긴급구호는 우선 이러한 이재민을 대상으로 하게 된다.

대북 긴급재난구호 민관합동 매뉴얼 작성

북한의 이러한 재난 사태에 대해 당시 국제사회와 남쪽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룡천역에서의 사고 소식이 알려지자 국제사회가 우선 신속한 대북지원에 나섰다. 중국은 사고가 나자마자 우리 돈 15억원 상당의 긴급지원 물자를 제공키로 결정하고 1차로 담요 2천장과 텐트 300개, 라면 등을 현장에 보냈다. 러시아도 비상 약품과 옷가지 등 13t 가량의 구호품을 수송기로 먼저 보냈다. 당시 북한과의 관계가 껄끄러웠던 일본정부 역시 10만달러 상당의 의약품을 긴급 지원키로 결정했다.

미국 역시 이러한 지원 행렬에 빠지지 않았다. 당시 대북 강경책을 구사했던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사고 발생 나흘 후인 26일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을 통해 10만 달러를 지원할 의사를 밝혔다.

국내에서도 룡천역 폭발사고에 대해서는 적극 지원이라는 한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물론 한나라당도 룡천 지역에 대한 지원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각각 성금을 모으는 등 지원에 동참했다.

긴급구호에서 복구지원으로 발전

룡천역 폭발사고에 대한 긴급구호 지원에서 국내 민간단체들의 활동을 빼놓을 수 없다. 국내 대북지원 민간단체들의 협의체인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이하 북민협)는 룡천역 사고 소식에 신속히 대응, 4월 24일 10시 긴급 운영위원회 회의를 소집했다. 북민협은 이날 회의에서 룡천지역에 긴급구호물품을 우선적으로 지원하고 이번 사고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범국민운동 조직을 구성하기로 결의했다.

긴급구호물품의 우선 지원과 관련, 북민협은 의약품과 시설물 복구 장비 등의 긴급구호물품을 중국에서 구입, 단동에서 신의주를 거쳐 룡천 사고현장에 전달키로 했다. 이는 룡천이 신의주에서 15km 떨어진 중국 접경지대라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북민협은 또 물자 전달과 구입을 위해 구호물품 인도요원 4명을 단동에 긴급 파견키로 결정했다.

지원금 모금 방법과 관련해서는 북민협 소속 단체들이 각출하여 3억원 규모의 지원금을 우선 모금하기로 했다. 이에 더해 북민협은 범국민운동 조직으로 ‘북한 룡천역폭발사고피해동포돕기운동본부(약칭 룡천동포돕기본부)’를 결성하였는데, 북민협 회원단체를 포함 총 55개 단체가 룡천동포돕기본부 참여단체로 동참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룡천역 폭발사고 지원사업은 남북 간 긴급구호 지원에서 많은 성과들을 만들어냈다. 우선 북한지역에 예기치 못한 재난이 발생할 경우 대북지원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폭발사고 이후 한나라당에서도 대북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국민들에게 호소했으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의 언론들도 모금운동에 적극 나섰다. 그 결과 사고발생 이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 정부와 대한적십자사, 민간단체가 룡천역 현장에 지원한 구호물품은 대략 121억5,000만원 어치에 달한 것으로 추산됐다.

북한당국도 이재민 지원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민협의 요청으로 룡천 현장을 방문하면서 지원 물품을 전달했던 한 재중동포는 “룡천의 피해대책 본부에서는 룡천의 이재민들을 피해 정도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누고 그에 맞춰 구호물자를 차등 배분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이재민 가족 중에 생일이나 환갑 등 경조사가 있으면 이들에게는 특별히 구호물자를 더 많이 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로는 민·관협력이 원활하게 작동하였다. 정부 차원에서는 관계 장관회의 등을 통해 룡천재해대책의 기본방향을 설정하고 ‘룡천재해대책 실무기획단’을 구성하여 실무적으로 처리하는 등 체계적으로 룡천지원에 대응하였다. 이러한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 속에서 북민협과 정부 간에 긴밀하게 협력이 이루어졌다.

민간과 정부 간의 이러한 협력은 이후 북한에 긴급한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 공동으로 대처하는 데 필요한 민·관합동 매뉴얼 작성으로 이어졌다. 정부와 북민협의 대북지원 정책협의체인 대북지원민관정책협의회(이하 민관협)는 2005년 12월 ‘긴급재난으로 인한 대규모 인명, 시설 피해시 최단 시간에 북측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전달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대북 긴급재난구호활동 관련 민관합동 매뉴얼’을 발표하기도 했다.

매뉴얼은 정부와 민간의 대응체계도를 각각 정리하는 한편 △재난상황 발생 및 확인 △긴급 구호체계 가동 △대북지원 의사 전달 및 협의(회담) △국민성금 및 물품 모집 △구호 활동 △인도인수 및 현지 구호 △모니터링 및 평가 등을 내용으로 하는 7개 항의 대응 절차도 규정하고 있다.

룡천역 폭발사고에 대한 지원은 또한 물자 지원의 새로운 루트를 만들면서 피해 현장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을 가능케 했다. 보통의 대북지원 물자는 인천에서 해로를 통해 남포로 전달됐는데, 룡천지원의 경우 대부분의 물자가 인천-단둥-신의주-룡천, 혹은 중국에서 구입-단둥-신의주-룡천 루트를 통해 전달됐다. 이는 남포에 전달된 지원 물자가 룡천에 도착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국제기구와의 연대·협력 모색 못해

룡천역 폭발사고 지원은 이에 더해 북한의 재난에 대한 지원이 긴급구호에서 복구지원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이는 초기의 긴급구호에서 이후 장기적인 복구지원으로 지원의 내용을 전환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민협은 초기 긴급구호 성격의 ‘룡천동포돕기본부’를 ‘룡천소학교건립위원회’로 전환, 룡천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 나갔다.

이러한 결과로 룡천역 폭발사고 발생 1년이 지난 시점인 2005년 4월 29일에는 남쪽의 민간 대표단이 룡천 현지를 방문, 복구 상황을 살피고 향후 지속적인 지원 계획을 수립하는 등 사후 관리에도 상당한 역량을 발휘했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룡천역 폭발사고에 대한 긴급 지원은 몇 가지 아쉬운 부분도 노정했다. 첫 번째는 중복 지원에 대한 문제이다. 룡천역 폭발사고 지원 초기 지원 물자가 긴급구호품에 편중되면서 일부 약품과 라면, 시멘트 등이 과도하게 지원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후 정부와 민간의 협의가 계속되면서 지원 품목의 중복 문제는 상당히 개선되었다.

두 번째로는 복구지원에 필요한 현장 조사가 여전히 미흡했다는 점이다. 초기의 긴급구호가 복구지원으로 전환되기는 했지만 복구지원에 필수적인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현장 조사 등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룡천 현지에서 구호활동을 펼친 국제기구들과의 연대와 협력이 모색되지 못했다는 점 역시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손종도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부장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